입술의 고백에서 삶의 신앙으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사도신경

저자명 Alister E. McG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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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조정의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  작성일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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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옥스퍼드 대학 역사 신학 교수였고,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 종교, 문화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가(2008-2013), 2014년 옥스퍼드 대학으로 복귀하여 과학과 종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성공회 교인으로서 맥그래스는 역사와 전통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정통 교리를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히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2017)에서 맥그래스는 전공에 맞게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잘 요약하여 설명한다.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국내 소개되었으며(40여 권), 죠이북스를 통해 출간된 ‘사도신경’ 역시 맥그래스의 뛰어난 통찰력과 전달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죠이북스는 2019년에도 같은 저자의 책, ‘지성의 제자도’를 낸 적이 있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사도신경에 관하여 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I believe’이다. 모세의 십계명 돌판처럼 견고한 석회암 색의 겉표지 위에 사도신경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고, 그중 I, B, E, L, I, E, V, E를 두드러지게 표현한 디자인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단순한 교회의 신조”인 사도신경이 새겨진 돌판 위에 “모든 시대에 걸쳐,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을 연합시키는 기본 신념들”에 동의하며 개인의 믿음을 새겨 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16쪽).


신조 혹은 신경을 뜻하는 단어인 ‘Creed’는 천 년 이상 사용된 라틴어 사도신경의 첫 문장, “Credo in Deum”(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I believe)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책의 원제가 ‘I Believe’인 것 같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여러 교리적 논쟁이 있을 때마다 신조를 세워 진리를 지켜냈고, 사도신경은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신조이다. 저자가 말하는 신조의 목적은 첫째, 기독교 신앙을 요약하기 위함이고, 둘째, 잘못된 기독교를 분별하고 피하기 위함이며, 셋째, 신앙 공동체 안에 속하여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표현하기 위함이다(17-20쪽). 쉽게 말해 신조는 교리 교육, 이단 분별, 연합 및 교제를 위해 존재한다.


많은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운다. 예전에 사도신경 낭독이 들어가 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 역시 율법을 외우고 낭독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교육했고, 거짓 교사와 가르침을 제거했다. 한 율법을 가진 무리끼리 연합하고 교제했다. 하지만 그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자기 백성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외우고 낭독하고 있었으면서도 율법이 가리키는 분, 율법의 정신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작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이 설명하는 율법의 참 의미를 마치 거짓 가르침처럼 배척했다.


만일 우리가 사도신경의 정신, 그 신앙고백이 담고 있는 참 의미를 되새기지 않고 단순히 암기만 한다면, 예전의 한 형식처럼 여긴다면, 우리는 신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모두 실패할 것이다. 항상 고백하고 낭독하지만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 안에 담겨있는 바른 교리로 배우지도 못하고, 잘못된 것을 들었을 때 분별할 능력도 생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한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신앙의 가치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느낄 수도 없다. 그냥 한 낭독문을 읽고 말한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맥그래스는 신조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신조가 품고 있는 단순하지만 분명하고 가치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독자가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게 한다. 저자는 또한 단순히 신조에 집중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각 장의 마지막에 관련 성경 구절을 제공하면서 진지하게 어떤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며 읽을지 안내한다. 또한, 추가로 읽으면 좋은 책들을 함께 소개하여 신조의 각 문장이 담고 있는 교리를 더 풍부하게 연구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힘껏 돕는다.


이 책은 “나는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1장에서 다루고, 2장부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3-5장), 성령 하나님(5장), 교회(6장)로 나눠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진리를 소개한다. 특별히 저자는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하는 개념을 설명하며 신조의 각 부분의 개념을 정리해주면서 동시에 그 개념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저자는 각자 배우고 삶에 적용한 부분을 소그룹으로 나눌 수 있도록 “나눔을 위한 질문”을 주면서, 책의 마지막에는 “모임 인도자를 위한 지침”도 수록했다. 맥그래스는 앞서 말한 신조의 목적이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달성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교리 교육과 혼란스러운 거짓 교리의 제거, 바른 교리로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이 세운 신조를 무시하거나 관심을 덜 가질 수도 있다.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훈만 추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많은 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등 각종 교리문답을 활용하여 교리 교육을 하는 이유, 그것이 없더라도 성경을 통해 교리를 정리하여 성도들을 한 믿음, 한 신앙으로 연합하도록 독려하는 이유는 과거 성도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도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성도들에게 바른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원한다면, 신천지나 각종 이단에게서 성도를 보호하려면, 성도들이 같은 신앙과 믿음 안에서 끈끈하게 연합하고 친밀하게 교제하기 원한다면,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사도신경으로 기초를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아주 훌륭한 지도를 이 책을 통해 해줄 것이다. 성도 스스로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세우기 원한다면, 그래서 잘못되고 혼란스러운 가르침을 과감히 뿌리치기 원한다면, 성도와 함께 공유하고 함께 고백할 믿음의 표현을 찾는다면,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수많은 성도가 고백해온 사도신경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맥그래스가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공부하고 다른 성도와 함께 토론할 훌륭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과 종교 석좌교수인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창조에 관한 견해는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필자의 견해에 비해 많이 느슨한 편이고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교리와 기독교 역사에 대한 통찰에서 배울 점이 많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사도신경’에선 그 장점이 십분 발휘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가 배우고 지키고 나누고 함께 고백할 신앙 고백을 발견하고 되새기고 실천하고, 결론적으로 “나도 믿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을 믿든 상관없이 기독교 통합을 추구하는 극단과 자기가 믿는 것만 진리라고 고집하는 극단 사이에서 기독교는 끊임없이 같은 믿음으로 연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교리부터 이 책을 통해 확인하고 점검해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도신경 마지막 부분인 “아멘”으로 화답하는 형제자매가 거짓 교리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더 뚜렷이 복음을 드러내는 삶과 고백을 나타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