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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참된 예배를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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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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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a Earl on Unsplash


예레미야 5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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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참된 예배를 원하시는 하나님!


참된 삶을 통해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된다. 본문은 바벨론 군대가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하는 사실을 보도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성전 기물들은 성전 바깥뜰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던 기물들이다. 이 기물들은 대부분 놋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놋은 당시 세계에서 금과 은 다음으로 중요하며, 값이 나가는 금속이었다. 한편,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이란 구절은 같은 명사가 중복된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는 히브리어 단어를 중복시켜 최상급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러한 표현으로 매우 가치 있는 성전의 기물들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값이야 어떠하든 성전 기물을 빼앗겼다는 것은 성전 제사가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더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사가 드려지지 못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과 예배는 분리될 수가 없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 즉, 제사가 멈추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제사가 드려진다고 해서 다 제사가 아니며, 예배가 드려진다고 해서 다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31-34절을 보면 예루살렘 함락 25년 후인 B.C 567년경에 있었던 한 사건, 곧 바벨론에서의 여호야긴 석방과 그에 대한 후대를 기록하고 있다. 여호야긴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석 달을 통치한 뒤 바벨론에 잡혀가서 3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왕하24:8-15). 그는 자신을 잡아 가두었던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이후에야 비로소 감옥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앞선 30절까지의 내용만을 보면 예루살렘의 함락과 시드기야의 최후, 예루살렘 파괴와 포수, 성전 약탈 등 어두움이 자욱한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서 본문을 끝내지 않으신다. 불순종하며 죄를 범하다 바벨론에 끌려가 갇혀 지내는 여호야긴을 복권하시고 그로 후대 받게 하시는 내용을 기록하셨다. 이는 한 마디로 유다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자 함임을 알 수 있다.


여호야긴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유다 백성들 역시도 하나님 징계의 기한이 다하면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을 예표 하는 사건이다. 이 말씀을 접하거나 들었던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바 회복의 때가 임박했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새로운 소망과 회복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고통과 시련의 자리에서도 위로를 받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어떠하든, 지금도 함께하시며 삶의 끝자락에서도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용기를 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지금도 살아계시며, 절망 속에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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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