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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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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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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elix Koutchinski on Unsplash


마태복음 18장 21-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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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한계가 없는 용서


우리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았다. 공동체 안에서 죄를 범한 형제를 권고하는 가르침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는다(21절). 당시 유대교 랍비들은 이웃의 범죄는 3회까지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베드로가 완전수 ‘일곱’을 제시한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아무도 말할 수 없었던 최고의 횟수를 과감히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더 놀랍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할 것을 이야기하신다(22절). 여기서 ‘용서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페소’는 용서하는 사람과 관련된 죄악을 범죄한 형제로부터 먼 곳으로 보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범죄자가 회개하여 죄를 자백하든 아니하든 즉시 모든 악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일흔일곱’ 번을 뜻한다. 490번(70×7)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강한 상징성을 내포한 말로서 숫자상의 어떤 기준이나 실제적인 용서의 범위를 초월한 끝없는 용서와 무제한적인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제안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더 크고 많은 용서를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자비와 용서의 끝이 없음은 마땅하다.


용서의 실천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은 그의 삶에서 용서와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고 불쌍히 여기셨듯이 다른 형제의 처지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만 한다. 주인에게 용서받은 종의 동료가 엎드려 간구한 모습은 그의 종이라도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29절). 그러나 주인에게 용서받은 종은 일말의 긍휼도 없이 돈을 다 갚으라고 추궁하며 그의 동료를 옥에 가두고 만다(30절).


이와 같이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악한 종’이 될 수밖에 없다(32절). 주인은 종이 ‘빌기에’ 빚의 전부를 탕감해 주었다. ‘빌기에’에 사용된 헬라어 ‘파레카레사스’는 ‘간청하다’의 뜻인 ‘파레카레오’의 부정사 과거형으로 ‘단순히 한 번 간청한 것으로 충분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계속된 동작을 나타내는 미완료형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어떤 동작이 일어난 것만을 나타내는 부정사 과거형을 사용한 것은 용서해 준 것이 빚진 자의 계속적인 간청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무한한 자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용서의 실천은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용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 마음으로 형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데에 있다.


용서의 실천을 하지 못한 종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빚을 안게 되었다(34절).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죄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용납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헤아려서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자!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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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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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우 목사(대구평강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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