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자로 양육하기
by 장대선2020-06-02

과거 한국의 기독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신앙심의 패턴은,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가르침에 대한 순종을 꼽을 수 있다. 특별히 그것은 구한말(舊韓末)의 혼란 가운데 민족 계몽에 지대한 역할을 한 기독교 교역자들의 헌신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계몽 운동은 일제식민지 시대에 일본제국의 승인을 받은 교역자들 즉 조선신학교 출신들과 신사참배에 찬동한 자들이 아닌 해외에서 들어온 선교사들과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민족지도자들을 통해 이뤄졌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식민지인 조선을 다스리던 일제(日帝)는 개화파 조선민족주의 계열의 애국 계몽 운동(愛國啓蒙運動)을 적극 탄압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 내의 신앙 계몽 운동에 대해서도 핍박과 탄압을 가했다. 아울러 조선에 대한 우민화 정책(愚民化政策)을 통해 민족정기와 계몽 의식을 말살하고자 했으며, 조선 민중의 역사의식과 계몽 의지를 철저히 박탈하여 조선에 대한 장기적인 지배를 꾀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나치도 제국주의 정책으로 유럽을 지배하려 했는데, 일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나치도 대중 선동에 의한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 핵심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였다.) 독일의 대중 선동 역시 일본 제국주의처럼 단일한 가치관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수립 후 쿠데타로 집권했던 정권들이 그대로 답습했던 특징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독일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사이비 종교와 유사한 특색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는 쇼와 천황(昭和天皇), 독일의 경우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제국 주의 종교의 특징은 로마 가톨릭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형태를 답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살아있는 신적 존재인 교황을 중심으로 단일화 된 지배력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은 로마 가톨릭의 장구한 전통이며, 그러한 형태는 기독교 외 대부분의 이방 종교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은 자신들을 추앙하는 많은 신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세력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사역이 아니라, 성도들이 복음을 깊이 깨닫고 자발적으로 견인(堅忍)할 수 있는 신앙을 갖도록 만드는 일에 최우선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세력과 집권에 연연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께서는 성육신을 통해 낮아짐의 본을 보이셨고, 공생애를 통해 비움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러한 낮아짐과 비움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 그와 함께 했던 제자들은 스승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적인 양육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그대로 믿음의 후배들을 양육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신자를 양육했던 원리와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어떤 원리나 근거를 밝히기에 앞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제자들과 신자들을 자신에게 구속시키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은 신자들이 독립적으로 교회를 형성하고 모일 수 있는 신앙의 깊이를 갖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질문이나 군중의 물음에 대해 항상 간단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비유(analogy or metaphor)를 들어 그들 스스로 깊이 숙고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비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리송하게 만들려는 의도의 답변 방식이 아니라, 그 본질이나 실체에 더욱 근접하게 설명하기 위한 답변 방식이다. 그러므로 비유에 대해 숙고한다는 것은 그 생각의 심도를 말함이지 난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러한 비유에 대한 숙고가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성경의 기록을 신약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초기 사도들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한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빌립 집사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와의 대화 장면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성경의 기록 방식과 같이 특정 시간이나 장소까지 언급하는 파피루스는 일반적으로 당대에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성경이 유일하다고 한다.) 특별히 35절에서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사 53:7 이하)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는 구절을 보면, 빌립이 결코 간단한 답변이 아니라 구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길게 변증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세기 기독교 안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회중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본문이 또한 사도행전에 있는데, 사도행전 17장의 베뢰아 사람들에 대한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하므로”라고 적힌 11절을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여 받아들이는 점에서 데살로니가인들보다 훨씬 고상하더라고 평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성경의 본문을 통해 사도들 당시의 1세기 교회가 얼마나 깊이 사고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도들과 직분자들은 신자들을 결코 감정에 휩쓸리도록 이끌지 않았고,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성경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일에 복종하는 교인들로 양육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즈음 한국의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는데 그것은 외형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본질적인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참된 믿음이 없는 신자 즉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s)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에 출석하지만 결코 사고하지 않으며 믿음과 실천이 별개인 신앙인은 이 시대의 우민화된 군중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사도행전 8장의 빌립과 같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들을 “가르쳐 지키게(마 28:20)” 할 사역자들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장대선

장대선 목사는 도서출판 고백과문답 대표와 장로교회정치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교리 연구가로 활동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스터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제2치리서’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