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합리화에 빠진다
by 정요석2020-05-30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예언이 실패로 끝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자신의 책 ‘예언이 실패할 때’에서 이를 다룬다. 1954년 미국에서 말세론에 빠진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한 곳에 모여 곧 닥칠 대홍수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비행접시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끝나 버렸다. 예언이 실패로 끝나자 일부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틀렸음을 알고 말세론을 버렸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믿음이 약하였기 때문이라고 회개하며 더욱 광신적 행태로 변해 갔고 일부는 날짜 산정에 오류가 있었다며 새로운 종말 날짜를 산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한번 갖게 된 믿음과 생각을 버리는 대신, 현실과 사실을 자신의 바람과 생각에 맞추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페스팅거는 이것을 보며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말하였다. 인간은 그 뛰어난 지정의로 자신의 신념과 욕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정보들을 얼마든 이용하고 가공하는 존재다.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긋나면 옳은 정보일지라도 무시하며 합리화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발생한다.


내 기억에는 매 선거 때마다 부정 선거 시비가 있어 왔다.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도 예외 없이 일부 낙선자들이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여러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소속 정당의 당원들마저 무시하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정 선거가 이루어지려면 수천, 수만 명이 합작하여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한 사람은 상대당이 승리를 예측한 출구조사 발표를 보면서 크게 기뻐하지 않은 장면을 부정 선거의 한 증거로 제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이 기쁨을 절제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해석함에도, 부정 선거라고 확신하는 이는 부정 선거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 장면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간 부정 선거 관련 주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제기되어 왔다. 주장하는 내용과 형태도 거의 비슷하다. 이번에도 평균 득표 비율이 일정한 상수로 나오도록 개표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있었다. 그때 비슷한 주장을 했던 이들은 이번 총선이 부정 선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비판하기에 앞서 그때 자신들이 주장한 것에 대해 옳았는지 살펴야 하고, 자신들도 확증편향에 빠져 합리화하는 존재가 아닌지 냉철히 살펴야 한다.

성경에도 확증편향에 빠진 확신범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아합의 400명의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전쟁을 부추겼다. 시드기야 선지자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며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모두 거짓말하는 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이시려고 거짓말하는 영을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신 것이다. 선지자 미가야가 이 잘못된 사실을 지적하지만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라고(왕상 22:24) 다그친다.


이들 400명의 선지자들은 아합의 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어용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참된 선지자들이 아니라, 음식과 돈에 팔려 왕이 듣기 원하는 내용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신앙과 양심을 잃으니 당장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합리성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오직 왕이 듣기 원하는 내용에 맞추어 합리화할 뿐이다. 시드기야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환상까지 들먹인다. 아합에게 승리의 수단이라며 철뿔을 만드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성경에나 나오는 일이 아니라 이 시대의 평범한 목사들에게도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좀 무리가 되는 평가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이번 총선에서 개신교를 심판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여러 시각들이 있지만 유일한 기독당으로 총선에 참여한 기독자유통일당은 1.83%, 513,159표를 얻는데 그쳤다. 20대 총선에서는 두 개의 기독당이 각각 2.64%와 0.54%를 기록하였는데, 4년 만에 지지율이 거의 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 정당의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여 스스로 합리화 하며 선거에 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도 자주 합리화에 빠진다. 특히 목사는 교회에서 합리화하기 쉬운 존재다. 목사들은 아무래도 성도들 중 자신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성도들을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목사는 성도들 대다수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의 설교와 리더십에 만족해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목사는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와 냉철히 자신을 살펴야 한다. 정당이 자기 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국민의 소리만 듣고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리라는 예감을 확증하며 합리화 하다가, 결국 엄청난 패배를 경험한 것처럼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다양한 계층과 지역의 마음의 흐름을 냉철히 살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여러 예측결과들을 분석하는 등 여론을 읽으려고 나름 노력했다고 하는데, 목사와 기독교가 어떠한 방법을 활용하든 국민이 목사와 기독교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목사들과 기독교는 국민의 마음을 얻고 있을까? 이번 코로나19 감염 사태 동안에 기독교는 천주교와 불교보다 잘 대처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고 있는가? 지난 4년 동안 정치와 사회의 현안들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겸손하게 잘 대처하여 지지율이 천주교와 불교보다 올라갔을까? 정치인과 정당은 정기적으로 선거를 통하여 평가받는다.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집권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면 다음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스스로를 살피고 평가할 수 있는 수단마저 없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살피려는 의식적 노력이 없으면 목사와 교회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아합과 400명의 거짓선지자들처럼 말이다.


요즘 일이십 년 후 기독교를 많이 걱정하게 된다. 과연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지금 분위기 그대로라면 그때는 기독교인 숫자도, 신학교 지원율도, 기독당의 지지율도 더욱 내려갈 것이고, 교회당은 소수의 노인들로만 채워질 수 있다.


목사와 기독교는 외부의 전문가를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실제 모습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처방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환상에 빠져 확증편향을 가진 확신범 시드기야의 예언을 받아들인 아합은 전쟁에 나갔다 우연히 날아온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다. 이 시대 자기 합리화를 정당화하는 목회자와 교회에게도 그런 우연한 일이 발생하여 쇠퇴와 비참함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한국 기독교가 자기 사랑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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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요석

정요석 목사는 서강대와 영국 애버딘대학교(토지경제학 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안양대학교(Th.M.)와 백석대학교(PhD)를 거쳐 1999년 개척한 세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기도인가 주문인가’,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전적부패, 전적은혜’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