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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겨낼 때 필요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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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rshall Segal  /  작성일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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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drik Langfield on Unsplash

​고난을 잘 이겨내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돈 카슨(Don Carson) 교수는 “크리스천이 감당 못할 정도로 슬퍼하고 혼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기대 수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고통과 악의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비극에 당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라고도 말했다(‘How Long O Lord?’, 11).


이 세상 그 누구도 인내를 가지고 점점 더 집요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는 한 슬픔에 빠져 있으면서 동시에 “항상 기뻐하는”(고후 6:10),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고난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폭풍이 밀려올 때 어디에 서서, 어디를 봐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리고 고난이 오기 전에 미리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왜 내게 고난이 닥치는 건지, 모든 대답을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알고 싶다고 해도 결코 알 수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몇 개 되지 않지만 실로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신앙의 선배 또는 동료가 고난 속에서 걸어갔던, 그래서 이미 그 효과가 증명된 길이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 필요한 세 가지 교훈


베드로 사도는 크리스천이 고난을 잘 이겨내도록 돕기 위해서, 고난 극복에 필요한 여러 교훈을 담은 베드로전서를 썼다. 물론 그들이 당한 고난이 반드시 모든 크리스천에게 다 해당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 사는 많은 크리스천은 이런저런 고난 속에 있고, 또 베드로전서가 담고 있는 지혜와 희망은 오늘날에도 그들에게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지금부터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능력, 안정감 그리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길을 알아보도록 하자.


1.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하라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제대로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비춰서 이 땅에서 만나는 고난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베드로전서 1장 6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고난받는 이들의 고난에 공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고난받는 이들이 이 땅이 아닌 천국을 바라보게 한다. 고난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우리가 여기서 겪는 모든 고통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또 우리 존재가 겪는 모든 경험이 다 이 고난의 순간 속에서 농축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고난은 결코 이 세상의 전부(ultimate)가 아님도 알고 있다. 고난은 여간해서 죽는 날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때조차도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라면, 고통이라는 놈이 언젠가는 순식간에 종말을 맞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즉, 천국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고난을 전혀 다른 태도로 맞을 수 있게 된다. 


랜디 알콘(Randy Alcorn)도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암에 걸린 부인과 함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런 중에서도 천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함으로 그 부부는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천국을 바라본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고통을 경감시키고 또 고통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천국에 관해 명상하는 것은 고통을 이겨내는 위대한 진통제다. 천국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과 죽음이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의 존재는 고통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통과 죽음은 단지 끝없는 즐거움으로 가득찬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관문일 뿐이다(‘헤븐-천국은 이런 곳이다’, 46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


천국은 당신이 잃은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천국에서 당신은 더이상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천국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이 땅에서 당신을 통해서 시작하고 또 만들어 가신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똑바로 알게 할 것이다. 천국에서 당신은 약하다고 느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될 것이다. 천국은 당신을 온전히 세울 뿐 아니라 아무런 고통 없이, 오로지 전율만을 주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히 죄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당신이 이 땅에서 아주 잠깐 고난을 겪은 후에 만날 현실이다. 


2. 연단의 소중함을 깨달으라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슬퍼하지만 그럼에도 기뻐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난 속에 감춰놓은 선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 한, 이렇게 고백하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연단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면서 과연 고난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난은 다른 축복을 앗아감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도록 한다. 교묘하게 하나님 대신 피난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이 무엇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육신의 소욕과 타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자주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길에서 떨어져 나오고 있는가(마 7:13-14)? 그런 가운데서 고난의 그림자는 그 어떤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화로 가는 긴 길에 빛을 비춘다.


사탄은 고난이 안개와 같이 걷히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맴돌기를 원한다. 사탄은 고난이라는 안개가 우리 눈을 어둡게 함으로 거룩을 향한 우리의 싸움 가운데 지속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을 보지 못하길 원한다. 사탄은 또한 우리가 계속해서 고난이라는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이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또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연단의 불이 되길 원한다. 


3. 그럴수록 서로에게 더 의지하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고, 오늘이 우리 삶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또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로부터 고립되게 만들어 점점 더 나는 혼자라는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 4:8). 


고난을 당하면 약하다고 느끼기 쉽다. 고립은 그럴듯하게 보여도 결코 자기 보호가 아니다. 고난 속에서는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 봉사하기도 힘들다고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만약에 고난이 당신을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든다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누구나 다 도망치고 싶고 또 자기 자신의 슬픔과 치유에만 집중하고 싶은 충동을 가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고, 강하게 하고, 또 치유하신다. 그것도 모퉁이 조각이 아니라 몸 전체의 일부로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을 의지하도록 하라. 스스로가 약하고 지쳤다고 느낄수록 더더욱 그래야 한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이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 4:9).


고난이 찾아올 때 누구나 다 기운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랑한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내 힘을 의지하는 사랑은, 약할수록 우리를 더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결코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고후 12:9). 고난이 찾아올 때, 그래서 당신이 약해지고 완전히 지쳤을 때,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함으로써 새롭고 더 의미있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기를 기대하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난을 받는 것 같아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1세기에 베드로는 이렇게 썼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베드로가 이런 글을 쓴 이후에 지금 당신처럼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한번 생각해보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중국에서는 갑자기 교회가 문을 닫고, 믿는 이들이 매를 맞는다. 또 이라크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절연을 당하며, 케냐에서는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크리스천이 죽임을 당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성도들의 군대를 바라봄으로, 바다 건너 또 수 세기에 걸쳐서 우리가 겪는 고난 보다 더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항상 함께 하는 하나님을 믿고 인내했던 그들을 바라봄으로, 우리도 넉넉히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6-7). 당신은 단지 고난 속에서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이들이 고백하는 간증뿐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사 당신을 위해서 대신 고난받게 한 하나님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1, 24). 


그는 당신을 고치기 위해 상함을 입었다. 그를 십자가에 박은 못은 이제 천국에서 당신의 위치를 보장하는 증표가 되었다. 당신을 위해 흘린 그의 눈물은 이제 당신이 받고 있는 고난 속에서 의미를, 희망을, 아니 심지어 기쁨까지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의 피는 당신에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족을 가져다주었고, 결코 잴 수 없는 놀라운 사랑으로 그 모든 이를 하나로 묶었다.  그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넉넉히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고난을 당했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How to Suffer Well: Three Ways to Prepare Now

번역: 무제


작가 Marshall Segal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Not Yet Married'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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