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지면에 흩으심과 사회적 거리두기
by 정요석2020-04-30

노아의 때에 사람의 죄악은 세상에 가득하였고, 생각하는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하였다. 하나님은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방주를 지음으로써 대홍수에서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살아남은 노아 가족 8명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그들이 충만할 수 있도록 모든 동물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고, 먹을 것으로 주셨다. 그들에게 다시는 땅을 멸할 홍수가 없다는 무지개 언약도 약속하셨다.


이런 축복과 언약을 받은 노아는 세 아들의 출산을 통해 많은 백성을 이루었다. 그때 온 땅의 언어는 하나였다. 이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다. 다시 악해진 것이다. 이들이 건설하는 성읍과 탑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이들이 한 족속이고 한 언어를 사용하므로 이런 일을 시작하였고 이후로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 하시며,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졌고, 도시 건설은 자연히 멈추었다.


언어의 혼잡으로 이들이 온 지면에 흩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살 기회를 다시 주신 것이다. 사람들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면서 생육하고 번성할 기회를 다시금 주신 것이다. 하지만 흩어짐 이후로도 인류는 죄를 짓기에 바빴다. 하나님은 진노와 격분으로 죄악의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질병의 유행과 유황과 불 등으로 멸하시기에 이른다(신 29:23). 그러나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지라 부분적으로만 인류를 징계하셨다.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세계가 멈춰 섰다. 각국이 국가와 도시를 봉쇄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가 실천되고, 학생의 등교가 멈추고, 산업과 경제 활동의 위축으로 회사가 파산하고 개인이 실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파로 생각지 않은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항공기와 차량과 선박의 운행 감소로 대기와 수질이 좋아지며 보이지 않던 산들과 물속이 또렷하게 보이고, 맑은 하늘에 구름은 떠다니고, 동물들이 도시에 출몰하고 있다.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인류에게 다가온 부정적 현상이 정말 심각하고, 인류의 행복에 큰 지장이 될까?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한다. 대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지 않아도, 프로 스포츠가 열리지 않아도, 여러 모임이 열리지 않아도,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도, 교회의 여러 모임이 취소되어도 사람의 기쁨과 행복에 큰 지장이 없음을 알게 하고 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파멸과 멸망에 빠진다. 부하려 하고 높아지려는 자들이 서로 충돌하며 싸움과 고소와 폭력과 살인이 벌어지고, 국가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 인류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사는 바쁜 삶이 실은 행복과 평안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의 사랑과 자기 높임을 쌓는 측면이 강하게 있는 것이다.


전염병이 대감염의 수준에 이르면 어느 한 도시나 국가에 발병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현상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있을 수 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던 하나님께서 왜 이번에 바이러스의 퍼짐으로 사람들을 흩으시고 격리하시는지 이유를 살펴야 한다.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바쁘게 돌아다니고, 쓸데없는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는 인류가 그 행위를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기형적인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게 하심으로 자신의 내면과 인생의 본질을 살피게 하시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스마트폰이 발달되어도 사람간의 소통은 오히려 줄어들고, 교통이 발달하여도 정작 중요한 사랑과 정은 전달되지 않고, 아파트는 날로 진화하여도 가족의 평안은 줄어들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란 평안이 아니라 편리를 가져온 데 지나지 않고, 잠시 즐거운 장난감에 지날 뿐이다. 처음 성을 쌓고 도시를 이룬 일도, 가축 치는 일도, 수금과 퉁소를 잡는 일도, 구리와 쇠로 여러 기구를 만드는 일도 모두 가인 계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도시와 산업과 예술과 과학의 발달이 사람의 욕망과 이름을 내는 데 사용되기 쉬운 것임을 나타낸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지만, 혀는 능히 길들일 수 없다. 사람은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닌 것이고, 인류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절제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감염 없이 어떻게 올림픽과 각종 스포츠와 박람회와 축제가 연기 내지 폐지되겠는가? 코로나19 대감염은 외형적으로 많은 사망과 활동의 위축을 가져오지만, 내면적으로 인간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전 인류로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의 혼잡을 통해 사람들을 흩으심으로 인류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듯,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과학의 발달과 주요 언어로 다시 하나가 되어 흩어짐을 면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온 인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신자들은 하나님께 영광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인과 같이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며 자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부르는 짓을 교회와 목회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할 수 있다. 신자들은 코로나19 대감염이 빨리 종식되기를 기도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무엇이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진정 하나님 자체를 즐거워하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질병의 유행을(신 29:22) 통해 경고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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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요석

정요석 목사는 서강대와 영국 애버딘대학교(토지경제학 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안양대학교(Th.M.)와 백석대학교(PhD)를 거쳐 1999년 개척한 세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기도인가 주문인가’,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전적부패, 전적은혜’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