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지혜
by Michael Sacasas2020-05-01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사실을 잊곤 한다. 하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종종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러 나라가 지난 몇 달 동안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여념이 없는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우리는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세상에 살게 되었고, 일상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제는 못쓰게 되어 버린 옛 습관과 일상 대신에 새로운 일상의 습관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시간도 예상치 못하게 왜곡되는 듯하다. 우리가 당면한 현재의 위기는 우리의 옛 습관이나 행동, 또는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정을 질서 있게 통제하고 시간을 잘 관리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이 지장을 받는 일은 전례 없는 것이다. 이 사태로부터 많은 사람이 교훈을 얻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지금은 또한 디지털 미디어와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좋은 기회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삶에서 디지털 기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다. 모바일 기기와 그야말로 없는 곳이 없는 무선 네트워크로 인해, 과거에는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서 가끔만 사용하던 인터넷이 이제는 우리의 삶 전체 영역으로 확대되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 삶을 뒤덮음으로 말미암아 개인정보의 특성, 시민 사회의 건강성, 노동의 가치, 인공 지능 기술의 발전 상황, 인류 번영의 조건 등에 관한 윤리적, 법적, 철학적, 심지어 신학적인 질문까지 하고 있다.

서로 물리적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합당하고도 거센 사회적 압력 때문에, 이제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과 연락하고 매일의 업무를 지속하기 위해 디지털 도구에 의존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디지털 도구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또한 이러한 불확실성과 염려의 시대에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도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가 쓰는 앱이나 기기에 이미 많이 설치되어 있고, 코로나19 상황을 추적 및 감시하여 그 확산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디지털 감시 장비를 탑재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러한 논의를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것은 분명하나,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도 우리가 평상시처럼 사용하는 디지털 기술에 좀 더 초점을 둘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대부분은 이제 정보를 취득하고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더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건강 문제에 직결된 위기의 때에는 우리 자신,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얻게 해 준다. 적은 노력으로도 우리는 전 세계의 대표적인 전염병 학자들, 바이러스 전문가들, 그리고 전문 의료 인력들의 견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상황이나 국제 보건 기구들, 각 지역의 의료 및 응급 시설에 관련된 상황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의 건강과 우리 사회의 건강에 잠재적으로 독이 되는 가짜 정보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공포감에 사로잡힌 일부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거나 확인되지 않은 치료법을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보건 관계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 바이러스의 기원을 논하거나, 이 바이러스의 치명적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지형도를 탐색할 때는 당연히 지혜가 필요하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자들은 언제나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위험한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지금은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로 둘러싸인 이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위험은,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여 건전하고 믿을 수 있는 정보만 접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디지털 미디어와 우리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최신 정보를 찾아 미친 듯이 뉴스피드(news feed)를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불난 집 구경을 멈추기 힘든 것처럼, 뉴스 확인을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SNS는 강박적으로 뭔가에 참견하는 것을 조장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의지할만한 지도도 없이 모두가 출구를 찾으려 애쓰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 위험이 더 커진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정보를 습득하고자 하는 갈망이 너무 크면 그것이 우리를 마비시키거나 감정적으로 압도해버릴 수도 있다.

정보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당연히 좋은 정보가 있어야 한다. 우리 지자체에서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을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을 감당키 위해서는 좋은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나 더 좋은 정보가 있다고 해서 염려가 해소되거나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고 끔찍하리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정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지금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면 디지털 기기들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기도로 두려움과 염려를 다루도록 해보라.

매일 특정 시간에만 최신 뉴스를 확인한다거나, 필요한 경우 뉴스피드를 완전히 꺼버리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아침에 믿을만한 몇몇 뉴스를 신속히 훑어본 후 곧바로 일과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전문 의료인이나 응급 대책반이 아니라면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 수를 세세하고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내가 입법이나 정책 전문가가 아니라면 바이러스 해법에 대해 논쟁하고 싸우는 정치인들에 대한 뉴스를 계속 읽을 필요는 없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만 취득하는 지혜이다. 상식에 안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정보를 너무 많이 취득하는 것은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영상(screen)에 의지하고 있다. 많은 교회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디지털 도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교제하는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은 사실 ‘물리적 거리 두기’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지적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일정 기간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는(socially)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이제 디지털 방식으로 서로 연결하는 일에 아주 익숙하다. 문자, SNS, 또는 페이스타임(FaceTime) 같은 앱은 우리 삶에서 일상적인 부분이 되었고,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용 빈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상호 격리의 시기인 지금 화상 회의(videoconferencing) 프로그램들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해도 다른 이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와 목소리를 통해 위안을 느낀다. 그러한 위로를 잘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교제를 위해 오랜 시간 디지털 수단에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교제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된다. 사람은 영과 육의 전인적인 필요가 채워질 때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육체를 지닌 피조물이다. 다른 피조물들처럼 우리에게도 육체가 주어졌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소망은 우리가 육신의 감옥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에 동참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의 육신은 우리 인성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영상으로 듣는 설교를 통해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형제자매들의 목소리에 둘러싸여 예배드릴 그 날, 서로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할 그 날, 다시 한번 성찬의 떡과 잔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을 맛볼 그 날을 고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또한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재발견하게 된다. 외로움이 사람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고독은 우리의 행복에 꼭 필요한 것이다. 너무 오래, 우리는 서로 피상적으로 연결하는 일에만 관심을 쏟고 진정한 고독을 추구하지 못했다. 만일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통해 우리가 디지털 소통 기술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로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원제: Pandemics, Digital Media, and Anxiety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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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ichael Sacasas

마이클 사카사스는 Christian Study Center of Gainesville의 부디렉터이고, 기술과 사회에 관한 서신인 'The Convivial Society'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