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유다도 다말의 의로움을 인정했어요
by 배경락2020-04-16

안녕하세요. 저는 시아버지 유다와 부적절한 관계로 아이를 낳은 며느리,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여자랍니다.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구약 시대 여자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그리고 아들을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여자의 삶은 가장 낮은 빈곤층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시대 남자들의 수명은 매우 짧았습니다. 전쟁으로 죽는 경우뿐만 아니라 양을 치다 사나운 짐승을 만나거나, 도적을 만나 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만 노후가 보장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는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형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씨를 잊게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레비리트(levirate) 제도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겠지만,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가나안 여자로서 가나안의 문화와 풍습에 익숙합니다. 어느 날 동네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산 위 동네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다 집안이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혈통과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고향 땅 하란까지 가서 아내를 얻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부족을 떠나서 우리 가나안 족속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 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동네에 여러 가지 소문이 많았지요. 유다가 우리 부족장 히라와 친구라는 둥, 저들이 여호와 신앙보다는 가나안 족속의 신앙을 더 좋게 생각한다는 둥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습니다.1)


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도 많았기에 유다 집안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다 집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에게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다 집안은 우리에게 청혼했습니다. 그 집 큰아들 엘의 청혼이었습니다. 뜻밖이긴 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결혼 초기에 유다 집안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그들은 가나안 족속보다 더 세속적이고 사악했습니다. 남편 엘의 죄악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직접 쳐 죽였습니다.2)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저는 난감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둘째 아들 오난과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그는 제게 씨를 주지 않았습니다. 고의로 그랬습니다. 형의 재산을 자기가 독식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형의 혈통이나 저의 경제적 상황 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도 하지 않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둘째 오난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연이어 내리자 시아버지 유다는 놀랐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죽은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재혼하지 말고 수절하라. 그리고 친정에 가서 셋째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 저는 시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줄 알았습니다. 보통 가나안 족속 같으면 재혼하도록 해서 여자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친정에 와서 시아버지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잊힌 여자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도 다 치렀다는 소식도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그제야 시아버지가 말했던 것이 거짓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거십(거짓의 도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로부터 고엘(기업 무를 자, 속량자, 구속자) 제도의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동네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종처럼 신발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게 되어 있습니다(신 25:9).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싫으면 두 번째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유다 집안의 첫 번째 사람은 셋째 아들 셀라입니다. 이제 시아버지는 저를 완전히 잊어버렸고, 셋째 아들을 저에게 줄 계획은 전혀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저는 고엘 제도의 첫 번째 사람에게 두었던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겐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냥 유다 집안을 ‘신발 벗은 자’의 집안으로 수치와 불명예를 당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희생하더라도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고, 가문의 혈통을 이어갈 것인가? 저는 비록 가나안 여인이지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딤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신전 창기로 분장하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시아버지 유다는 고엘 제도의 두 번째 기업 무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여자로서 정욕에 불붙어 남자를 구하러 나간 것이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닙니다. 목적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가문의 명예와 집안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다 아실 것입니다.


제 결정을 알아준 분은 의외로 시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제게 말하였습니다. “그녀가 나보다 더 의로웠으니(She hath been more righteous than I)”(창 38:26, KJV). 하나님은 아무나 의롭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의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인정할 때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말했지요.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5-8).


저는 경건하지도 않고 잘한 것도 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시아버지의 입을 통하여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유다 집안의 죄악을 저 같은 이방 여인을 통하여 가리시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혈통이 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후일 룻이 두 번째 기업 무를 자 보아스와 결혼할 때도 마을 장로들이 저의 이름을 이용하여 복을 빌어준 것3)도 다 이런 까닭입니다(룻 4:11-12). 부디 고리타분한 유교 윤리에 젖어서 저를 윤락녀나 음탕한 여자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4)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
1) 유다가 이사 간 동네는 ‘거십’으로 ‘거짓의 도시’이다. 이 도시는 속고 속이는 것이 풍습이 된 도시로 유명하였다. 유다는 큰아버지 에서가 가나안 여인을 부인으로 삼은 것 때문에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몹시 마음이 상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나안 사람과 교제를 하고 가나안 여인을 부인으로 맞았으며, 아들에게도 가나안 여인을 주었다.

2)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 인류를 향한 심판을 하시긴 했지만, 어떤 개인을 직접 심판하신 것은 유다의 아들 엘이 처음이었다. 하나님께서도 엘은 살려두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죄악은 극악하였다.

3)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베들레헴 장로들은 두 사람의 결합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한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주님께서, 그대(보아스)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 여인(룻)을, 이스라엘 집안을 일으킨 두 여인 곧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에브랏 가문에서 그대가 번성하고, 또한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그 젊은 부인(룻)을 통하여 그대(보아스)에게 자손을 주셔서, 그대의 집안이 다말과 유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게 하시기를 빕니다”(룻기 4:11-12, 새번역).

4) 구약학자 카일 델리취는 그의 주석에서 “다말을 구약의 성녀, 거룩한 여자”라고 평하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배경락

배경락 목사는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필리핀 선교사와 서북교회 담임목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미국 로고스교회 협동 목사와 기독교인문학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성경 속 노마드’, ‘사랑의 9가지 습관(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