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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참된 영적 기도가 절실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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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이승구  /  작성일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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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이 어려운 때, 기도할만한 때에 열심히 기도에 힘쓰면서 기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기독교적 기도는 구속받은 사람들이 우리를 구속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근거해서 말씀을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영적인 교제이다. 이 말씀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 보도록 하자.


1. 구속받은 사람들의 기도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 사건을 통해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루신 구속에 근거해서 감사하고, 그 감사의 최고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은혜를 받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사람들만이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143:1)라고 말할 수 있다. 구속함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고 약속하셨다. 시편 기자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구속받은 사람들로서 우리들의 구속자에게 감사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구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기도는 그저 참된 기도와 유사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 유사한 기도로 보이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성령님께서 이미 마음속에 역사하여 이루어지는 진짜 기도일 수도 있다. 그것은 후에 자신들이 참으로 믿게 되고, 성경의 가르침을 받으면 깨닫게 되는 것인데, 이미 역사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참된 기도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지 않는 기도와 모든 이교적 기도는 다 참된 기도의 유사물로 인간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음에 감사하면서 참으로 기도에 힘써야 한다).


2.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기도


참된 기도는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제대로 반응하면 우리가 경배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대상이 오직 성부, 성자, 성령 – 삼위로 계시는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진정으로 구속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 가면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성자에게는 기도할 수 없다는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이라고 교회는 선언했었고, 성부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는 성자께도 기도하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께도 기도하는 것이니 - 성부, 성자, 성령 각 위에게 성경에서 돌려진 일을 언급하면서 기도할 수도 있고 -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성부에게만 기도하고 예배하는 유니테리안(unitarian)은 이단이다).


따라서 그저 말로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긴다면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성경으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배워 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날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한다. 이것도 기도의 성숙의 한 측면이다. 점점 더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맛보아 알아 가는 것이다.


3. 구속 사건에 근거한 기도


우리가 무엇을 주께 구하는데 주께서 그것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의 어떤 것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기도 행위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느냐, 얼마나 열정적으로 기도하느냐, 얼마나 고난 받으며 기도하느냐 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구속받은 사람들인지를 물어야 한다. 위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참으로 구속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부지런히, 힘써서, 열정적으로(fervently), 그리고 모든 것을 다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도하는 시간, 열정, 헌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고, 성립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공로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그 놀라운 구속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롬 4:25). 그러므로 이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해서 우리의 예배도 주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고, 찬양도 받으시고, 기도도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었다(벧전 1:18-19). 우리의 대속자이신(마 20:28//막 10:45; 딤전 2:6)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기에(갈 1:4) 대속함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우리가 중생하였다(벧전 1:3).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리(代理) 구속(救贖)”, 즉 대속(代贖)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히 9:14). 그러므로 구속받지 못한 자가 아무리 열심히 무엇인가를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주께 상달될 수 없다. 오직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한 사람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사람들의 간구만이 주께 상달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구속만이 우리의 기도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이다.


4.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인 기도


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땅에 있는 인간인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전 5:2)과 날마다 영적인 교제를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런 실재를 표현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했다. 우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고 했다(요 14:16). 또한 성자께서도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실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 날에는 ...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했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했으니, 이것을 참으로 믿어야 한다. 성부께서도 그 거처를 우리와 함께 한다고 했다(요 14:23). 그러므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존재 자체가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비한 교제를 표현한다.


우리 존재에 구현된 이 신비를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기도이다. 먼저,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생각을 주께 아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바와 이 세상의 모든 정황, 특히 우리의 모든 정황을 우리가 생각한 대로 아뢴다. 그런데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구속함을 입은 사람이면 그저 자기 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이미 주신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아뢴 말들을 점점 받게 된다. 주께 아뢰다가도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생각과 표현을 교정해서 아뢰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다.


기도가 참된 것이라면 (1) 하루 종일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의식이 점증해 가면서, 동시에 (2)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특히 이와 같은 때에 더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고, 혹 금식하면서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는지를 드러내는 기본적인 시금석이다. 이것을 외적인 시금석(outer criterion)이라고 해보자.


우리가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는 것이 참된 교제인지를 드러내는 몇 가지 내적인 시금석들(inner criteria)이 있다. 첫째는 성경의 가르침에 더 주의하고, 그 가르침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 기도의 내용까지도 교정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점점 더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가까워진다면 우리가 참으로 기도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은 있고, 열심히 기도한다고는 하는데 점점 더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참으로 기도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 1:2; 수 1:8; 시 19:14).


둘째로, 그 결과 우리가 점점 더 명확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경륜 전체”(the whole council of God)를 깨닫는 데 나아가게 된다. 기독교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광대한 사상을 형성하는 데 나아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사상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SFC, 2018], 특히 제 3장을 보라).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 세상 속에서 진정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회적 제자도를 실천하며, 바른 실천(orto-praxis)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성경에 근거해서 생각하고 바른 실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뜻에서 『묵상과 기도 생각과 실천』 (서울: 나눔과 실천, 2015)이라는 책 제목을 생각하게 되었다.


셋째로, 그와 동시에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잘 표현하는 데 나아가게 되어 있다.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여 점점 더 성화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그의 인격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실현하여 참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셨으니,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형상이 우리에게 드러나도록 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의 형상이니,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면 하나님의 참 형상이 잘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 우리가 제대로 된 하나님 형상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금석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를 점검하자. 그리하여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이 어려운 시기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요나의 선상 기도회와 같은 어리석은 기도를 반복하지 아니하려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가 아니라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 참 하나님 백성들이 여기 제시한 시금석을 잘 드러내는 참 하나님 백성의 기도를 할 수 있기 바란다.

작가 이승구

이승구 교수는 기독교교의학(CHRISTIAN DOGMATICS)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로서,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졸업, 합동신학대학(MDiv)과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PhD)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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