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퍼 통신 1: 한국 교회의 후배들에게!
by 김은득2020-03-03

한국 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손봉호, 강영안, 류호준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이들은 모두 제가 설립한 화란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Amsterdam)에서 공부한 자타가 공인하는 카이퍼리안(Kuyperian)입니다. 한국 이외에 저의 모국인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캐나다,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거의 반세기(1870-1920) 동안 네덜란드 정치와 문화 영역의 중심에 서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목회자/신학자로서 출발했지만, 세상의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기독교-민주주의적(Christian Democrat) 정치인으로서 정통 칼빈주의적 색채를 띠는 민중들(Calvinist Common Folk)을 정치적·문화적 소외로부터 해방하고, 억눌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네덜란드 최초의 현대식 정당을 세웠습니다. 40년을 이끈 정당은 몇 번이나 집권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가 총리까지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후대의 역사가 제임스 브랫(James D. Bratt)은 인류 역사상 침묵과 압제를 당하는 비주류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성공적으로 각성시킨 사례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흑인 인권 운동과 저의 정치적 활동을 제시합니다(James D. Bratt, “Abraham Kuyper’s Public Career,” Reformed Journal 37, 10: 9-12.). 비주류의 해방과 각성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무엇보다 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세속화되어가는 네덜란드에서 칼빈주의적인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공적 영역에 참여하면서도 종교가 다른 사람이나 비(혹은 반)종교적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념도 충분히 인정하도록 한 점입니다.


이런 노력은 현대 네덜란드에서 이념적 기초에 따라 분류하여(verzuiling, pillarization) 정치사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양하게 분열된 정치 구조 속에서도 국가 전체의 공공선(the common good)을 위해서라면 정파간에 상생과 타협을 이루었습니다. - Arend Lijphart, The Politics of Accommodation: Pluralism and Democracy in the Netherlands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5). 이 책은 카이퍼가 구축한 현대 네덜란드의 범주화된 정치사회 구성이 적어도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이 부분은 아마도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면서도 타자와 공생하고,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세속화되어가는 네덜란드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정치적 영역의 성공이 아이러니하게도 저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1980년대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제 경우를 보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생겨난 오해들이 상당합니다.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보수적 기독교 단체를 창설해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운동을 일으켰던 제리 팔웰(Jerry Falwell) 목사는 1980년 대통령 선거 때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on)을 지지하면서 정치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레이건의 당선에 이바지하면서 팔웰 목사와 제가 한 공적 활동의 유사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유사성은 첫째, 저와 팔웰 목사 둘 다 지역교회 목사로 시작했지만, 국가 전체를 성경적 가치에 따라 개혁하기 위해 정치적 영역에 참여했습니다. 둘째, 개인의 경건을 최우선시하고 공적 영성에 무관심한 복음(개혁)주의자들을 각성시켜 동시대의 세속적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항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국가 전체를 개조하기 위해 기독교 교육 운동을 전개하고, 풀뿌리 정치적 네트워킹, 기독교 대학(팔웰의 경우 Liberty University)을 설립하는 등 동일한 스텝을 밟았다는 것입니다.


1988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직접 참여한 팻 로버슨(Pat Roberson) 목사 역시 저와 동일한 스텝을 밟았습니다. 그와의 유사성은 첫째, 시대와 문화에 뒤떨어졌다고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공론장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었던 기독교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제가 그런 목소리를 위해 신문(일간De Standaard, 주간De Heraut [The Herald])을 활용했다면, 로버슨 목사는 텔레비전(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을 이용했습니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대학교(로버슨의 경우 Regent University)를 세워 학문적 성과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셋째, 기독교-민족주의적 비전(Christian-Historical Imagination)을 제시함으로 팔로워들이 정치사회적 활동, 특히 기독교적 가치에 합당한 법률 제정 활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John Bolt, “Abraham Kuyper,” The Routledge Companion to Modern Christian Thought, eds. Chad Meister & James Beilby (London: Routledge, 2013), 86-87.). 이런 의미에서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son Hunter)는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교회의 지배적인 공적 증거는 정치적 증거였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정치신학의 한계와 가능성, 2014, 31).


다원화된 네덜란드의 정치와는 달리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정치가로 전향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이념에 기독교적 가치가 종속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기독교적인 가치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다고 해도, 매우 강력하게 이원화된 미국 정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이 최선이든 차선이든 편향된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팔웰 목사나 로버슨 목사 모두 공화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행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목회자들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는 미국보다 한국 교회가 더욱 심각합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제가 참여한 정치를 그런 편향성의 일례로 치부할까 염려됩니다. 물론 저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에 그런 편향성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다원화된 정치 영역에서 분명하게 소신을 지키면서도 상생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했습니다.


저와 한국 목회자들의 정치참여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의 영역에서 근본적인 것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진보정치를 따르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인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메시야처럼 바라보며 정치를 종교화합니다. 반면 보수정치를 따르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이용하여 자신이 혐오하는 정치인에 대한 표적 설교를 하거나 정파 편향적인 발언으로 종교를 정치화합니다. 즉 한국에서 목회자가 정치 무대에 나서면 나설수록 본질을 잊고 복음이 아닌 어느 정파의 대변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 역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지역신문사에서는 저의 기독교-민주주의적(Christian Democrat) 성향 때문에 민주당원으로 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 표기를 빼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편향성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미국 사회와 문화를 바꾸지 못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인정합니다. 기독교적 가치에 맞는 입법활동에 성공할 때마다 정치적인 승리에 도취하여 미국 기독교의 세속화를 가속했습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드 드레허(Rod Dreher)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정치인 베네딕트 옵션(The Benedict Option)을 주창했습니다. 베네딕트 옵션은 입법활동이나 이슈 중심적인 정치참여에 주력하는 것은 충분치 않으며, 교회가 베네딕트 수도원과 같은 대항적 문화 공동체로서 변화를 위한 교회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인격과 심성을 배양하기 위해서 베네딕트 규칙을 활용하고, 기독교 교육, 기독교 노동, 기독교 마을 등과 같은 하위문화의 소셜 네트워크를 실질적으로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베네딕트 옵션: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2017, IVP). 그런데 로드 드레허가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으로 제시하는 베네딕트 옵션을 저는 이미 실행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 저의 정치적 성공을 벤치마킹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 실질적으로 제가 조직한 하위문화의 소셜 네트워킹 부분을 영혼 없이 따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결성한 기독교적 소셜 네트워킹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일종의 해방 운동의 성격이 있습니다. 흑인 해방 운동처럼, 정치적 승리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제가 대변하는 이들이 편견과 무시에서 벗어나 동등한 투표권, 공평한 수업 권리를 획득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카이퍼리안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1981년 암스텔담 자유대학교에서 개최된 기념 강좌에서 저와 해방신학의 유사성까지 주장할 정도였습니다(Nicholas Wolterstorff,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The Kuyper Lectures for 1981 Delivered at the Free University of Amsterdam (Grand Rapids: Eerdmans, 1983).). 그리고 저의 공적 활동은 결코 개인적 경건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학적으로 가장 많이 공격한 부분이 바로 경건과 사회참여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바라보는 루터주의(Lutheran)적 관점입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제가 얼마나 애타게 그리며 목말라 했는지 궁금하다면 미국 칼빈신학교의 총장을 역임했던 제임스 드 용(James De Jong)이 최근 번역한 제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Abraham Kuyper, Honey from the Rock: Daily Devotions from Young Kuyper, trans. James De Jong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8).).

저와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참여를 올바르게 구분하여 살펴본다면,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 세계를 변화시켰던 저의 공공신학이 한국 교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세속화의 위협 가운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세상만큼이나 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심지어 세상이 한국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공공성 회복이 미국 복음주의의 경우처럼 공적인 영역,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의 영향력증가로 인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것은 한국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왕권(Kingship) 아래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ro Rege! (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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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은득

김은득 목사(PhD., Calvin Theological Seminary)는 신칼빈주의, 특히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공공신학을 한국적 문맥에 맞게 상황화하길 원하는 신학자로서 현재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드림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