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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지닌 한계와 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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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노승수  /  작성일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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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trick Fore on Unsplash

교회는 원리적으로는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공동체여야 하지만, 현실 교회들은 지역적인 색깔이나 계층적인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목회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목회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빌렘 벤게메렌(W. A. VanGemeren)은 “현실정치”라고 했다. 선지자의 메시지에 백성 대중의 목소리가 덧입혀지는 현상을 두고 한 표현이다. 예를 들면 가진 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목회하면 가진 자의 편으로 더 기울게 되고, 가난한 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목회하면 가난한 자의 편으로 더 기울어지는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칼 막스(Karl Marx)는 물적 토대가 우리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유물론에서 비롯된 통찰이지만 놀랍지 않은가? 그가 처한 현실이 그의 생각을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한다(골 3:2). 즉 목사는 가진 자의 편이나 가난한 자의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이 되어서 성경의 메시지를 선지자적으로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마저 허무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했고(엡 2:14), 실제로 교회는 위의 것을 추구하는 공동체일 때 계층의 갈등이나 양극화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네 개나 받았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얻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를 잘 다루었다. 그리스어로 기생충(Παράσιτα)은 “남의 식탁에 차린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묘사는 훌륭하다. 영화를 통해서 모두가 느끼고 공감하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현실로 남아 있다. 교회는 이런 문제로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목사는 어떤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고 위의 가치를 구함으로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것이 양극화의 문제든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문제이든지 말이다. 이런 문제에서 다수의 소리, 회중의 목소리가 목사의 가르침을 오염시키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 벤게메렌이 말하는 현실정치의 구체적인 사례를 성경 속에서 찾는다면 예레미야서에서 볼 수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는 “까불지 말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라. 이것을 하나님이 정하셨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민족주의를 표방하던 사람들과 거기에 편승했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 유다를 버리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외쳐댔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는 여러 가지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메시지로 인하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듣기 좋았던 거짓 선지자의 목소리를 취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는 버렸다.


유다 백성의 시각에서 예레미야는 매국노처럼 비쳤고, 거짓 선지자들은 애국주의자이자 참 선지자처럼 이해되었다. 이런 문제는 한국 사회의 상황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예레미야는 마치 일본이나 북한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며, 나라를 파는 매국노처럼 보인다. 내부적 논리로는 일본을 혐오하는 것이 더 인기 있을지 모르며, 북한에 대한 경험적 반공주의를 부르짖는 태극기 부대의 메시지가 더 정당해 보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상황을 경험적으로 보면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을 향해 “토착 왜구”라는 표현과 친일적 행위에 대한 혐오를 분명하게 보이며, 보수 진영은 “태극기 부대”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반공 이미지와 기독교가 완전히 결탁한 상황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라면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이 더 인기 있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듣고 싶던 소리였다. 벤게메렌은 다수의 대중이 듣고 싶은 소리를 “현실정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우상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이런 현실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성경의 메시지여야 한다. 우리가 물적 토대인 생산수단에 기대어 살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사의 설교가 중요하며 목사가 지닌 태도가 중요하다.


오늘 목사들의 설교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이 듣고 싶은 소리를 외치는 것으로 현실 정치화한 현상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다수의 기독교인이 촛불집회와 태극기부대로 나누어 같은 성도들끼리 척을 지고 사회와 국가와 교회의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교란 단지 설득의 절차만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세상의 목소리는 소수자 문제를 들어서 교회가 선포하는 진리가 틀렸다고 한다. 지금 자라는 세대의 젠더 교육에 이런 시각이 가득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수자의 권익과 성경이 하나님과의 관계 왜곡에서 비롯된 죄로 인하여 정죄한 동성애는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 성경의 메시지는 때로 매국적 상황을 부르기도 하며, 때로 사회적 상식에 반하기도 하며, 다수 대중의 눈높이와 맞지 않기도 한다.


목사의 시각은 교회의 양무리를 목양하면서 그들과 시선을 맞추면서도,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간혹 어떤 연로한 목회자들이 자기가 속한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때면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렇다고 젊은 목사들이 무조건 낫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속한 시대의 다수는 대중의 목소리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라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되고 말 테니까 말이다. 목사는 자신의 속한 그룹의 한계를 넘어 성경에 그 시선을 고정한 사람이어야 한다.

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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