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은 목사를 ‘엄선’하는 것부터
by 장대선2020-02-25

우리의 신학 현실을 보면, 의외로 교회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즉 교회라 할 때 ‘개별 교회’로서만 이해를 할 뿐,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처럼 부정확한 교회에 대한 이해를 보완(혹은 극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하는데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온전하게 대처할 수 없다.


사실 참된 교회는 오직 천상의 교회이며, 그런 교회가 이 지상에서 구현되는 것은 예배당이나 회중들의 규모, 혹은 조직과 같은 형태로서가 아니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가시적 교회’라고 명시하고 있다. 가시적 교회는 한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모든 자와, 그 자녀들로 구성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 2항)고 했다. 그처럼 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 세계적으로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과 그 자녀들로 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으로서, 그것은 ‘유형적인 교회’(A tangible church)가 아니라 ‘가시적 교회’로서 이해할 때 비로소 교회의 바른 인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상의 교회, 즉 가시적 교회는 항상 교회의 표지(sign)에 의해 분별이 되니, 잘 알고 있는바 말씀 선포와 가르침, 그리고 성례의 올바른(성경의 규정적 원리에 따른) 시행, 또한 (성경에 근거한 규정적 원리로서의) 권징의 시행이라는 세 표지에 의해서다. 따라서 그런 표지에 연계되는 직분들, 특히 치리회를 구성하는 목사와 치리장로의 직분은 교회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직무를 수행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것이다.


일찍이 개혁된 교회로서 장로교회 정치를 광범위하게 구현했었던 프랑스 신앙고백(1559)은 교회에 관한 고백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교회의 직원에 대한 고백을 제시한다. 즉 제29조에서 “우리는 참된 교회에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확립된 규율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하면서, 곧장 이르기를 “그러한 교회에 목사, 장로, 집사가 있는 까닭은 순전한 교리를 전수하고, 악덕을 개혁하고 억제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구제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거룩한 집회에서 성인과 아이 모두 교화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바로 이 같은 고백의 기초로부터 교회에 대한 모든 신앙고백이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 개혁교회의 치리서(1559) 또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바로 교회 직원에 대한 규정(canon)인데, 특별히 목사에 관하여는 무려 57개의 규정으로 목사에 관한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1조를 보면 “성직의 조건을 갖추고서 목사로 선택될 사람은 사도들의 규정(Canon of the Apostle)을 지켜야 하므로, 가능한 한 모든 성실함으로 그들이 교리를 잘 숙지하고 있는지 점검을 하며, 또한 [그것을] 가르칠 수준이 되는지, 아울러 그들의 행실 또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2조에서는 이르기를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신자인 경우, 특히 사제와 수도사는 오랫동안 그리고 성실한 질의가 없거나, 교리와 생활면에서 증명이 없거나, 개종한 지 적어도 2년이 지나고 그들이 속한 삶의 자리에서 선한 증언으로 확인된바 없이는 성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지방 대회와 전국 대회의 조언 없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과 다름이 없는 자에게 안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신앙과 인격에 있어 확실한 자가 아니면 목사가 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네바로 피신한 영어권 회중들로 구성된 제네바 피난민 교회의 예배와 치리에 관해 규정한 제네바 치리서(1556) 역시 치리에 관해 규정하면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목사에 관한 것인데, “1. 목사들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하기를 “교회가 선출될 사역자를 부지런히 숙고하게 하여 사도 바울이 그 소명을 가진 사람에 대해 꾸짖은 그러한 과실을 발견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장점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책임을 맡을 수가 있었고 부지런히 이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여,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한 디모데전서 3장 2-7절 말씀을 목사에게 직접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16세기 개혁된 신앙과 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목사에 대한 것, 그리고 그와 더불어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였다. 그것 없이는 그 어떤 지엽적인 개혁이나 개선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으며, 특별히 가르치는 사역과 다스리는 사역에 공히 참여하는 목사 직분이야말로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그리고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절대적이고도 중요한 직분이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단 현실에서는 프랑스 개혁교회 치리서 2조에서 말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과 다름이 없는 자”들에게 안수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심지어 목사의 경우에 그 어떤 스캔들에 연루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면직의 사유가 될 수 있을 만큼 엄격한 권계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16세기 개혁된 교회들의 치리규정 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들을 얼마든지 묵인하며 숨기고서 직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더구나 그런 자에 의해 개혁이 언급되고 개혁신학이 논의되는 일까지도 일어나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치리 혹은 권징의 수준이다. 더디다 할지라도 목사들을 엄선하여 세우는 것이야말로 참된 교회개혁의 시작이자 정도일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장대선

장대선 목사는 도서출판 고백과문답 대표와 장로교회정치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교리 연구가로 활동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스터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제2치리서’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