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와 전도의 관계
by Michael Keller2020-05-31

주일 예배에서 전도(evangelism)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주일 예배에 참석한 회중이 모두 신자들이라고, 혹은 불신자들이라고 넘겨짚어도 되는 걸까? 


고린도전서 14장 23–25절은 초대교회 예배에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참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배를 위해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자였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미쳤다”며(23절) 거부감을 보이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25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신자들이 자신의 행실을 돌아봐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물론 이것은 예배 구성 요소 모두를 불신자들이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 하려면 예배가 아니라 콘서트나 토크쇼를 열어야 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 찬송은 불신자들에게 어렵다. 성찬식도 그들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일 것이다.


죄의 끔찍한 본질, 예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를 회중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하는 설교야말로 불신자들에게는 가장 어렵게 다가올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고전 2:14)에게는 복음이 언제나 불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드려지는 예배이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예배의 많은 부분이 생경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바울은 복음에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수치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을 감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적절히 상황화(contextualize)하여 불필요한 혼란과 불쾌함을 없애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 수준으로 여기지 말라 하신 것처럼(막 7:8–9), 우리 역시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예배 방식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복음을 꼭 들어야 하는 이들을 배제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다만 시편 105편 말씀처럼,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 이 일을 해야 할까? 시편 105편은 계속하여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라고 선언한다. 이 말은 믿지 않는 이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Clowney)는 이를 일컬어 ‘송영(頌榮)으로 하는 전도’(doxological evangelism)라 했다. 


엄격한 의식이 아닌, 일반적인 방식


성경은 예배에 대해 엄격한 모델을 제시하지 않지만 찬송, 애통, 죄의 고백, 확신, 그리고 파송에 대한 일반적인 방식들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신자와 불신자를 모두 가르칠 수 있는 예배의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이 예배에 올 것이라는 가정 하에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친구나 동료를 교회로 초청한 교인들은 그들이 예배 중에 불편해 하는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적어도 다섯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각 항목에는 실천 사항들이 있다. 


기준 1: 우리가 쓰는 말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가 주변부로 밀려난 요즘 상황에서는 이 점이 교회에게 가장 어려운 걸림돌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기독교 문화는 너무도 오랫동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기들만의 언어”와 방언을 쓰며 존재해왔다. 


필자가 대학 시절 그리스도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신자 친구 한 명을 교회에 데려온 적이 있다. 예배 중에 설교자가 “어린 양의 보혈이 여러분의 죄의 구속을 위해 흘려졌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결단할 시간입니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실천 사항: 알기 쉽게 설명하라. 나는 설교문을 작성할 때 종종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그들이 설교 본문이나 설교에서 설명하는 개념에 대해 가질 만한 반론이나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불필요한 기독교 용어를 피하라. 사람들이 모르는 말을 써야만 한다면, 그 의미를 설명해 주라.  


기준 2: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예배라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에 대해 끊임 없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예배(worship service)라는 개념을 낯설어 한다. 기독교가 주류 문화가 아닌 요즘 시대에 이를 설명해 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사실 이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실천 사항: 필자가 섬기는 리디머링컨스퀘어교회(Redeemer Lincoln Square)는 각 예배 순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보 여백에 설명을 달아 놓는다. 예를 들어, 죄를 고백하는 순서의 경우 이렇게 적혀 있다. “죄의 고백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허상들을 좇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 삶을 재정비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가 우리의 허물들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기준 3: 적합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SNS가 계속 광범위하게 퍼지고, 사람들이 잘 포장된 자기 모습만을 온라인에 올리면서 불신(distrust)이 생겨나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성을 갈망한다. 우리 삶이 항상 행복한 일들로만 가득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에만 가면 모두들 행복한 모습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진실된 모습, 죄인이지만 소망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우리 예배 중에 보여 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실천 사항: 예배에는 소망에 관한 것뿐 아니라 항상 애통과 죄의 고백에 관한 요소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개인사를 지나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내가 겪는 어려움을 교인들과 나눔으로써 이 기준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기준 4: 믿지 않는 이들도 예배에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설교 중에, 불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가진 반론들을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진술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이에는 두 가지 유익이 있다. 그러한 반론들을 이미 들어봤고 기독교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불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어떤 우려를 가졌는지 당신이 잘 이해한 내용을 진술하면, 예배에 나온 불신자들은 목사가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천 사항: 네 가지 정도를 실천해 볼 수 있겠다. 첫째, 교인들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동안 믿지 않는 이들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기도문을 인쇄하여 나눠주라. 둘째, 예배 시작 전에 불신자들을 소개하고 환영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다. 셋째, 설교를 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라는 말을 넣으면 목회자가 그리스도인 된 교인들을 향해서도 설교하고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넷째, 설교 후 Q&A(질의응답) 시간을 도입해 보라. 우리 교회에서는 이 시간을 Q&R (Question and Response, 질문과 반응)이라 부른다. 질문에는 반드시 반응을 보이겠다는 뜻이다. 주보에는 목사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어서 질문이 있는 이들은 누구든지 예배 후 15분에서 20분 내에 문자 메시지로 질문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기준 5: 말씀과 삶을 분명하게 제시하라


불신자든 신자든 모두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분명하게 선포되는 은혜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과거의 죄를 해결하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미래의 삶에 대한 확신으로 이끈다. 기독교 교리는 중요하고, 배워야 마땅하지만, 교리는 우리가 먼저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그를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게 된다. 의무감이 아닌 사랑 때문이다. 죄책감에 근거한 의무가 아닌 감사가 우리에게 끊임없는 동기를 부여한다.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선한 삶을 위한 능력은 그제서야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실천되는 모습을 불신자들이 보지 못하면 그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예배 중에는 사역 보고 및 헌신자 모집 광고를 통해 다양한 긍휼 사역 및 실천 사역을 부각시켜 보여 주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예배 참석자들은 이를 통해 은혜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는지 보게 된다.  


실천 사항: 이 항목에 대한 실천 사항 역시 네 가지다. 첫째, 분기마다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해 애통해 하며 우리가 이 세상의 필요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시도해 보라. 둘째, 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고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사역 기회들에 대해 예배 중에 광고하라. 셋째,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주시하면서 기도하며 걷기(prayer walk)를 해보라. 넷째, 신자든 불신자든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참된 은혜를 믿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매 설교마다 강조하라.  


물론 이 글의 내용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섬기는 교회와 주일 예배가 교회에 오는 모든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당신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re Does Evangelism Fit on Sunday Morning?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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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ichael Keller

마이클 켈러는 암스텔담 Vrije Universitiate(PhD)에서 공부하고 2017년 4월 아내 사라와 함께 Redeemer Lincoln Square 교회를 시작하여 보스턴과 뉴욕의 교회들을 12년 넘게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