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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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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Bernard Howard /  작성일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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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amantha Borges on Unsplash

신약성경의 용법상 ‘에클레시아’는 ‘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임’과 상관없는 대상을 의미한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In every New Testament usage, while ekklesia can mean more than a gathering, it never means something unrelated to a gath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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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처음으로 영국에서 인터넷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트는 지금도 사역자 한 명과 몇몇 회원들이 교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트를 과연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미국에서는 여러 지역에 캠퍼스를 둔 교회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말로 한 교회가 여러 지역에 위치하는 게 가능한 걸까?


나는 여기서 신학적인 꼬투리나 잡으려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기에 그러한 물음을 던지는 거다. ‘트레이닝 리더스 인터내셔널’(Training Leaders International)의 대표인 대런 칼슨(Darren Carlson)은 이렇게 지적한 바가 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상황이 오늘날 선교 사역에서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이 지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관해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교회의 사전적 의미


‘교회’라는 단어는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종교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교회’로 번역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원래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었다. 1세기 당시 비기독교인은 ‘에클레시아’를 종교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단순히 ‘모임’ 내지는 ‘집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사도행전 19장 32절에서와 같이) ‘에클레시아’가 그처럼 평범한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개는 무엇인가 새로운,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그 개념을 나타내는 데 ‘에클레시아’의 평범한 의미(즉 ‘모임’이나 ‘집회’)가 적합했기 때문에 신약 저자들은 그 단어를 선택했다. 물론 신약성경의 용법상 ‘에클레시아’는 ‘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임’과 상관없는 대상을 의미한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우주적 모임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모임은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백성이 회집하는 모임이다. 그 모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중략]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중략]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계신 곳이라고 성경은 말한다(히 12:22-24).


또한 “[너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도 말한다(엡 2:6; 참고 골 3:1-4).


더 나아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있다고도 말한다(벧전 2:4-5).


이러한 진리는 1959년부터 1985년까지 무어신학교 총장을 역임한 브로우튼 녹스(Broughton Knox)가 쓴 ‘교회와 교단’(The Church and Denominations)이라는 에세이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 내용을 참고하면, 현재 그리스도는 천상에 계시므로 신약성경에서 그분이 교회를 세우신다는 개념을 사용할 때는 바로 그 천상을 염두에 두고 그런 개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란 그분이 자신을 중심으로 존재하도록 부르신 모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천상 교회는 단지 미래에 존재하게 될 실체가 아니라 현존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모임의 일원으로, 즉 그분과 함께 천상에 모인 지체라고 생각해야 한다.


현재 이 모임은 육적이라기보다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적인 모임이 육적인 모임보다 덜 실제적인 모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그분과 같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이 땅(골로새)과 하늘(그리스도 안)에 동시에 있는 상황을 표현한다(골 1:2).


혹 영적인 모임과 육적인 모임을 서로 혼동시킬 우려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자신이 그러한 천상 교회에 속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봄으로써 확인할 때가 있다. 즉 믿음으로 내 몸이 길게 늘어나서 발은 이 땅을 밟고 있고 머리는 하늘까지 치솟은 그림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과 다른 지체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본다. 또 다른 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TV쇼에 등장하는 출연자가 시청자에게 말하기 위해 카메라를 바라보는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는 출연자가 두 가지 세상에 공존하는 상황과 같다. 말하자면 TV쇼가 진행되는 세상과 시청자가 자리하는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대사로 지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분과 함께 천상의 모임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의식하는 한, 우리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출연자같이 된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적 모임


지상 교회를 살펴보기 전에 천상 교회부터 알아본 이유는, 이 땅에 있는 교회는 하늘에 있는 교회를 구현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이 구절은 지상 교회에 대한 교훈을 마무리하는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천상에서와 같이 지상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 존재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이 땅에 계시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모임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와 같은 모임이 일어나게 된다고 답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는 일은 다름 아닌 말씀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요 20:29-31). 그렇다고 성경만 가지고 신자들이 모인다고 해서 자동으로 교회가 세워진다는 말은 아니다. 문맥상 마태복음 18장 20절이 언급하는 모임은 공식적인 권징을 시행할 만큼 책임감 있는 지체들이 반복해서 모이는 공동체를 의미한다(마 18:17-18).


하나님의 작품인 교회


우리는 참된 교회를 분별할 때 외적인 특징, 이를테면 복음의 선포라든가 성례의 신실한 시행과 같은 특징을 기준으로 삼아 살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적인 특징을 가졌다고 해서 그 모임을 곧 교회라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교회를 정의하게 되면,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 있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중요한 역할을 간과할 수 있다(참고 행 20:28; 계 2:5).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바울의 공동체 사상’(Paul’s Idea of Community)이라는 책에서 그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다. “에클레시아는 단지 사람들의 연합, 그러니까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일으키신 모임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교회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아무 그룹이 아니라 특정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마태복음 18장 15-20절에 소개되는 교회도 수시로 모여 공식적인 권징을 시행할 수 있을 정도의 공동체를 의미했다.


물론 이런 정의에 기대어 예수님이 먼저 교회라는 모임을 이루시기를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교회를 일으키고 지탱하기 위해 인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일을 위해 보냄 받은 자라면,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전력해야 한다(골 1:29). 칼빈이 설명한 바처럼 “그분은 ‘목사와 교사’[엡 4:11]를 세워 그 입술로 자기 백성을 가르치게 하시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4권 1장 1절).


주일과 주중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지상 교회를 마치 천상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조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커다란 파이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처럼 말이다. 오히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하늘에 있는 교회의 실재를 보여 주는 모형과 같다. 그래서 천상 교회, 즉 예수님을 중심으로 지금도 하늘에 존재하다가 그분이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그 모습을 드러낼 교회의 구성 요소는 지상 교회에도 다 내포되어 있다(골 3:4). 이 사실은 교회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이 땅에 모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하늘에서도 우리와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우리 모두, 그분 앞에서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함께 모이게 된다. 이 사실을 묵상하다 보면, 교회에서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특히 그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한다면 말이다.


또한 우리는 서두에서 던진 물음에 대해 교회론적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 지역 교회란 우리의 실제적인 몸이 참여하는 교회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지역에 캠퍼스를 둔 교회도 하나의 대형 교회가 아닌 리더십이 결집된 여러 교회들의 연합으로 보는 게 성경적이다. 그렇게 바라볼 때만, 그와 같이 연합된 조직이 각 지역에 있는 교회의 자립을 충분히 도와주는 일시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목표를 갖지 않은 채 여러 지역에 캠퍼스를 두게 되면, 그 교회는 엄격히 말해 성경적인 모델에서 벗어난 교회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이탈은 막대한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목회자의 타락이 가져다주는 피해는 엄청난데 만일 그 목회자가 다양한 지역에 있는 수많은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다면, 그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란 당연히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역 캠퍼스를 두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자신이 왜 그토록 여러 캠퍼스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지 한번 돌아봐야 한다. 자레드 윌슨(Jared Wilson)은 유명 연예인과 같이 되는 목회자에 관해서 어느 아티클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노골적으로 꼬집어 이렇게 말했다. “교회를 개척하기보다 프랜차이즈하는 일은 소비자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과 같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단지 두세 사람이라도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물론 신약성경은 장로에게 요구되는 성품이라든가 능력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모이는 사람의 자격 요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요건을 들어 마태복음 18장 20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 분명 우리 앞에는 가슴 벅찬 일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주님께서 수많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그날까지 세계 각지에 교회가 개척되고 오래된 공동체는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 끊임없이 갱신되는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at Is This Thing Called Church?

번역: 장성우

지상 교회를 마치 천상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조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커다란 파이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처럼 말이다. 오히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하늘에 있는 교회의 실재를 보여 주는 모형과 같다

The local church isn’t a piece of the heavenly church—like a tiny chunk broken off a big cookie. Instead, it’s a miniature realization of the whole heavenly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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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Bernard Howard

버나드 하워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다. 최근 아내와 함께 유대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맨하탄의 Upper West Side에 Good Shepherd Anglican Church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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