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성경과 참된 신학
by R. Carlton Wynne2021-07-29

말씀으로부터 신학을 한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초이며 모든 참된 신학을 위하여 유일하게 오류가 없는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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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신학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을까? 성경은 분명하게 “예”라고 답변한다.


말씀으로부터 건강한 신학을 확립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의 소명이요 특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자 하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창조를 통한 그의 계시 뿐 아니라(시 19:1-6; 롬 1:20),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1:1-2).  이러한 하나님에 의한 자기 계시는 우리를 위하여 성경 가운데 기록되었다. 손에 성경을 들고서, 우리는 오늘날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사 48:16). 언어의 창조자요 가장 처음 말씀을 전하신 분으로서(창 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자들에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다(창 1:26-27).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소통의 목적을 무마시킬 수 없다.

 
바른 관점에서, 신학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말씀’ 혹은 ‘말’이라는 의미의 ‘logos’와 ‘하나님’이라는 의미의 ‘theos’의 합성어) 만일 우리가 적어도 ‘신학을 한다’면, 이것은 신학(문자 그대로 하나님과 관련된 지식 혹은 학문)이 하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먼저 전달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심지어 성경으로부터 어떻게 신학을 세워 가느냐를 고려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참된 신학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코람데오) 완성되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행 17:28).
 

말씀의 신학


따라서 말씀으로부터 신학을 한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초이며 모든 참된 신학을 위하여 유일하게 오류가 없는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딤후 3:16) 성경 말씀이야 말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해야 하는지 우리를 지도해 주는 유일한 규범”이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번). 성경은 그분의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그 말씀을 공급해 주신 성육신한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롯된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오직 성령의 감동을 입을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벧후 1:21). 하지만 다른 본문에선, 베드로는 격려하며 숨을 불어 넣는 성령은 그야말로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벧전 1:11)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보내신 편지이다(계 2-3; 22:16을 보라). 그리고 이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주신 것처럼(요 5:21), 그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좌우의 날이 선 검보다 예리한 것”으로써 존재한다(히 4:12). 모든 성경은 “아주 세세한 부분”(“jot and tittle” KJV의 표현 참고)까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며, 그분 자신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게 될 것이다”(사 40:8, 벧전 1:25).


안타깝게도, 자칭 신학자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문장을 비슷한 의미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러한 의미를 지니지 않은 장황하기만 한 문장으로 치환한다. “성경은 계시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며, 성경 그 자체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는 더 모호하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다.”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더 함축된 표현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목격한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비극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고수하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참된 지식인 성경에서 일탈하게 되며, 교회를 향해선 변화무쌍한 주장과 거창한 말들 외엔 그 어떠한 것도 공급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맞서, 시편기자는 주님께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시 119:99)라고 말이다.


성경으로부터 신학을 행하는 것


그렇긴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성경으로부터 자신들의 신학을 세워 가야 할까? 그 답은 언제나 기도하며 인내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배우는 학생들이 수 세기 동안 자연스럽게 해온 것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즉, 단순히 그들의 직면한 상황 속에서 특정 본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발견되는 다른 본문들과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추적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으로부터 신학을 한다는 의미는 성경이 유기적으로 우리들에게 밝혀주는 그리스도 중심(Christ-centered)의 진리의 줄기가 함께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말씀이 그분 스스로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왔기 때문에(신 32:4, 요 3:33), 말씀 그 자체는 결단코 모순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통일성은 우리가 각각의 구절이 갖는 궁극적인 콘텍스트로서 성경 전체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초로 신학을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의 중심에 놓여 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 죄, 그리스도, 교회, 천국 혹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여러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하는가?” 성경의 무한한 깊이는 우리가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인도 할 뿐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정당하고 필연적인 결론”(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으로 유추될 수 있는 많은 진리(삼위일체 교리와 같은)를 쫓아가도록 인도한다. 우리가 성경을 이러한 방법으로 연구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의 계시 가운데로 더욱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엡 3:10을 보라).
 

능력을 공급해 달라는 기도처럼, 성경의 체계적 연구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인내와 연단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벧후 3:16) 부분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경건하고 건전한 교사와 성경 주석 그리고 과거에 교회에서 이미 성경에 대해 다룬 묵상의 내용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만 한다. 무엇보다, 그것들 역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선물이다(엡 4:11-14). 하지만 그러한 자원들이 성경을 읽는 동안 우리를 돕는 반면, 우리들의 최종 권위는 반드시 영감된 성경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초로 신학을 세워 나갈 때, 우리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주의자들이 싸워 지켜낸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유려한 문체로 기록된 말씀 해석의 주요 원리를 잘 기억해야 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무오한 규범은 성경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의미(그것은 다수가 아니라 하나뿐이다)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는, 반드시 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에 비추어 탐구하고 이해되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9.1). 숨긴 장소가 발각된 보물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그곳을 파헤치는 만큼,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과 그가 보낸 구원자를 알게 되는 영원한 풍성함을 얻게 되며(요 17:3), 심지어 주 예수께서 동시에 그들을 더욱 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 시켜 가실 것이다(고후 3:18).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대로,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기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빌 2:12-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당신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신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향하여 “진리의 영”이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6:13). 성경 말씀에 영감을 불어 넣은 동일한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셔서 알도록 하신”(고전 2:12) 구약과 신약 성경을 연구하는데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성경에 대한 진지한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축복하시는 모든 방법의 충만한 유익(매주 듣는 선포된 말씀과 성도의 교제 그리고 기도 등)을 사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침내 이해하게 될 것이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마 13:23; 막 4:20).


우리의 신학을 말씀으로 가져오는 것


위험은 언제나 잠복해 있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비성경적 편향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할지 모른다. 우리는 주해(Exegesis)를 하고 본문 ‘자체에서 뽑아낸’ 진리를 읽기 보다는, 때때로 우리는 자기 주관적 해석(eisegesis)을 하며, 무엇인가를 읽고 실제론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의 문제를 극복해 주신 것처럼(롬 5:15-17), 그의 말씀은 우리가 초래할 만한 잘못된 가정을 드러내시고 바르게 고쳐 주실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우리는 다양한 추측들이 우리들의 성경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대신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읽어낸 것을 기초로 추측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사실, 더 나은 본문 주해를 위해 성경적 기반이 잘 갖추어진 신학적 구조를 위한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이 우리의 선험적 추측과 맞지 않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가 말씀에 대한 더 잘 정돈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 결과는 일종의 “해석학적 소용돌이” 같은 것으로, 우리들이 말씀을 읽는 것을 기초로 발전시켜온 신학적 관점에 대한 반복되는 검토와 평가를 의미하며, 그러한 우리들의 신학적 관점은 계속해서 향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신자들은 아마 예수님께서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배웠을 수도 있다(요일 3:5). 그러나 이것만으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러한 지식은 그들이 구약에 묘사된 유대인 제사법에 관해 읽는 출발점이 된다. 불현듯 히브리서 10장 4절(“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을 읽자마자 새로운 신학적 통찰력이 생겨난다. 즉, 이스라엘의 희생 제사는 장차 오실 죄를 위한 유일하시고 효험있는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를 예표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히 7:27; 9:26).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지식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라간다. 그리고 머지않아 요한복음 1장 29절(“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에 선포된 세례 요한의 말씀이 새로운 광명으로 빛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비롯한 신학의 열매


만일 참된 신학이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면, 신학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모든 성경을 읽는 참된 목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그보다 더 높은 목적 때문에 우리들에게 임하셨다, 즉,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 그리스도와 교제의 연합 가운데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다. 감사하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을 통하여 이 두 가지 목표를 함께 결합하셨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나타난 신학을 위하여 말씀을 읽을 때, 이러한 우리의 연구는 참된 예배에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은 어느 누구도 나누지 못할 것이다.




원제: Studying Scripture and Doing Theology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정진호

만일 참된 신학이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면, 신학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모든 성경을 읽는 참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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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 Carlton Wynne

칼튼 윈은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그는 미국 장로교회 목사로 섬겼다. 데릭 토마스와 함께 'Zeal for Godliness'를 공동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