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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예수님은 영원한 형벌을 단 몇 시간 만에 다 받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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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ndrew Menkis  /  작성일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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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stock

예수께서 영원히 형벌을 받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가 죄에 대한 전적인 형벌인 영원한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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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 속죄의 논리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그는 우리의 형벌을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성경에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 두 개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죄는 영원한 형벌을 부른다(마 18:8; 살후 1:9; 계 14:11; 20:10). 


둘째,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영원히 형벌을 받으신 것이 아니다. 이제 더는 하나님의 진노를 겪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히 9:25–26). 


성경이 가르치는 이 두 가지 진리로 인해 우리에게 질문이 생긴다. 예수께서 영원히 형벌을 받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가 죄에 대한 전적인 형벌인 영원한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답하려면 우리를 속죄의 논리로 인도해주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해봐야 한다. 


1. 사망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말한다. 사망은 하나님께 반역한 것에 대한 형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경고하셨다. 아담이 그 열매를 먹자마자 죽은 것은 아니나, 그는 에덴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므로 사망은 하나님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말하고, 사망의 최종 단계는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이다. 지옥이라 해도 하나님의 존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주받은 이들에게 하나님은 재판관과 형벌을 집행하는 자가 되신다. 


2. 영원한 지옥이란 무엇인가?


영원한 형벌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존재로 지으셨기에 반역과 불신을 택할 경우 그 결과 역시 영원하다. 둘째, 무한한 창조주에게 범한 죄에 대해서는 무한히 비통해해야 옳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벌 선고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지만, 위와 같은 생각으로 인해, 예수께서 지금도 계속 성부 하나님께 형벌을 받고 있다고 추론할 수도 있다. 또는 예수께서 우리가 받아 마땅한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우리 죄를 속하는 데 부족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죄에 대한 형벌은 시간이라는 차원에 있어 영원하다. 하지만 질적인 차원에서도 무한하다. 달리 말하면, 형벌에는 ‘시간적인’ 요소가 있는가 하면 ‘완료성’(completeness)의 요소도 있다는 뜻이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구들에게 욕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100번 쓰게 하는 벌을 준다고 생각해보자. 이를 쓰는 데 30분이 걸리건 세 시간이 걸리건, 그 학생이 100번을 다 써야만 이 벌이 끝나는 것이다. 속죄도 마찬가지다. 형벌이 지속된다는 개념과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하게 퍼부어졌다는 개념을 잘 구분하여 생각하면, 무한한 존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영원을 보내지 않고도 우리의 형벌을 대신 지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 속량이란 무엇인가?


'속량'이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네 번 사용되었다(롬 3:23–25; 히 2:17; 요일 2:2; 4:10). 속량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가라앉히거나 잠잠케 하는 희생제물을 말한다. 이 희생제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진노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변화된다. 


이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속량임을 가르친다. 완전한 희생제물로서, 그의 죽으심은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케 하실 수 있다. 성경은 이것이 단회적인 사건임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형벌을 완전히 짊어지셨다. 이런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히 9:24–28). 그렇다면, 예수께서 영원히 형벌을 받지 않으셨는데도 그가 우리의 속량이 되실 수 있을까? 다시금 딜레마에 빠지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에 답하려면 우리는 지옥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4. 지옥에 죄인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지옥에 있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존재’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흘러나오는 것이라 가르치셨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반역 상태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 내내 원하던 것, 즉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과 반목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내어주신다.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삶이 아닌 그를 영원히 증오하는 삶으로 내어주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생에서도 바로 그런 삶을 원했다. 누구도 지옥의 고통을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과 떨어지고자 했던 이들을 지옥으로 보내신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이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는 죄를 짓기로 결정하고 회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옥에 영원히 ‘있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에 지은 죄 뿐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죄인인 상태라서 지옥에서의 그들의 삶이 영원한 것이다. 죄인들과 죄 없으신 예수님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가 이것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셨다. 그러므로 그가 죄에 대해 완전한 형벌을 다 받기까지 그 기간이 영원할 필요는 없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 위에 남김없이 부어졌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그 사실이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고 영광 중에 그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사실이 그가 우리의 구주라는 확신을 더해준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논리적인 복음을 전하라


복음은 불합리한 이야기가 아니다. 구원 계획에 있어 하나님은 스스로 모순되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제시하는 복음 역시 듣는 이들에게 이해가 되어야 한다.  


복음의 논리를 더욱 잘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삶에 더 잘 적용할수록 다른 이들에게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복음을 듣는 모든 이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이상하고, 불쾌하며, 완전히 바보 같은 소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는 놀라운 논리에 대해 충분히 묵상했다면, 복음이 일관성이 없고 자기 모순적이거나 비논리적으로 들리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원제: How Did Jesus Suffer Eternal Punishment in Only 3 Hour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이정훈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 위에 남김없이 부어졌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그 사실이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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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ndrew Menkis

앤드류 멘키스(MAHT,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는 Washington Christian Academy의 신학과장으로서 신학과 영화, C.S.루이스의 저서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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