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진화를 믿을 수 있는가?
by Gregg Allison2021-08-07

진화론적 세계관은 이제 현대 서구 사회 대부분의 분야를 지배한다. 비극적으로, 이런 세계관은 오늘날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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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진화라는 용어와 친숙하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할 때 내가 공부하는 모든 과목, 그러니까 생물학, 식물학, 생태학, 미생물학 등은 다 진화의 관점에서 출발했다. 말 그대로 진화는 다음과 같은 정의에 딱 맞다. “모든 생명체가 생명이 아닌 물질에서 비롯되어 무작위 돌연변이가 발생하며 수십억 년 동안 어떠한 목적이나 계획 없이 자연 선택과 종에 따라서 발전했다는 이론이 진화이다”(‘베이커 신학 용어 간략 사전’[Baker Compact Dictionary of Theological Terms​]).
 

산소, 수소, 질소 및 탄소와 같은 원소가 모여서 공기, 물 및 금속과 같은 비 생명체 뿐 아니라 나무, 잔디, 곤충, 새, 코끼리 및 인간과 같은 생물체를 형성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진화에 따르면 관찰이 불가능한 수준에서, DNA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해 조금이라도 혁신적인 면을 가진 생물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우연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측면을 가진 식물이나 동물 종류, 즉 종(species)은 생존에 유리하게 발전했고 마침내 진화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비 생물체 및 생명체를 생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 어떠한 방향이나 목적이 없다는 것, 즉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신론적 진화란 무엇인가


진화의 하위 단계에 있는 유신론적 진화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적 단계에 의해서 발전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중간중간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진화 과정에 개입했다. 이 주장은 하나님의 신적 개입과 진화, 두 가지를 다 인정한다”(베이커 신학 용어 간략 사전). 이 정의에 따르면 기존의 진화와 유신론적 진화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가 오늘날 존재하는 생명체 및 비생명체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만, 후자는 그나마 어느 정도까지는 그 과정에 하나님의 역할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신론적 진화는 이렇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했고 그 이후로는 모든 생명체가 순전히 자연적 과정에 의해 진화될 때까지, 물질의 자연스런 변화에 경험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키도록 유도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는 견해이다”(‘유신론적 진화’ [Theistic Evolution​]).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과 분리된 세상을 만드는 최초의 창조적 활동 이후로 그가 만든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진화 과정에 어떤 지속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바이오로고스(BioLogos)와 같은 단체가 주장하는 두 번째 견해에 따르면, 유신론적 진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가 들어간 디자인에 따라 창조되었고 또 오늘날 과학자가 진화라고 부르는 자연적 과정에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활동함으로 피조 세상을 유지하고 있다”(‘문제가 있는 거울’[A Flawed Mirror​]). 따라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도적으로 창조했을 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발전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 선택, 종의 분화, 무작위 변이와 같은 진화 과정을 그의 신령한 뜻에 따라 감독하고 있고 또 이 세상 모든 무생물과 생명체가 그의 신령한 뜻에 따라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고 있다.


이런 유신론적 진화 주장이 그럼 성경과 일치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 역사와 함께 역사적인 기독교 교리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화, 교회를 만나다


교회 역사 대부분에 있어서 교회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에서부터 만들었다는, ‘엑스 니힐로’(ex nihilo)를 믿어왔다. 교회는 다름 아니라 성경의 처음 구절에 근거해서 이 교리를 확증해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 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인 그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 별개로 이 우주를 창조했다.


다른 구절들이 바로 이런 믿음에 근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호흡이 창조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9). 이 구절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성자 하나님)과 그의 입 기운(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이 우주가 존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창조야말로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다.


게다가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떤 물질을 사용했다는 것을 부정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예를 들어, 하나님은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를 사용해서 물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물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도 만들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일어난 역사이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나머지 창조 서사에 따라, 교회는 또한 하나님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창조했다고 믿는다. 빛, 물, 공기, 흙, 야채, 그리고 태양과 달, 또한 별들, 바다생물, 날개달린 새, 육지의 생물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형상을 닮은 인간까지.


중요한 사실은 교회는 결코 모든 무생물과 생물이 자연적으로 선택되고 종으로 분화되고, 또 무작위 돌연변이와 같은 과정에 따라 존재하고 발전했다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대 교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자(atoms)라는 작은 원소의 우연한 충돌로 시작되었고, 또한 우연하게 발전했다는 ‘원자 이론’(atomic theory)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무작위성(randomness)을 받아들이는 대신, 교회는 창조자를 찬양했다. 초대 교회 교부 오리겐(Origen)은 이렇게 썼다. “우리 기독교인은, 즉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 한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헌신하는 우리는, 세상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에게 그 모든 만물 때문에 감사한다” (‘셀수스에 대항해서’[Against Celsus]).


19세기가 되자 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신실함을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공격을 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창조 교리에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s)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이 출간되면서, 또 그에 근거한 포괄적인 새로운 세계관이 부상하면서 세상은 무에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기존의 교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무생물과 생물이 창조되고 발전했다는 교리,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교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진화론적 세계관은 이제 현대 서구 사회 대부분의 분야를 지배한다. 비극적으로, 이런 세계관은 오늘날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을 던지고 있다.


자연선택에 의한 창조


간단하게 말해서 교회는 언제나 창조 교리를 신봉해왔다. 가장 초창기 신앙고백 중 하나인 니케아-콘스탄디노폴리탄 신조(the Nicene-Constantinopolitan Creed, A.D. 381)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한 하나님, 전능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면 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자를 믿는다.” 그 후 신학이 조금 더 발달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창조물 자체 속에 뭔가를 창조하고 또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이렇게 논지를 전개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이 절대적인 존재이고 피조물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은 단지 자연 과정(natural processes)에 의한 창조와 발전의 능력을 물질에게 부여하는 유신론적 진화라는 관점을 분명하게 반대한다”(유신론적 진화). 이와 비슷하게 종교개혁 신학은 계속해서 전통적인 창조 교리를 고수해왔다.


결국 유신론적 진화를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은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원리와도 배치될 뿐 아니라, 교회가 역사를 통해서 유지해온 굳건한 입장과도 궤를 달리하는 결과가 된다.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했다고 믿으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이 무생물 뿐 아니라 모든 보이는 것들(예를 들어, 참나무나 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예를 들어, 천사)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반적인 재료로 끝난 게 아니라 구체적인 특정 종류의 생물을 다 만든 것이다”(유신론적 진화).


이런 토의를 두 번째 종류의 유신론적 진화에 적용해보자. 바이오로고스의 유신론적 진화론자 또는 그들이 불리기를 선호하는 “진화론적 창조주의자(evolutionary creationists)”는 공통 조상을 가졌다는 이치(axiom)에 있어서 확실하다. 인간과 침팬지(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의 예를 들자면, 공통 조상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약 30만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도 또 침팬지도 아닌 고대 인구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각각의 그룹이 계속적으로 분리된 생식 활동을 지속하고, 그 결과 이 두 그룹은 과학자가 다른 종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달라진다.” 진화론적 창조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지구상에 살았던 두 가지 종의 조상 혈통에 관해서는 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진화란 무엇인가?'[What Is Evolution?]).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반적인 특정 종의 기원과 발전은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상충된다. 인간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거기에 하나님의 방향과 목적이 있다는 식으로 주입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진화론적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구체적이고 즉각적인(자연적 과정에 전혀 좌지우지 되지 않은) 방법으로 물고기, 새, 육상 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거부하고 대신, 하나님이 자연의 메카니즘을 통해 이 각각의 생명체를 아주 오랫동안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 속에 숨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타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진화론적 과정 안에는 결코 역사적인 아담과 이브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굳건하게 지켜야만 한다. 교회가 역사적으로 견지해온 입장에 신실하게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무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생물과 생물을 창조한 하나님, 창조자를 찬양하는 것이다.

  



원제: Can Christians Believe in Evolution?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유신론적 진화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원리와도 배치될 뿐 아니라, 교회가 역사를 통해서 유지해온 굳건한 입장과도 궤를 달리하는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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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regg Allison

그레그 알리슨은 켄터기 루이지에나에 있는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신학 교수이며, 'The Unfinished Reformation: What Unites and Divides Catholics and Protestants After 500 Years'의 공동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