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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하나님 은혜의 리트머스 시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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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Tim Kimmel  /  작성일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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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Daniel Park from Pixabay

어린이와 노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가늠할 만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나 노인처럼 인생 연대표의 양쪽 끝에 위치한 이들은 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 하루를 어려움 없이 살아내고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호의를 받고도 제대로 갚지 못하며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어린이나 노인같은 사람에게 일관성 있게 호의를 베푸는 성품을 인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격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평가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진정한 인격은 우리가 어린이와 노인에게 베푸는 친절, 인내, 그리고 존경의 태도에서 정확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과부들과 고아들을 비롯해(약 1:27)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들 중 가장 작은 자”에 속한 사람들에(마 25:31–46)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우리 인격을 보여주는 척도이다. 


가정의 기본 작동 방식: 하나님의 은혜


이제 인격과 하나님 은혜의 관계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은혜를 이론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우리 가족을 대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우리 삶의 기본 모드인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우리는 가정 생활을 통해 천국을 경험하기도 하고 지옥을 경험하기도 한다. 가정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 하는 중차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되기도 하고, 쓰디쓴 패배를 맛보는 곳이 되기도 한다. 


가정 생활이 견디기 쉽지 않은 용광로와 같을 수 있다. 가정 생활 속에 은혜가 없다면, 그것은 복음 자체가 무력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깊은 곳까지 만지고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를 믿는다고 입으로만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고 말로는 얼마든지 떠벌릴 수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우리와 매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같이 하느니 차라리 굶는 것이 낫겠다고 하거나, 배우자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내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 생각한다면, 우리가 믿는다고 ‘주장하는’ 그 은혜라는 것이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는 무익할 가능성이 크다.  


위에서 최악의 예를 두 가지 언급했는데, 당신 가정이 그 정도는 아니어서 안심이 되는가? 당신 가족이 가족 사진에서 당신이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관계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축소시켜버리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회심을 위한 은혜, 매일을 위한 은혜


선의를 지니고 잘 해보려고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너무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십자가로 인해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구속 역사로만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큰 개념을 잃었다 찾은 바 되고 보지 못하다가 볼 수 있게 된, 다시 말해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은혜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면서 어리석게도 여러 이유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축소시킨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성과’를 거래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내게 해주신 것이 이리 많으니 나는 빚진 사람이야. 이제 남은 인생은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지” 식의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복음을 적용할 때 이런 식의 태도는 거부해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 마음의 방에 들어와 방 가운데 놓인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서는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일단 우리가 그런 식의 사고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가 복음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우리가 으레 하는 상투적인 말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신앙 생활에 대해서도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된다. 오늘날 자녀 세대는 “나한테 의미 있는 것만 진리”라는 식의 전제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할 때, 우리가 자녀를 다루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지 못하면,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의 소재로 쓰이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두려움에 뿌리를 둔 자녀 양육에 맞서기


기독교를 성과 중심적으로 이해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들도 많다. 필자는 “두려움에 뿌리를 둔 자녀 양육”이 가장 커다란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순된 세상에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우리는 스스로 무능력하다 느끼고, 부담감에 압도당하며, 이 일이 너무도 벅차다고 느낀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그 두려움에 눌리지 않아야한다. 하지만 두려움이 내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와 관련되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복음주의와는 관련없는 인위적인 규율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과 임재를 무시하고 두려움 앞에 무릎 꿇게 된다. 소위 금욕적인 삶, 죄 관리, 영적인 이미지 컨트롤, 복음주의적인 행동 양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의 삶에서 실제로 이루시는 일들을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 지식으로 해석해버린다. 그렇기에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과의 관계에 별다른 열정을 보이지 않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자녀들은 최악으로 행동하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반응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목자로 믿고 있는지 알아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목자로 믿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사랑, 자비, 친절, 이해, 용서, 소망, 자유, 그리고 잠잠함으로 표현되며,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녀 양육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는 우리를 씻기고, 우리에게 스며들며, 결국 우리를 다시 정의하는 은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받을 뿐 아니라 그의 은혜로 늘 단련되는 부모야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최고의 증인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은혜와 진리로 다루시는데(요 1:14) 이 모범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대하시는 것처럼 당신의 자녀를 대하라. 이것이야말로 은혜에 근거한 자녀 양육의 핵심이다.


자녀 양육은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가 행하시는 기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가 부모 안에 먼저 일어날 때 그 자녀들에게도 일어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Family: God’s Litmus Test of Applied Grace

번역: 이정훈

작가 Tim Kimmel

팀 키멜은 Family Matters의 대표이며 'Why Christian Kids Rebel: Trading Heartache for Hope'를 비롯하여 가족 관계에 관한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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