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없이 형벌적 대속은 없다
by Gregg Allison2021-04-03

신학이 창조, 구속, 완성에서 성령과 그분의 사역을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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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속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주된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옳다. 하지만 삼위의 하나님 중에서 성자만이 인간의 죄를 위해서 희생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성부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는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는 십자가에서 터져 나온 예수님의 잊혀지지 않는 호소는, 결국 아버지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쉬며, 예수님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숨을 거두기 직전에 터져 나온 예수님의 말들은 속죄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성령의 역할은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학이 창조, 구속, 완성에서 성령과 그분의 사역을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속죄 사역에서 성령의 역할이 가장 조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령의 역할과 형벌적 대속이라는 두 가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형벌적 대속론에 대해 공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형벌적 대속이 속죄의 핵심이라고 본다. 먼저 형벌적 대속이 무엇인지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형벌적 대속의 정의


형벌적 대속론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성취한 것에 대한 해석적 모델이다. 형벌적 대속론의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속죄는 죄를 미워하시고 벌하시는, 완벽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에 근거를 둔다.


2. 죄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어야 한다.


3.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4.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위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지만, 인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을 가지셔야 했다.


5.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이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셨다.


6. 그 속죄는 이러한 방식으로 성취되어야 했다(형벌적 대속론).


이 정의는 예수님의 중심 역할을 강조하지만, 예수님 홀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펴봐야 할 사항들이 더 있다.


성삼위일체의 분리불가한 작용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두 번째 위격의 사역은 첫 번째와 세 번째 위격의 사역으로부터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작용의 교리로서 알려져 왔다. 모든 신성한 일에서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의 의지와 하나의 힘으로 개별적으로 활동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창조의 신성한 행위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 처음 혼돈한 수면 위를 운행하고 계실 때(창1:2) 아들 하나님의 작용, 즉 말씀(요 1:3)을 통해서 세상이 존재하도록 하셨다.

 

세 위격은 또한 속죄의 신성한 사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셨다. 구체적으로,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도록 보내셨으며 인류의 죄를 위한 형벌적 대속물로서 아들을 희생시키셨다(요 3:16-17; 갈 4:4-5; 요일 4:10).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기꺼이 형벌적 대속을 완성하기 위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인간이 되어 성부 하나님에 의해 보냄 받는 일에 기꺼이 복종하셨다.


그러면 성령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성령님은 모든 단계에서 활동적이셨다


성령 하나님은 속죄의 신성한 사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활동적이셨다.


첫 번째, 성육신에서, 성령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자궁 안에 아들을 잉태시킨 신성한 위격이셨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이 '새로운' 창조에서 성령님의 생산적인 역할은 '오래된' 태초의 창조(창 1:2)에서 열매 맺게 하는 성령님의 역할과 유사하다. 그때처럼 성령님의 사역은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성육신이 없으면 속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히 2:9, 17).


두 번째, 잉태될 때부터 지상에서의 모든 삶에서 예수님은 “한량없으신”(요 3:34) 성령으로 충만했다. 즉, 성육신한 아들은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성령님과 영원한 관계 속에 계셨지만, 또한 성령님이 그 안에 전적으로 거주하셨고 그분의 능력을 부여받으셨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존재라는 것은, 성육신하신 아들이 활동할 때마다―그를 보내신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유혹에 저항하며, 신성한 말씀을 전하고,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며, 귀신을 쫓고, 종교 지도자들과 대면할 때―성령 충만함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눅 4:18; 마 12:28; 행 10:38 참조). 


세 번째, 예수님의 전 생애 동안 내재하신 성령님은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다. 성육신하신 아들은 성령님에 의해서 끝까지 지지된 형벌적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히브리서 9장 14절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정화 능력을 강조하는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죽음에서 성령님의 역할은 삼위일체의 분리불가한 작용을 강조한다. 누가 자신을 드렸는가? 아들 하나님이다. 아들은 누구에게 자신을 드렸는가? 아버지 하나님이다. 그리고 아들은 어떻게 자신을 아버지께 드렸는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다. 즉, 그것은 권능을 부여하는 성령님에 의해서였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12:2), 그의 형벌적 대속을 성취하셨다.


네 번째,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었다. 십자가 처형 후 부활이 뒤따랐는데(행 2:24), 그것은 부활이 없는 속죄는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여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신다. 예를 들어, 바울은, 아들을 들어 올리시는 아버지의 초기 사역을 성령님을 통해 수행하셨다고 강조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성령님의 역동적인 사역에 놀랄 필요가 없다. 예수님 스스로, “살리는 것은 영이니”(요 6:63)라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부활의 신비에 대해 아들의 부활이 '정당화' 되었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딤전 3:16)라고 예수님 자신이 언급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롬 4:25).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 행위에 관여하셨다.




원제: No Holy Spirit, No 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이현석

누가 자신을 드렸는가? 아들 하나님이다. 아들은 누구에게 자신을 드렸는가? 아버지 하나님이다. 그리고 아들은 어떻게 자신을 아버지께 드렸는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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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regg Allison

그레그 알리슨은 켄터기 루이지에나에 있는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신학 교수이며, 'The Unfinished Reformation: What Unites and Divides Catholics and Protestants After 500 Years'의 공동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