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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음악보다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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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Bob Kauflin  /  작성일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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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K. H. J. MCI from Pixabay

내 기억으로는, 여섯 살에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대학에서는 피아노 연주로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로는 8년 동안 전임 사역자로 찬양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4년에 그 찬양대를 떠났다. 그러고 나서 근 40년 동안 음악을 작곡하고 편집하며 예배 인도자로 섬겼다. 지금도 내 스마트폰 앱에는 온갖 종류의 음악이 대기 중이다. 팝, 클래식, 재즈, 록, 가스펠, 랩, 포크송, 컨트리, 인디, 합창, 오케스트라 음악 등.


이렇듯이, 음악은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음악,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 선물은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위로하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함께 사역하도록 만든다. 또 힘든 시절에는 피난처가 되어 우리를 격려해 주고, 마음속에 자리한 정서를 대신 표현하며 깊은 감동을 끼칠 뿐 아니라, 때로는 말로 드러낼 수 없는 의미까지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특별히 교회에서 음악을 들을 때면 내 안에 감사가 솟구친다. 교회 음악이 늘 장엄하고 숭고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회중과 같이 노래하며 감격하다 보면 눈물까지 흐르곤 하는데,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다 셀 수도 없다. 우리가 함께 모여 노래할 때 성령께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엡 5:18-19).


우리가 다 고민하는 문제


그런데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가끔씩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진리에 의해 일어나는 감정이 서로 헷갈릴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6세기 전에 활동한 어거스틴도 ‘고백록’(Confessions)에서 비슷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노래하는 일 또는 타인의 노래를 듣는 일 모두가 정말로 유익하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음악이 연약한 심령에 경건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백했다. “혹 음악이 전달하는 진리가 아닌 음악 자체에 더 깊은 감동을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죄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때는 그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편이 낫다.”


어거스틴과 같은 영적 거인도 음악이 영혼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면, 우리 역시 그런 문제를 피할 수는 없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중 대부분은 음악에 더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해서 이를 “심각한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골 3:16). 우리는 음악의 여운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창조적인 예술성, 음량, 기술, 탁월한 연주, 또는 단순한 ‘분위기’가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우리가 흔히 ‘복음’이라고 일컫는 메시지를 가리킨다. 물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우리 죄를 대신해 형벌을 치르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로운 백성이 되어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바울은 우리가 함께 모여 찬양할 때 바로 그 진리가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음악보다 좋은 이유


그런데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음악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마음의 주변부로 쉽게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우리의 우상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과연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위험을 암시해 주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ㆍ음악의 가사보다 곡조나 악기 연주에 정서적으로 깊이 반응한다.

ㆍ주일 예배 때 찬양하는 일이 종종 지루하게 느껴진다.

ㆍ찬양의 고백보다 찬양이 자아내는 느낌에 더 많이 신경 쓴다.

ㆍ실제로는 아무 생각 없이 찬양하는 일이 흔하다.

ㆍ좋아하는 음악 없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혹시 이 중 한 가지라도 당신에게 해당된다면, 당신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음악도 좋지만, 예수님이 음악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여기에 다섯 가지 이유를 소개해 보겠다.


1. 선물보다 선물을 주는 이가 좋기 때문이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였다. 내가 근사한 저녁 식사를 손수 준비해 아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때 아내가 보인 반응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곧 주방에 차려진 음식을 보자마자 달려가서는 식탁을 끌어안고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거기에 입까지 맞추면서 연거푸 이렇게 말했다. “오 사랑하는 식탁아, 정말 많이 사랑한단다.”


잠시 농담을 했다. 아내는 식탁이 아니라 나한테 그렇게 반응했다. 우리가 음악을 너무나 소중히 여겨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하려 했을 뿐이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을 따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 예수님과 비교한다면, 그 어떤 음악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선물보다 선물을 주는 이를 알고 사랑하는 게 훨씬 더 좋은 법이다.


2. 잠깐의 위로보다 영원한 위로가 더 좋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시련이나 아픔 또는 상실을 경험했을 때, 위로 받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찾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음악은 예수님이 될 수 없다. 오직 그분만이 지속적이고 근본적이며 삶을 변화시키는 위로를 주실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누가 우리를 위로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위로하신다.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시는가?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노래하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예수님과 더 선명하고 깊이 있고 진실한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음악은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3. 진리를 가리키는 음악보다 진리 자체가 더 좋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화음과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소리의 배열과 강약과 구성 등이 함께 어우러진 음악은 우리에게 신선한 동기와 감동을 전해 준다. 그리고 인생에서 큰 시련을 당했을 때 우리로 하여금 기운을 차리게 하거나 잠잠한 마음을 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이 그 자체로 “죄 없으신 구원자가 죽으사 죄로 물든 내 영혼 자유를 얻었네”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또 어떤 선율도 우리로 하여금 “그 약속은 영원하니 내 영혼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할 수도 없다. 음악 자체는 우리의 믿음이 뿌리내리고 있는 굳건한 사실, 그 영원한 진리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오직 살아계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된다.


4. 연합에 대한 느낌보다 실제 연합이 더 좋기 때문이다


회중과 하나 되어 목청껏 찬양하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모든 성도가 다 아는 가사로 함께 노래하며 누구도 딴 데 정신을 팔지 않고 하나가 된 그 느낌은 심히 감동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 되게 하신 그 연합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엡 2:14-15).


물론 다른 지체들과 함께 노래하는 일은 콘서트장이나 스타디움 또는 노래방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과는 전혀 다르다. 만일 우리가 이 차이를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보다 음악 자체를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5.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ㆍ음악은 우리의 죄 값을 치를 수도 없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일으킬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사탄을 무찌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실패한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다.

ㆍ음악은 우리가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고, 그 즐거움을 누리고 계신다.


이처럼 예수님이 좋은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그분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온전한 즐거움을 향하여


그렇다면 음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찬양에 동반되는 음악적 요소보다 우리가 노래하는 가사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낙담되거나 염려에 사로잡힐 때, 헤드폰을 쓰고 음악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성경을 펴고 시편의 고백을 깊이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운전할 때나 기도할 때, 아니면 성경을 암송할 때도 굳이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단계를 밟아 가며 노력하든, 그런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를 격려한다.


“만일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의 친구이자 상급으로 여긴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그분께 영원히 속하여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온전한 즐거움을 그분과의 관계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도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즐거움에 대한 영혼의 목마름은 그때서야 온전히 채워질 수 있다. 아가 5장 1절의 초청과 같이, 그리스도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바로 여기에 우리가 누릴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이 행복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 무엇도 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이상 누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다 누릴 수가 없다. 영원히 그럴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그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본래의 목적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시 34:8). 그분이 허락하신 그 어떤 선물보다 그분 자신이 더 좋기 때문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Good Music Can Become Your God: Five Reasons Jesus Is Better

번역: 장성우

작가 Bob Kauflin

밥 코플린은 Sovereign Grace Music의 디렉터이다. 그는 회중 예배를 위해 목회자와 음악인도자들을 교육시키고 있으며, 미국 켄터키주의 로이스빌에 있는 Sovereign Grace Church의 음악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는 worshipmatters.com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참된 예배자’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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