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학을 변론하다
by Stephen J. Nichols2020-03-21

신학교 시절 변증학 교수님께서 직접 경험한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람들과 삶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은행 대출 상담원이 있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대출 상담원에게 본인은 변증학(Apologetics) 교수라고 소개하자, 그녀는 “정말 놀랍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요즘 같은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과(apology)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정말 필요하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출 상담원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변증학이란 우리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이는 믿음을 변호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사실 신앙을 변호하는 일은 오늘날 매우 시급하기에 우리는 더 많은 변증학 교수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변증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R. C. 스프로울의 최근 저서 가운데 ‘모든 사람은 신학자다’(Everyone’s a Theologian)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우리는 같은 맥락에서 “모든 사람은 변증가다”(Everyone’s an apologist)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과 진리와 복음을 깨닫도록 인도된 자들은 믿음을 수호해야 할 책임과 특권 둘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답변하도록’ 강요받는다. 단순히 철학적으로 뛰어난 자들이나 문화적으로 능숙한 이들에게만 의존해서 그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변증가이기 때문이다.


명령


헬라어 단어 ‘apologia’는 문자적으로 “~에게 말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의 의미는 “변호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아테네가 소크라테스를 향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고소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위한 변론을 해야만 했다. 그는 여기에 ‘변론’(Apologia)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자신에 대한 논리 정연한 변론을 제기하면서 “아테네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17번 사용한다. 많은 경우 법정의 상황을 고려하고 있는데, 가령 바울이 사도행전 22장에서 유대 공회 앞에 나갔을 때나, 25장에서 베스도 앞에 나타났을 때의 경우다. 바울은 또한 로마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복음의 변증으로 이야기한다(빌 1:7, 16).


헬라어 단어 apologia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성경 말씀은 벧전 3:15–16절이다. 베드로전서는 오늘날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던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기록된 성경이다. 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추방되었고, 핍박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중상모략을 당했다. 그들 중 일부는 가족들의 손에 고통을 받기도 했다.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반대 세력 앞에 두려워하거나 움츠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대신에, 베드로는 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나 변론할 것을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주동사인 “변호하다”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 apologia는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 명령형 단어는 명령의 상황에서 사용되며 여기에는 연기나 유예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명령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변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언제나 준비”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 믿음에 대한 질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언제나 준비되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알아야만 하며, 이는 우리의 신학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청중들을 알아야만 한다.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변증가로 있었던 바울의 예를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다(행 17:16–34).


베드로는 우리가 “온유와 두려움으로” 변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벧전 3:15). 이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두려움’(respect)으로 변역한 단어는 ‘경외/숭배’(reverence)라는 단어로도 번역된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사용되는 단어와 동일하다. 그래서 흩어진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는 그들을 온유함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베드로는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하는 말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삶이 말로 인해 부끄럽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선한 행실이” 또한 믿음을 위한 변론의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현실


바울이 일어나 아테네에서 그의 변론을 하기 전에, 사도행전 17장 16절은 바울의 “마음(영혼)이 격분했다“라고 기록한다.


만일 누군가, 특별히 미국 내에서,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수면(잠을 많이 자는 사람 혹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을 일컫는 표현-역주)에 빠진 사람이 2011년에 잠들었다가 5년이 지난 후 2016년에 깨어났다고 했을 때, 아마도 그는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최근 격변하는 문화는 다양한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우리의 반응이 위축되거나 타협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되며, 우리가 교회이기를 중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우리는 변증가가 되어 복음에 담대히 나아가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향하여 연민의 마음 갖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소망(복음이 절박한 가운데 있는 세상을 위한 유일한 소망)을 제시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기를 바란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An Apology for Apologetics

번역: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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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tephen J. Nichols

스티븐 니콜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Reformation Bible College의 학장, Ligonier Ministries의 최고 연구 관리자이자 작가이다. 20여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팟캐스트 5 Minutes in Church History와 Open Book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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