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에 있는 찬송가 살리기
by Leland Ryken2020-03-09
우리는 특정 생물이 계속해서 멸종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에 약 200종의 동식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하니 충분히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멸종이 지금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찬송가를 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찬송가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일어나기도 하고, 순식간에 벌어질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많은 교회에서 찬송가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이미 사라진 곳도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의 찬송가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찬송가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찬송가를 경건을 위한 시편으로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혁명적인 게 아니다. 경건 묵상을 위한 찬송가 선집(anthology of hymns)을 위해 조사하는 중 ‘찬송가: 독서의 역사’(The Hymnal: A Reading History)라는 책을 만났다(이 책에 관해 내가 TGC에 쓴 리뷰를 읽어보라). 이 책에 의하면 1870년대까지 전통적인 찬송집은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세로 13센티에 가로 8센티로 된 시 모음집이었다. 거기에는 악보가 없다.

이런 찬송시 모음집은 주일날 예배시간에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일 삶 속에서 묵상을 위해 사용되었다. 찬송가 속의 시는 개인 또는 가족 경건의 시간에 사용되었다. 교인들은 사무실, 학교, 들판 그리고 시장으로 갈 때도 항상 들고 다녔다. 찬송시 모음집은 아이들의 교육, 특히 글을 읽도록 가르치는 데에도 널리 활용되었다. 아이들은 찬송시를 외웠고, 또 선물로 찬송시 모음집을 받기도 했다. 부모는 가족의 추억을 거기에 기록했고, 그 속에 열차표에서 사업상 편지까지 끼워두고 보관했다.

전통 찬송가를 부르는 교회든지 아니면 전통 찬송가를 더 이상 부르지 않는 교회든지 찬송가의 가사를 읽고, 그것을 시로 묵상하는 것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찬송은 시다

찬송가는 노래로 불리기 전에 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작사가가 노래로 불릴 것을 고려해서 썼다고 해도 그들은 찬송가를 먼저 시로 만들었다. 찬송가를 오직 노래의 가사로만 생각할 때 우리는 찬송가가 가진 시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몇 가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한 가지 한계는 이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우리의 시선을 가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노래하면서 가사 속에 숨은 이미지와 은유, 그리고 뉘앙스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찬송시를 부를 때 생기는 또 하나의 한계는 다음 절의 가사가 앞 절의 가사 바로 아래, 그리고 같은 흐름의 멜로디 안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다음 절의 시작은 앞 절의 시작과 동일하다. 그 결과 절마다 같은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다. 가사에 담긴 의미,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의미의 선형적 전개(linear unfolding of the text)는 크게 손상되고, 같은 구역만 반복적으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게 된다. 애초에 찬송가 가사는 반복되는 사이클이 아니라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라는 선형적 전개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찬송가를 시로 경험하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제 접근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찬송을 시로 읽기

일반적인 시를 읽을 때 쓰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시인은 자기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해서 시를 쓴다. 약 50년 전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Language That Poets Use)라는 책은 많은 인기가 있었다. 시인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언어를 시적 관용구(poetic idiom)라고 표현한다. 간단히 말해서 시인들은 은유와 직유라고 부르는 언어의 이미지와 형체를 통해서 생각한다.

이런 시적 관용구는 읽는 사람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첫 번째로 빨리 읽는 게 정상인 우리의 삶에서, 또한 교회에서 멈추지 않는 음악을 계속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천천히 읽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천히 읽게 될 때 시 속에 숨은 이미지와 형체를 찾아내어 펼치게 되고, A가 B와 같다고 말하는 시의 은유와 직유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어와 구절이 주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 잠시 멈추는 것이다. 시인의 시적 능력이 만든 효과를 누리고 감상하는 것이다.

시가 가진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시인의 사고가 선형적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찬송가 선집에서 찬송시를 설명할 때 말했듯이 위대한 찬송가 속에 들어있는 순차적 전개(sequential progression)가 중요하다. 찬송가를 모든 시가 다 나올 수 있도록 절에 따라 순차적으로 프린트해 보라.

찬송시가 이런 식으로 프린트된 것으로 알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위대한 찬송시의 작사가가 절마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얼마나 깊이 있게 실었는가이다. 대부분의 경우 각 절은 전체 흐름 속에서 달성해야 하는 고유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고, 각각의 절마다 그 자체의 이미지와 단어 패턴이 있었다. 각각의 절을 하나의 독립된 작은 세상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다음 절이 앞선 절 속의 사고 또는 느낌을 어떻게 더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우리는 그때까지 전개된 각각의 절의 일관성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고, 한눈에 각각의 절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 시가 말하고자 하는 통일된 주제를 제대로 표현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시의 세 번째 요소는 장르이다. 우리가 쓰는 모든 찬송가를 하나의 장르, 즉 “찬양”이라는 한 장르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찬송시 모음을 우리가 영국 문학 모음집처럼 접근할 때 여러 가지 사실들이 드러난다. 우리는 먼저 문학과 성경 장르라는 익숙한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찬송가 속 다양한 장르가 발견된다. 개인의 체험을 담은 시, 승리의 노래를 담은 시, 대관시, 자신을 고백하는 시, 특정 상황의 시(시인의 삶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일을 당했을 때 지은 시) 그리고 그리스도 찬양시 이다.

찬송시를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시의 카테고리 속에 놓고 볼 때, 우리는 언어의 이미지와 형태라는 시적 질감(poetic texture)의 측면에서 유익을 얻는다. 특별히 중요한 예를 하나 들자면, 우리가 익숙한 찬양은 정말로 많은 경우 성경의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찬송시를 설명할 때 “성경적 참조의 모자이크”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찬송시를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경우에만 우리는 비로소 시인들이 성경적 암시라는 네트워크를 얼마나 신중하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찬송시의 유익

위대한 찬송가의 멸종이라는 위기를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찬송가를 경건을 위한 시로 간주하고 읽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기독교 문화(기독교 문학 작품과 그 외에도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다양한 예술형태)의 중요한 요소인 찬송가의 완전히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경건을 위한 시라는 측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를 향해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었다. 그것은 문학과 경건의 승리라는 보석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았다. 나는 여태 아무도 몰랐던 찬송가를 알게 된 것 같은 감정을 반복해서 느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새로 발견한 이 보물을 우리 개인과 공동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당장 사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경건에 도움을 주는 찬송시를 교회 게시판과 웹 사이트에 올릴 수 있다. 목회자와 성경공부 리더는 설교와 연구에 포함 시킬 수 있다. 더 이상 부르지 않기 때문에 찬송가를 포기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회중들이 내가 제안한 이런 형태로 찬송가를 들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그 찬송가를 부르자고 먼저 요청할지도 모른다. 이런 공동체적인 찬송가 사용은 얼마든지 개인적인 사용으로 더 확장될 수 있다.

어떤 시리얼 제품의 TV 광고가 생각난다. “먹어보세요. 당신은 좋아하게 될 겁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내가 제안한 것을 한번 해 보라고. 그렇게만 하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것을 장담한다고 말이다.



원제: Can Hymns Be Saved from Extinction?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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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eland Ryken

리랜드 라이큰은 Wheaton College에서 50여년 간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 지은 책으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in English)’과 ‘성경 속 문학 형태 완전 정복(A Complete Handbook of Literary Forms in the Bibl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