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은 사명을 함께 나눈다
by Harriet Connor2020-02-28

우리 대부분은 화목하고 건강한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런 가족은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우리는 따뜻한 불빛이 비취는 방에 옹기종기 앉은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지 모르겠다. 오늘날 현대적이고 도시화된 사회에서 가정은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휴양지 같은 의미이다. 낮에는 각자 흩어져서 일하고 공부하다가 저녁이 되면 함께 모여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즉 “가족 시간”(family time)은 대부분에게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런 가정의 모습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전까지만 해도 가족은 하나의 생산 단위였다. 집은 일하는 장소였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것은 함께 있으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게 아니었다. 가족은 노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에 가족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창조주가 지으신 피조물을 잘 관리함으로 다른 이들을 창조주에게 이끌고,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전하고, 주님이 주신 대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함께 일할 때, 그것은 세상을 향해 예수님과 그의 신부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바로 양육하고 그들과 함께 일할 때, 그 모습은 세상을 향해 아버지와 그의 영적 자녀들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가족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기독교인 가정은 사명을 공유해야 한다. 함께 일하고 또 함께 예배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관계를 강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가족의 모습이 바뀌었다


산업화 전까지 가족의 사명은 경제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었다. 가족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기반으로 밭이나 농장 그리고 가게를 운영했다. 가정은 자녀를 교육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곳이었다.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는 이런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어떻게 가족의 유대를 강화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편과 아내에게 이런 가족은 같은 공간 안에 동거하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서로가 곁에 서서 공통된 사업을 하는 것(비록 반드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을 의미했다. 어머니에게 가정 안에 일터가 있다는 것은 자녀를 키우면서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도 매진하는 것을 의미했다…. 생산적인 노력이 온통 가족에게만 집중되어 있을 때 아버지는…. 자녀를 훈련해서 함께 일하도록 하는 임무를 가졌다.


이런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은 가정과 일터를 분리해버린 산업혁명과 함께 바뀌었다. 19세기가 지나면서 많은 아버지는 일터로 나갔고 집에는 어머니와 자녀만 남았다.


채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현대적인 가정 대부분이 필요한 것을 밖에서 조달했다. 공장, 회사, 수퍼마켓, 학교, 그리고 양로원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더 이상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품을 조달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과 아내가, 또 부모와 자녀들이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을 때 가족은 쉽게 분리되었다. 알라스테어 로버트(Alastair Roberts)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압박을 통해서 더 강해지는 그 무엇이다… 가족 전체에게 주어진 짐의 무게가 거의 사라졌을 때, 가족은 그냥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가질 뿐이다. 그런 가정은 훨씬 더 쉽게 붕괴된다.”


가족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각 개인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사명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피조물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주어졌다(창 1:28).


에덴동산을 가꾸고 일하는 것은 아담 혼자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했고 아담의 동반자가 되게 했다. 그들은 결혼해서 자녀를 낳음으로 “땅을 채워갔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을 자녀들과 공유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연약도 아브라함의 가족 전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8-19).


하나님은 창조 때에 인류에게 준 명령과 언약의 이행을 다음 세대에게 바로 가르쳐야 하는 책임을 부모에게 맡겼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다 안식일에 쉬라고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모든 가족이 다 함께 일하고 또 함께 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출 20:9-10).


초대 교회 당시 복음을 전파하는 것 역시 가족 전체의 임무였다. 고넬리우스, 리디아, 그리고 빌립보의 간수는 사도의 메시지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족에게 전했다. 그들의 가족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사명을 함께 나누었다. 누가는 두로의 믿는 자들에 관해서 이렇게 썼다.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행 21:5).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있다. 번성함으로 세상을 채워야 하고, 또 하나님의 언약을 계속 상기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삶과 행동으로 전하는 사명이다. 친밀하고 결속력이 강한 가족은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니다. 경건한 가족이 되어 이 세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사명을 공유함으로 가족 간의 관계는 더 견고해지고, 가족에서 시작한 복음에 대한 사명을 이 세상 전체로 전파할 수 있다.


어떤 가족이 되어야 하는가


현대 가족을 위한 하나의 접근법은 농장, 무역 그리고 소규모 사업을 통해서 가족이 다시금 하나의 생산 단위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경제 활동 모습을 기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얼마든지 사명을 공유하는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 전체가 모여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새 힘을 얻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N.D. 윌슨(N.D. Wilson)의 말을 인용하자면, 가족이 모여서 얼굴과 얼굴을 보는 시간은 풋볼 경기에서 다음 플레이를 하기 전에 쿼터백을 중심으로 모여서 작전을 짜는 시간(huddle)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이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정원에서 무언가를 기르기
손으로 유용한 무언가를 것을 만들기
음식을 요리하기
집안일 하기, 세차하고 잡초를 제거하기
누군가를 초대해서 대접하기
나이 많은 이웃을 방문하기
길가에 있는 쓰레기통을 치우고 동네일에 참여하기
쉼터 또는 선교 사역에 자원하기
매주 함께 예배드리기
교회에서 가족의 이름을 봉사자 명단에 올리기


화목하고 친밀한 가족을 만드는 것은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따라서 온 가족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 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진정한 가정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엡 3:15).




출전: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trong Families Share Mission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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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Harriet Connor

헤리엇 코너는 Sydney Missionary and Bible College에서 언어학과 신학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 'Big Picture Parents: Ancient Wisdom for Modern Lif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