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에 상보주의가 중요한 이유
by Jonathan Leeman2020-01-27

목회자들과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호보완주의(complementarianism)가 기독교 제자훈련에 있어 중요하다. 나는 상호보완주의가 성경적이라 믿는다. 이 방향으로 제자훈련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성숙한 그리스도인 남성과 성숙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신학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 안에 경건한 남성상과 여성상을 보여주는 실례들이 필요하다. 셋째, 이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고 갈 목회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입장만 집중하여 논지를 전개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논의를 시작하는 의미에서 나의 생각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상이한 영역들에 대한 신학적 통찰력과 신학적 차별성


우선 제자훈련에 대한 상호보완주의적 신학의 통찰력에서 시작해보자.


내가 섬기는 교회의 장로들은 결혼에 관련하여 예비부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준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주 되심과 그의 통치하심이 이 땅에 임하도록 함께 애써야 한다. 하지만 창세기 2장을 보면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행한다. 남자는 동산으로 향하나, 여자는 남자를 향하고 그를 적절하게 돕는 배필이 되도록 하셨다. 여자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모두 드려 남자가 경영하는 일을 촉진하도록 하신 것이다. 반대로 남자는 여자의 은사가 최대한 발현되도록 도와서 그것이 땅에 묻혀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한 사람이 권위를 갖는 구조적 관계인 결혼 안에 들어가 있는 남자와 여자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 안의 미혼 여성에게는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듯 교회 안의 모든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에서 일하는 기혼 여성에게는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기혼 남성은 집, 교회, 직장, 또는 다른 공적인 영역에서 다른 여성들과는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남성이 젊은 남성에게, 성숙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후배 여성에게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질문들이다. 주일학교, 소그룹, 또는 귀납적 성경공부 등에서 다룰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신학적 통찰력”을 키우려면 창세기 2장이 성경의 다른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한 가정, 직장, 교회 및 공공 영역이 지닌 독특성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함께하는 신자들이 그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 각기 다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남성적으로’ 그리고 ‘여성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삶의 영역: 지역 교회의 예


지역 교회의 경우,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남성성이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남자들은 말씀을 배우고, 말씀 사역을 증진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모든 남자가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남자가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예: 각 가정에서). 행정의 은사나 관계 형성의 은사처럼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말씀 사역을 장려할 수 있도록 모든 남자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가족을 차에 태우고 가버리는 수동적인 남자들로 가득한 교회가 아닌, 말씀 사역을 촉진하기 위해 앞장서는 남자들로 가득한 교회를 상상해보라. 남자들이 이 일을 강단에서, 음악사역에서, 아이들사역에서, 예배 후 2부 순서에서, 전도사역에서, 돌봄사역에서 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감히 말하건대 ‘바로 그런 교회’야 말로 경건한 여자들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회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남자들이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리더십을 행하는 일을 자주 맡게 된다는 뜻이다. 남자들이 교회라는 동산에서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며 열심히 일하는 만큼,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그 남자들을 도우며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여자들은 존경할만한 남자들의 리더십을 따르며 이 일을 한다. 남자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말씀 사역을 확장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지역 교회라는 영역에서 성경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를 설명했다. 그러한 사유로 다음 세대 신자들이 지역 교회 사역에 참여하도록 제자훈련을 할 때 남녀 구별을 없애는 것은 곤란하다. 말씀 사역을 증진 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애써야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나 차이도 엄연히 존재한다. 남자들은 리더십을 행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여자들은 조력하고, 격려하고, 도울 수 있도록 가르침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모든 영역에 있어서 경건한 남성성을 추구하는 남자들과 함께할 때, 여자들은 경건한 여성성을 더 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그리 하지 못한다면 이는 대부분 남자의 잘못이다.


목회적 전략


신학적 통찰력에서 제자훈련을 위한 목회적 전략으로 옮겨가자면, 교회 지도자들은 아이들과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남성과 여성 사역에서, 또한 교회 설교 강단에서 남녀의 성숙함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 생활의 많은 부분은 가르침으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하나씩 다시 되새겨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각 영역에 대한 당신 교회의 가르침은 남녀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는가, 아니면 성경적인 남녀의 다름을 지지하는가?


가르침과 함께 교회 지도자들은 양 무리 안에서 성경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좋은 사례를 찾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칭찬해야 한다. 어떤 남자들이 장로로 인정받는가? 공적인 목회 기도 중에 언급되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어떤 남자와 여자가 청소년부의 리더로 세워지는가?


상호보완주의에 대한 논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갈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성인 여성이 남자 고등학생들을 가르쳐도 되는가 하는 논의에 집착하면서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묻는다. 적합한 경계선 긋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마치 사귀고 있는 남녀가 “우린 스킨십을 얼마나 할 수 있지? 손잡는 것까지? 키스까지?”라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런 질문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젊은 남성들과 여성들 가운데 성경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을 세우는 것에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귀는 남녀는 “스킨십을 어느 선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묻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잘 섬기고 결혼을 위한 준비를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이 여자 고등학생들이 성숙한 여자로 자라고, 이 남자 고등학생들이 성숙한 남자로 자라기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위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자. 성인 여성들이 남자 고등학생들을 가르쳐도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남자들이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또한 교회 안의 여자 고등학생들이 교회 안의 남성 리더십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을 배워가기를 진실로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을 아이들 앞에 리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해 신중할 것이다. 나는 성경을 사랑하고 주도적으로 리더십을 실천하는 성인 남자들을 세워 청소년부 전체를 가르치도록 하고, 성숙한 여성들을 세워 그 사역을 지원하고 돕도록 할 것이다.


상호보완주의, 그리고 제자훈련의 목적


일반적으로 상호보완주의가 기독교 제자훈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일종의 목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남자로서, 나는 내 주위의 다른 남자들이 리더로 솔선수범하는 자가 되고, 용기를 내고, 다른 이들을 보호하며,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도록 하고자 한다. 반면 내 아내는 주위의 여성들이 지지자, 돕는 자, 조력자, 상담자, 또는 팬(fan)이 되고, 가끔은 꾸짖는 자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남자들이 이 일을 교회, 가정,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곳에서나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내 아내는 여자들이 이 일을 교회, 가정,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곳에서나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더 어려운 질문은 성경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삶의 많은 영역에서는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이다. 제자훈련을 통해 이러한 본보기 사례들을 키워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상호보완주의와 복음


이러한 다른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한 세계에 이러한 다른 모습을 심어놓으셨다. 왜일까? 모든 피조물이 복음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바울도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사랑 안에서 복음을 그려낸다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적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르치면 복음에 대한 이해도 쉬워진다.


본보기 사례들이 없으면 복음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이는 양이나 제사에 대해 전혀 배경 지식이 없는 정글 문화권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설명해야 하는 성경번역자의 딜레마 같은 것이다. 복음을 증오하는 자들이 남자나 여자의 다름을 무시하고 똑같은 것처럼 만들어서 복음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제자훈련을 상호보완주의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호보완주의를 거부하는 인식 안에서 제자훈련을 한다면 믿음에 유익이 아닌 해가 될 것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Why Complementarianism is Crucial to Discipleship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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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Leeman

조너선 리먼은 워싱턴 D.C 수루반에 위치한 Cheverly Baptist Church의 장로이며, 9Marks의 편집장이다. 대표 저서로 'How the Nations Rage: Rethinking Faith and Politics for a David Ag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