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불길로 영혼을 덥혀라
by David Mathis2019-12-09

인간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셨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깨달으라고 말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골똘히 생각할 수 있고, 그 의미를 깊이 느껴볼 수 있다. 어떤 실재에 대하여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보고 그 의미를 더 잘 파악하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자질을 성경적으로 ‘묵상’이라고 부른다. 돈 휘트니(Don Whitney)는 묵상을 “이해와 적용 및 기도를 목적으로 성경에 계시 된 진리와 영적 실재를 깊이 생각하기”(Spiritual Disciplines)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크리스천의 삶에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이다.


기독교적인 묵상


인간에게 있는 묵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다양한 활동을 한다. 뇌 건강과 혈압 저하를 위해 묵상을 하며, 묵상을 통한 가시적이고 실천적인 효과를 만들려고 한다. 세계 여러 종교에서도 묵상에 관련한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기독교적인 묵상은 여러 비기독교적 단체에서 대중적으로 말하는 ‘묵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적인 묵상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생각을 채우는 것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와 그 묵상한 내용을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묵상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골 3:16)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동시에 자신의 생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묵상과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것을 천천히 소화 시킨다. 말씀의 의미를 음미하고, 즐기며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못하므로 묵상을 통해 말씀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야로 하는 묵상


우리는 지금 믿음의 선배들이 행하였던 묵상의 모습을 많은 부분 잃어버렸다. 죄의 오염으로 손상된 현대의 삶은 쉴 틈이 없을 만큼 빠르고 분주하다. 이러한 분주함으로 인해 묵상을 잃어버렸다. 창세기에서는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했다]”(창 24:63)고 한다. 성경은 묵상을 위해 분주함을 버리고 차분하게 앉아서 집중하며, 방해 거리를 차단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묵상에 관한 내용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모세의 죽음 이후에 구속 역사의 핵심 연결 고리로 여호수아를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수 1:6, 7, 9)라고 세 번 명령하신다. 그가 어떻게, 어디에서 강함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묵상을 통해서다. 하나님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수 1:8)고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말씀의 의미는 단지 율법책을 친숙하게 읽어내려가라는 뜻이 아니다. 말씀에 붙잡혀 그 진리로 그의 삶을 세우라는 말이다. 그의 생각과 느슨한 마음이 말씀을 향하도록 그 줄을 잡아당겨 팽팽하게 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말씀으로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풍성한 정서를 통하여 행동에 영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시편에서의 묵상


묵상에 관해서는 시편 두 곳에서 길게 나온다. 시편 1편 1-2절은 여호수아 1장을 떠오르게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고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을 단숨에 읽고 끝내지 않는다. “주야로 묵상한다.”


시편 119편에서는 묵상과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도들”(15, 78절), “주의 교훈들”(23, 48절), “주의 기이한 일들”(27절)을 묵상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린다]”(99절)고 했고,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97절)라고 말한다. 시편 기자에게 구약의 교훈이 귀중했다면, 신약의 복음은 우리에게는 얼마나 귀중한 묵상이 되고 있는가. 


묵상은 잃어버린 연결 고리이다


성경 묵상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가장 잘 누리게 하는 수단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교회 역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청교도들은 무엇보다도 많은 묵상의 선물을 즐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말씀 섭취) 귀 기울이는(기도)데 주목했다. 휘트니는 유명한 청교도들이 언급한 묵상의 효과를 인용하며, 묵상은 “말씀 섭취와 기도를 연결해 주는 잃어버린 고리”라고 했다. 여러 묵상가들은 기독교의 전통적 묵상 방식을 다시 찾아 삶에서 실천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읽기나 듣기로 시작하라. 묵상으로 나아가고, 기도로 마치라”(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말씀은 묵상으로, 묵상은 기도로 이어진다. [중략] 묵상은 듣기를 뒤따르고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중략] 말씀으로 섭취한 것은 묵상으로 소화 시키고 기도로 내보내야 한다”(토마스 맨튼[Thomas Manton]).


“우리가 말씀 읽기에서 그리 멀어진 이유는 묵상의 불길로 우리 영혼을 덥히지 않기 때문이다”(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우리의 기도가 효과적이지 못한 주된 이유는 기도 전에 묵상하지 않기 때문이다”(윌리엄 베이츠[William Bates]).


크리스천에게 묵상은 기능 면에서 다른 훈련들과 관련 있다. 묵상은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그분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완전히 동떨어진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묵상은 성경에 계시 된 하나님의 음성 듣기와 그분께 말하기 사이에 있는 간극을 좁혀준다.


묵상할 때, 우리는 잠시 멈추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그것이 우리 가슴에 불을 붙이게 한다. 묵상의 불길로 우리 영혼이 뜨거워지도록 말이다. 우리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다. 하나님의 계시에 깊이 들어가서 그것을 우리 영혼 속으로 가져온다. 그분의 진리로 인하여 변화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응답한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가 말하듯이, “묵상은 기도를 위한 최상의 준비이므로 기도는 묵상이 내놓는 최상의 것이다.”


참된 치유


기독교의 묵상은 우리 몸의 자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자세에 관한 것이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거나, 발을 바닥에 대고 곧게 등을 펴며,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로 의자에 앉는 등 어떤 형식적인 자세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묵상은 눈을 성경에 두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혹은 암기한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다.


우리의 이목을 끄는 특정 구절을 택하여 그것을 좀 더 폭넓게 읽고, 시간을 할애하여 그 속에서 깊이 머무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 의식적으로 펜을 들거나 키보드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려고 집중한다. 그분의 사랑으로 깨달음으로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하며, 우리를 기도로 이끌고 그날 하루로 이끌도록 한다.


쉼이 없고 분주한 사회에서, 묵상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에 참된 치유와 회복을 선물해준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arm Yourself at the Fires of Meditation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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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Mathis

데이비드 마티스는 desiringGod.org의 주필이며,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Cities Church의 목사이다. '은혜받는 습관'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