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에 역행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자!
by Dave Harvey2019-12-25
그날은 1984년 1월 22일이었다. 수퍼볼XVIII를 시청했을 만큼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3쿼터가 진행되는 중에 애플은 첫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의 출시를 홍보하는 블록버스터 광고를 방영했다. 80년대 초반을 기억할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다면, 지금 유튜브를 통해 그 광고를 확인해도 된다.

“1984”라는 제목의 이 광고에는 큰 화면 속 영상을 보고 있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그 큰 화면에서 빅 브라더, 즉 독재자는 검열의 미덕을 찬양하고 있는데, 갑자기 금발의 여자가 나타나 앞을 향해 도전적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망치를 화면을 향해서 던지자 독재자의 연설을 보여주고 있던 큰 화면은 산산조각이 난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그녀는 모두가 다 획일화된 기술로 정체되어 있는 세상에서 개인을 해방시키고 있다. 아니, 어쩌면 마이크로소프트부터 해방시키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스티브 잡스의 팬이든 아니든 그를 칭찬해야 한다. 그는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애플에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고 있다면, 잡스는 그 일을 특별하게 알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애플 제품 출시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소비자들이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의 출시 이벤트

나는 최근 이사야 9장 6-7절을 읽으면서 이 일을 생각했다. 이 구절은 아마도 인류 역사에 기록된 가장 커다란 뉴스일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것은 공식적인 크리스마스 구절 중 하나이다. 이 구절과의 친숙함은 우리로 하여금 얼음에 구멍을 뚫어 흐르는 물 아래를 보게 하는 대신 표면에서 스케이트를 타도록 유혹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잠시만 이 얼음 아래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구절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이 구절 속 좋은 소식은 출생 발표이다. 한 어머니에게 한 아기가 주어졌고, 그 아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신성을 가질 것이다. 여자에게서 태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아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는데,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불린다. 아들은 또한 독특한 권세, 즉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평화가 증진되고 영원히 확장되는 그런 독특한 권세를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뉴스는 가장 위대한 뉴스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영원한 평화의 권세를 만든다는 뉴스 말이다.

이런 뉴스는 단순한 위대함을 뛰어넘는다. 이런 뉴스는 애플이 발표하는 신제품 광고를 하찮게 만든다.

자, 그럼 하나님은 이런 아들이 세상에 오는 순간을 위해 어떤 종류의 놀라운 프로모션 행사를 준비했을까?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청중과 무대는 단지 몇 명의 목자와 양이 있는 들판이었다. 누가복음 2장 9-11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라면 이런 사실에 당황했겠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

자정 이후 들판에서 한 무리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이런 당황스러운 탄생 스토리를 지켜보았다. 파파라치들이 놓친 이 특별한 소식은 평범한 목자들을 통해서 그 반향이 울려 퍼졌다. 그렇기에 이 소식은 아름답다. 하나님께서는 이 좋은 소식을 힘 있고 고귀한 사람들과 IT 전문가와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듣도록 하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과 교육받은 엘리트는 이 소식에서 제외되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 뉴스는 궁전 발코니에서 발표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호위하는 측근에게 둘러싸여 도착하지도 않았다. 천으로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약한 아기로 오셨다. 하나님의 복음은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구세주를 보내셨고, 그것을 믿은 겸손한 이들만이 복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나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정말로 온 세상의 왕이고, 그런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시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종종 회심한 사람들의 화려하고 강력한 간증을 들었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간증은 하나님이 나를 만나러 오실 때 분명히 충격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큰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의 회심에 화려한 불꽃놀이는 없었다.

적과의 치열한 세력 다툼도 없었다. 독창적이거나 특별한 것도 없었다. 내가 회심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날짜와 시간도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 화려한 불꽃, 기억에 남는 기적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회심 과정은 훨씬 더 초라했다. 회심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기적이지만 때로는 화력이 뛰어난 대규모의 군대보다 잘 훈련된 소규모의 저항군에 더 가깝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의 욕망을 새롭게 혁신시켰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나를 예수님에게 끌리게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엄청난 갈망과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회심의 역사하심은 내게 하나님에 대해서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여기 이 세상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

1. 표면 아래를 보기

내 인생 대부분 크리스마스는 큰 행사였다. 집에 장식을 하고 교회에 가기 위해서 옷을 차려입었다. 산타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행동도 제대로 해야 했다. 이러한 전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평범’이라는 주파수에 맞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보내면 보낼수록 그 위대한 거룩함이 겉으로만 번쩍이는 화려함에 묻히게 된다. 진짜 아름다움, 진짜 의미,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주는 초월성은 외면의 화려함이 우리를 산만하게 만들 때 사라지게 된다.

성경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문화적인 요란함과 마케팅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로 하여금 표면 아래를 보도록 만든다. 크리스마스 때에 하나님은 최고의 선물을 가장 평범한 광경 속에 감추었다. 그는 그 선물을 거룩한 단순함으로 포장했다. 선물을 열기 전에 말씀을 읽는 것, 선물이 열린 후에 감사를 표하는 전통, 식사 전에 하는 감사의 기도, 아이들과 베들레헴 드라마를 나누는 것, 나이든 손님에게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했는지를 나누는 것, 친척과 함께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예수님이 들어간 그 이야기를 함께 하는 것 등이다. 이런 단순한 행동들 속에 어떤 번뜩이는 천재성은 없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간증하고 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게 된다.

바로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이제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영원히 중요한 사건으로 만드는 진정한 보물인 예수님이 구유 안과 밖에서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2. 크리스마스는 당신이 기대하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도 있을 것이다. 또 좋지 않은 크리스마스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산타가 아이 (또는 마음이 아이인 사람)에게 선물 대신 양말에 석탄을 넣어두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우리가 받을 선물과 관련된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크리스마스 전통에 동조한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구세주는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이 세상에 도착함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그분의 진노를 받아 죽는 것이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아기로 오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면서 성장하신 후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침으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그분을 섬기도록 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심판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그의 가족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았음도 상기시켜 준다.

크리스마스 희망 목록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것이다.

3. 크리스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기회로 활용하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7). 성탄절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을 모두 비웠다는 사실이 차지하고 있다. 바로 종이 된 예수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참된 능력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소파에 누워서, 풋볼을 보면서 프레즐을 먹으며 나무 늘보처럼 퍼져있는 것은 재미있다. 내게는 TV 리모컨을 완벽하게 제어할 자격도 있다. 그러나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게 되면 완전히 다른 크리스마스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두 가지 형태로 다가온다. 하나는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이 수고하도록 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 이기심을 역행하는 방식이다.

구세주는 아기로 이 땅에 온 왕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할 뿐 아니라 또한 아기에 불과한 우리가 그를 닮아 이 세상에 역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부르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이 세상에 역행하는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다.

놀랍고도 또 대담한

J. I. 패커(J. I. Packer)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관해서 이렇게 썼다.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 놀라게 된다.” 그런데 생각할 점이 있다. 애플처럼 엄청난 돈을 들여서 광고를 하기 때문에 놀라는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또 해냈어!”라고 외치면서 놀라는 게 아니다. 놀라운 이유는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처녀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셨다. 그리고 그 아기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함으로 영원까지 변화시키도록 했다.
단지 “놀랍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인 위대함이 가진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면서 우리 모두 이렇게 외치자.

“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냅시다!”


원제: Have Yourself a Subversive Little Christma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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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e Harvey

데이브 하비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DMin)를 받고, 현재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해외 선교지에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단체인 Great Commission Collective의 대표로 섬기고 있다. 그는 33년간 목회를 했으며 AmICalled.com를 설립하였고, 여러 나라에서 컨퍼런스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떠나보내기'(공저)와 'When Sinners Say “I Do”'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