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by Joe Carter 2019-11-1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올바른 임무는 생각과 말의 본질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의 문제들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언어에 대한 오해로 발생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가 꽤나 실정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철학뿐 아니라 종교와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문제들은 언어의 부정확한 사용이 원인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엇이 ‘종교적 믿음’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하나의 신념을 종교적 믿음으로 정확히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결정하기 위해 우선 우리는 모든 종교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에만 해당되는 사실들을 모두 나열함으로써, 너무 넓거나 좁지 않은 방식으로 용어를 정의해야만 한다. 이것이 명확한 의미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반면, 의미 정의에서 필수적인 구성 요소가 제거되었을 때 무엇이 제거되었는지를 발견하게 되어 종종 놀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나무에 해당하는 사실이지만 나무에만 사실인 것을 제한된 방식을 통해 나무의 개념으로 정의하려 한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방식으로 설명을 점차 축소시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호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정의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나무의 단어를 정의하는 방식은 종교적 믿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특정한 종교적 신념의 특징들인 나뭇잎과 덤불을 잘라 버린 후 남겨진 헐벗고 빈약한 갈대에 감명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최소한의 정확한 정의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다른 것들이 실제로 더 종교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반면,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믿음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폭로하게 될 것임을 예상해야 한다. 비록 놀라고, 만족스럽지 않고,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우리가 용어를 바르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믿음에 필수적이라고 흔히 믿게 되는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종교적 신념은 신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종교적 믿음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신 혹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특징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다신교를 배제시키기 때문에 너무 제한적일 것이다. 사실상, 일부 종교, 예를 들어 힌두교, 소승 불교 등은 그야말로 무신론을 따르기 때문에 신의 개념을 전혀 포함할 수 없다.


종교적 믿음은 예배 혹은 예배 관련 활동들을 유도하는 믿음이다


이 특징 또한 예배 행위를 하지 않는 힌두교와 소승 불교의 반증에 의해 일축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신들은 사람을 알지도 돌보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쾌락주의자들의 종교적인 신념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런 무관심한 존재들을 숭배할 의무가 전혀 없다고 느꼈다.


의미 정의에서 신과 예배를 제외한다면 공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종교적 신념은 거의 없다. 철학자 로이 클로저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성서적 하나님의 개념, 브라만-아트만에서 힌두의 개념, 소승 불교에서 법신의 개념, 도교에서 도의 개념을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모든 종교적 전통은 어떤 것 또는 다른 것을 신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들 모두는 신성 그 자체의 지위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고 답한다.


많은 종교들은 무엇이 신적인 것이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 모두는 신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는 동의한다. 신적인 것은 무엇이든 절대적이고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실체, 즉 무엇이든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신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궁극적으로 신적인 무언가에 존재를 의존한다. 비의존성과 그에 상응하는 개념은 모든 종교적 믿음의 공통적 특징이다.


클로저는 공통된 요소들을 사용하여 정확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공식화한다. (1) 어떤 것을 신적인 것으로 여기는 믿음, (2) 신적인 존재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믿음, (3) 어떤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의존적인 존재, 즉 신적인 존재로 믿는 믿음.


우리가 이 정의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모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야기해 오던 우리의 전 생애를 산문에서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사투리로 말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모두가 종교적 믿음의 체계와 행위,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터무니없을 수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실수로 종교의 반대라고 믿는 이론이나 신념, 즉 물질주의 등에 중점을 둠으로써 나타날 수 있다.


물질주의(유물론)라는 개념은 적어도 고대 그리스인 이후로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비종교적인 개념으로 간주되고 있다. 물질, 또는 다른 물리적 실체가 무조건적이고 비의존적인 실재이며, 믿음에 기반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명백한 주장은 다소 이상하다.


사실상 유물론은 무신론과 같은 일부 관련된 믿음보다 정의에 더 가깝다. 마치 유일신교가 신의 수를 하나라고 또 다신교는 그 수를 하나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무신론은 많은 신은 제로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비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무신론이 본질적으로 종교적 신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반면에 유물론자는 범주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정의하기에 적합하다.


클로저의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거나 좁지 않다. 이는 알려진 모든 종교적 전통에 적용 가능하며 논리적으로도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질주의자들은 그들의 논리를 굽혀 지나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점을 강조하면, 많은 물질주의자들은 ‘종교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론에 있어서 특별한 간청을 하거나 언쟁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클로저가 말했듯이, “만약 당신이 신적인 것이라고 믿는 어떤 것이든 당신에게 종교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종교적 특징을 인정하는 우리에게는 당신의 믿음은 자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종교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라는 사고는 틀림없이 종교적 믿음처럼 보이고 기능할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at is a Religious Belief?

번역: 송유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