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뉴스를 대하는 법
by Paul Conner2019-11-28

“왜 읽을거리가 많은데, 굳이 신문 기사를 읽는가?”


C. S. 루이스는 ‘문학 비평의 실험’(An Experiment in Criticism)과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에서 이러한 물음을 던졌다. 그는 오로지 신문만 읽는 사람을 “가장 비문학적인 독자”라고 표현했다. 이는 “제일 하찮은 소설”을 읽는 독자보다도 수준이 낮은 독자를 의미했다. 또한 루이스는 신문 기자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거의 “상스럽고 선정적인” 이야기에만 매달려 글을 쓸 뿐 어떤 사실도 원래의 맥락에서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루이스의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뉴스를 아예 끊어 버리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루이스의 지적처럼, 우리가 어떤 자세로 뉴스를 대해야 할지는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언론 매체를 대할 때 크리스천으로서 지녀야 할 성경적 원리를 다섯 가지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1. 진위를 분별하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잠 14:15).


먼저 우리가 읽고 있는 기사에 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연 그 내용이 인간의 상태를 바르게 묘사하고 있는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지, 현실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사실 누구나 객관성을 강조하지만, 어느 기자도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시간이 허락된다면, 여러 각도로 생각하며 신문 기사를 읽는 게 현명하다. 혹 뉴스의 목표가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인은 항상 진실만을 발표하지 않는다. 이는 그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든지 진실은 언제나 가려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늘 분별하라. 뉴스 속보조차 잘못된 내용일 때가 많다. 그러니 신문 기사를 읽고 공개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시간을 두고 어떻게 루머와 추측이 서서히 걸러지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2. 어리석은 내용을 피하라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쓸데없고 어리석은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나 케이블 방송 뉴스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넘쳐 난다. 그중 소셜 미디어는 간결한 문구로 소식을 전달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데, 이는 짤막한 의견을 피력하고 그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안성맞춤인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사안에 관해 미묘한 대화가 오가며 끔찍한 결과를 낳는 공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케이블 방송에서 소개하는 뉴스는 진솔하고 유익한 논의를 도모하기보다 다툼을 조장하는 기사를 다룰 때가 더 많다. 그 내용은 흔히 시청자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더 심하게 각색되기도 한다. 피디는 게스트가 방송에 나오기 전에 해야 할 말을 미리 정해 주기도 하고, 특정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일부러 그에 맞는 사람을 초청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려 깊은 토론보다는, 언성을 높이며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준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3. 공감하려고 노력하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앞선 부정적인 측면과 달리, 각종 뉴스는 다른 민족이나 연령 또는 경제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감당하며 진정한 연합을 이루어야 할 교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경험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는 흑인 차별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교회에 있는 지체들의 경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사를 읽기만 한다고 해서 관계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와 같은 이해는 타인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4. 걱정에 사로잡히지 마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뉴스를 통해 사회가 당면한 문제만 계속 접하면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그런 순간에는 우리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이 주권을 행사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지도자를 세우시고, 세상의 불의를 미워하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선이 되도록 만사를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진리는 세상의 소문이 흉흉할 때에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5.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언론 매체가 전달하는 소식은 지역 사회와 세계를 위해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뉴스 때문에 생긴 걱정을 떨쳐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기사를 접한 후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섬기는 교회가 어느 지역의 선교 사역을 후원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며 선교 사역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물론 당신이 속한 도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전달된 최고의 뉴스


나는 언론 매체에 대해 C. S. 루이스만큼이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진 않다. 각종 미디어는, 이를테면 아내와 어디에 가서 데이트를 하면 좋을지 또 누구에게 투표를 하면 좋을지를 알려 주기도 하고, 기도해야 할 구체적인 제목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혹은 이웃과 만났을 때 대화의 소재가 된다거나 내가 종사하는 분야의 최근 소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세상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타인의 입장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니면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읽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보도 내용을 작성하는 기자나 언론인이 진실을 추구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며,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를 제공한다면, 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어의 한계를 또한 인식해야 한다. 여러 언론 매체는 인간의 타락상을 드러내는 데는 훌륭하게 기능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에 대해 사망과 지옥이라는 형벌이 따른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그 형벌이 거두어지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그분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이 소식이 바로 우리에게 전달된 최고의 뉴스이다.


그러므로 진짜 현실을 규정하는 뉴스는 미디어가 전달해 주지 못한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헤드라인을 접하게 되었든 간에, 오늘도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분은 우리의 왕이시다. 이에 우리는 소망한다. 머지않아 그분이 오셔서 어리석은 자의 입을 잠잠케 하시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이슈도 다 제거하시며, 진정으로 새로운 기사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기를 말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5 Ways to Engage with News Media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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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Paul Conner

폴 코너는 워싱턴 D.C를 기반으로 한 저널리스트로 Capitol Hill Baptist Church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