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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내게 어떻게 적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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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 C. Sproul  /  작성일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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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Ian Baldwin on Unsplash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율법과 그것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십계명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명기를 읽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편을 읽으면서 율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편이야말로 율법에 관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어야 하는 곳이다.


시편에서 가장 긴 119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놀라운 찬양으로 가득 찬 글이다. 119편은 이합체시(역자 주: 시의 형식 중 하나로, 각 구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다른 뜻의 말이 나온다. Acrostic)이다.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수와 동일한 22개의 절(stanza)로 이뤄졌는데, 각각의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한 문자를 상징하고, 또 해당하는 문자로 내용이 시작된다.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 알파벳으로 치면 A에서부터 Z까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통틀어서 율법을 기뻐하고 즐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신약의 가르침에 더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한다는 개념은 완전히 고풍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오히려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뻐한다. 성경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라고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구약에 나오는 율법을 기독교인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하곤 한다. 구약의 율법을 무시하는 현대에 만연한 분위기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 시편 저자의 말을 숙고해야 한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97–104).


119편의 이 부분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감탄으로 시작한다(한글 성경과 달리 영어 성경에서는 ‘Oh’라는 감탄사로 97절이 시작된다-역주). “오우!”라는 말은 실로 깊고도 심오한 감정을 드러낼 때 쓰는 표현이다. 여기서 저자의 감정은 다름 아닌 ‘애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기독교인을 본 적 있는가?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하나님의 율법이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가? 당연히 대답은 No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왜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더 깊은 감사와 애정을 느끼지 않는지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구약 성경 속 성도들의 삶에서 기쁨의 초점이었던 그 어떤 것을 지금 와서 경멸하거나 무시하도록 만드는 게, 그리스도의 삶 자체와 그분의 사역이었다는 게 말이나 될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구약의 율법이 신약 성경 속 기독교인들과 더 이상 관련이 없으며, 우리의 영적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정 때문일 것이다. 율법은 구약 시대의 신자들을 위한 것이지, 오늘날의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표본은 모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이고,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오, 예수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또는 “오, 주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와 같은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독교인을 만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감정에 뭐라고 응답하실까? 초기 교회에 대한 그분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는 말씀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나도 한 때는 율법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율법은 무시합니다.”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율법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음식이자 음료는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요 4:34) 우리에게 알려 준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율법의 한 획, 한 획을 다 준수했고, 또한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사명으로 보셨다. 그분의 동기는 율법의 항목 하나하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율법을 통해 당신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시편 119편에는 ‘율법’과 ‘말씀’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강한 애착을 드러내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예 제외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교차해서 사용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이 시편 119편에서 이런 이분법은 찾을 수 없다. 시편 기자는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애정을 반복적으로 찬양한다. 그럼, 시편 기자는 왜 하나님의 율법을 그렇게 깊이 사랑했을까?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건 다른 말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이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왕, 회장, 지도자 또는 다른 사람들이 지시를 내릴 때, 그들의 명령은 도전받지 않는다. 그들은 권위의 최종 목적지(the final court of appeals)이기에 그들의 명령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말이 바로 법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하나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건 혹시 아닐까? 그분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율법인가? 그분은 구약 성경에서와 같이 여전히 절대 주권자이신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신약 시대 교회의 하나님이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인가? 그분의 말씀은 율법이며, 그분의 율법이 그의 말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즉 율법은 꿀보다 더 달콤하다(시 119:103).


시편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축복으로 시작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이 구절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행태, 관습, 그리고 일반적인 지혜를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구절을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대중적인 지혜를 따르지 않는, 또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풍습과 패턴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여기 1절에서는 어떤 특정한 것을 ‘하지 않는 사람’, 즉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축복이 선포된다. 그럼 긍정적인 측면, 그러니까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면 이 구절을 이렇게 다시 쓰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겠다. “바보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율법주의자 같은 사람들이나 율법을 기뻐하고 일 년에 5분 이상을 그것을 묵상하는 데 쓸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복 있는 사람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계속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3절). 시편 기자와 그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유대 광야를 한번 상상해 보자. 불모의 황무지인 땅에서 나오는 마른 싹과 타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 바싹 마른 땅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나마 살아 있는 잎사귀를 상상해 보자. 그리고 저기 멀리 수풀에 심겨져서 과실을 주렁주렁 맺은 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를 한번 그려 보자. 또는 요르단 강가의 입구에 심겨진, 뿌리가 땅속 깊숙이 들어가서 수분과 영양분을 마음껏 흡수하는 나무들을 상상해 보자. 이 나무들은 건강하고 가지마다 맺는 과실은 풍성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복 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내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막 한가운데에 심어져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뿌리 없는 작은 나무 같지 않다. 그는 생명이 넘치는 강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서,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의 눈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은 비단 율법뿐만 아니라 예언서와 지혜서와 같은 구약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은 하나같이 다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마치 외계인 또는 우리의 삶에 불쑥 들어온 침입자처럼 느껴진다면, 그뿐 아니라 상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항상 넘어지고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있다면, 그리고 시시때때로 사소한 산들바람에도 멀리 날아가는 겨처럼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때야말로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을 깊이 묵상해야 할 때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How Does God’s Law Apply to Me?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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