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전체를 보여주는 요셉 스토리
by Samuel Emadi2019-10-02

모세는 다른 캐릭터보다 요셉에게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창세기를 기록했다. 이는 아담이나 노아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족장들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에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창세기 이후로 성경 전체에서 요셉이 그리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놀라움은 더 커진다.


그렇다면 요셉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왜 그 이야기가 창세기에서 그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일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요셉 이야기가 어떻게 창세기의 서사라든가 전체 구속사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흔히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예증하기 위해 요셉 이야기를 활용하곤 한다. 주로 창세기 50장 20절 본문에 집중해서 말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요셉의 인생을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창세기 37장에서 50장에 이르는 긴 본문의 중심 주제일 뿐 아니라, 요셉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45:1-9).


하지만 요셉 이야기를 예컨대 양립주의(compatibilism)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로만 축소시켜 읽는다면, 그의 인생이 성경 전체의 줄거리에 얼마나 풍성하게 기여하는지를 놓치게 된다(참고로 양립주의란, 하나님의 결정과 인간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견해이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언약의 약속을 이행하시는 섭리를 독자한테 보여 주기 원하셔서 자신의 주권이 요셉 이야기 전반에 나타나도록 하셨다. 따라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떻게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지를 드러내는 인물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질 때, 우리는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요셉이 어떻게 독특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갈등의 해결을 드러내는 이야기


창세기는 언약 백성의 생존과 순결을 위협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소개한다. 곧 37장에서 50장에 이르는 내용을 읽어 보면, 야곱과 그 자녀에게 온갖 종류의 시련이 들이닥치며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 가인과 아벨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가족 간의 분열과 다툼이 다시금 언약 백성의 생존을 위협한다(창 37장; 참고 4장).

2. 이방 민족과 통혼하여 드러나게 된 불의가 언약 백성의 순결을 위협한다(창 38장; 참고 12:10-20).

3. 세계적인 기근이 발생하여 언약 백성이 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창 42:1-2; 참고 3:17-19; 12:10; 26:1).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해서 아브라함 가문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 갈등을 해결하신다.


1. 요셉은 형제들에게 받은 대로 복수하기보다 관대한 용서를 베풂으로써 그들과 화해하고 가족 간의 연합을 이룬다(창 45:1-15).

2. 요셉은 그의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켜 이방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그리하여 애굽인의 미움을 받지 않게 된 가족은 이방 민족과 통혼하지 않고 그 땅에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된다(창 46:33-34).

3.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행정 능력을 발휘하여 심각한 기근으로부터 가족의 생명을 지킨다(창 41:25-35; 47:13-26).


결국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언약 백성을 위협하는 문제를 역전시키신다. 곧 용서를 통해 다툼을, 의를 통해 불의를, 그리고 지혜를 통해 기근을 해결하신다.


약속의 성취를 나타내는 이야기


더 나아가 창세기 37-50장은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부분적으로 성취하시는지를 보여 준다(창 12:1-3).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열방에 은혜를 베푸신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자기 집을 그에게 다 맡긴다. 이에 하나님은 요셉 때문에 보디발에게 복을 주신다(창 39:4-5). 그리고 요셉은 또다시 바로의 집에서도 총리가 된다(창 41:40). 그 결과 열방에 복이 미친다. 요셉이 심각한 기근 중에도 애굽인과 각국 백성에게 양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창 41:56-57).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손으로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요셉을 통해 성취하신다. 일단 요셉이 그의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키고 나자, 아브라함 자손은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다(창 47:27). 이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표현은 창세기 전체에 걸쳐 등장하지만, 지금 이 경우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그 백성에게 명령하거나(창 1:28; 9:1, 7; 35:11) 그와 같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지만(창 16:10; 17:2, 6; 22:17; 26:4, 24), 이번에는 처음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동일한 표현이 여기서는 직설법으로 서술되었다. 요셉의 리더십 하에 아브라함 자손이 실제로 번성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왕에 대한 약속도 요셉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다. 창세기 37장에 소개된 요셉의 꿈은 장차 그가 수행할 통치자의 직분을 예견한다. 곧 애굽의 궁정에서 요셉이 차지하게 될 위치를 암시한다. 더군다나 그가 입었던 ‘채색옷’은 왕가의 의복을 상징한다(삼하 13:18). 따라서 이 장에 앞서 예언되고 모형론적으로 제시되었을 뿐 아니라 언약의 약속으로 언급된 통치자(창 17:6, 16; 35:11), 즉 아브라함 자손을 통해 나타나리라고 기록된 왕의 도래를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는 창세기 37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장에서부터 소개되는 요셉이 그 예견을 더욱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에 대한 약속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요셉을 보며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후 왕궁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게 된 요셉 이야기는 단지 하나님이 그의 결백을 입증해 주셨다는 내용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아브라함 자손을 통해 인간의 통치가 회복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언약에 그분 자신이 얼마나 신실하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한 나라를 이루고 그로부터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요셉은 바로 그 통치자를 보여 주는 첫 번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열방에 전해 주는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드러낸다. 곧 사랑받는 아들이자, 섬기는 왕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섭리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비록 모세는 창세기 37-50장 이야기의 중심 무대에 요셉을 세웠지만, 사실상 그 무대의 주인공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요셉이 어떻게 성취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버림받은 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언약을 지키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언약의 성취 여부는 인간의 악한 행동마저도 자신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창 50:20).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모든 위협적인 상황을 역전시키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해 나가신다.


이와 같은 요셉 이야기는 단지 창세기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보다도 창세기의 전체 스토리가 안고 있는 갈등에 대한 해결책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창세기는 형제를 미워하는 사건으로부터 형제에 대한 용서로, 그리고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근으로부터 가족이 재회하여 잔치를 벌이는 축제로 독자들의 걸음을 인도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이야기


이러한 관찰은 요셉이 과연 장차 나타날 메시아에 대한 ‘모형’(type)인지, 즉 하나님이 의도하신 예시적인 인물이 맞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교회사에서 수많은 성경 해석자들은 요셉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맞다고 설명해 왔다. 요셉과 그리스도 간에 존재하는 명백한 유사점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요셉도 사랑받는 아들로서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았으며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과 예수님의 상관성을 드러내는 유사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요셉의 인생은 그보다 더욱 직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언약의 약속을 성취하고 죄인에게 내려진 저주의 결과를 무효하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창세기는 야곱이 유다를 위해 축복한 내용이 이미 요셉의 삶에서 모형론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 49:8).


이 축복에서 야곱은 유다의 후손으로 장차 오실 왕을 묘사하는데, 그 이미지가 요셉의 인생에 펼쳐진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다. 여기서 유다의 형제들이 그 앞에 절하게 된다고 언급되는데, 이처럼 절을 한다는 표현은 요셉의 꿈에서 형제들이 그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이미 세 번 사용되었고(창 37:7, 9, 10), 또한 그들이 애굽의 궁정에서 실제로 요셉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기술하기 위해서도 세 번 사용되었다(창 42:4; 43:26, 28). 이처럼 창세기 49장 8절에서 열한 명의 형제들이 한 사람 앞에 절을 하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들려준 요셉 이야기를 요약하는 한 편의 그림과 같다. 이런 유사점은 의도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장차 나타날 메시아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은 바로 이 야곱의 축복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 곧 메시아가 요셉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게 되리라는 답변을 얻는 것이다.


이처럼 요셉과 유다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이 구절만이 아니다. 사실 모세는 요셉 이야기 전체에 걸쳐 두 인물을 자주 병행시켜 놓았다. 예를 들어 가장 결정적인 세 차례의 대목을 살펴보면 그들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곧 서론 부분에서(창 38-39장), 절정 부분에서(창 44-45장), 그리고 야곱의 예언 부분에서(창 49장) 그렇게 등장하는데, 이 단락들은 요셉 이야기만이 아니라 창세기 전체 스토리의 백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요셉과 유다는 서로 엮여 있다. 따라서 야곱의 예언에서도 두 사람은 장차 나타날 이스라엘의 왕을 함께 예시한다.


이처럼 모세는 요셉이라는 모형론적 인물을 통해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 미래의 왕을 묘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아를 통해 절정에 이르게 될 이스라엘 역사의 거시적인 스토리 안에 요셉 이야기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또한 이로써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는 모세가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왕적 인물로서 요셉을 바라보도록 뚜렷한 장치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셉 이야기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래의 소망을 제시하는 이야기


창세기 37-50장은 단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내용만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여 인류에게 내려진 저주의 결과를 역전시키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해 나가신다. 하나님은 모든 게 불리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자기 가족에 의해 노예로 팔려 나간 한 사람을 들어 자신의 권능을 펼쳐 보이신다.


아마도 모세는 자기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보잘것없는 한 인생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자 요셉 이야기에 그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죄인에게 임할 저주를 완전히 역전시키며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실 미래의 진짜 요셉(a coming Joseph)을 기대하도록 그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요셉 이야기는 성경의 전체 스토리를 보여 준다. 즉 고난을 통해 영광으로, 비하를 통해 승리로 나아가는 스토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at the Joseph Story Is Really Abou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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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muel Emadi

사무엘 에마디는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으며, 현재 9Marks의 편집장으로 섬기고 있다.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ird Avenue Baptist Church의 성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