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k

사이트 내 전체검색

tgck

검색버튼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ticles

축복 기도의 목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Aaron L. Garriott  /  작성일 2019-10-14

본문

Photo by Edwin Andrade on Unsplash

영화가 끝날 때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영화가 끝나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올 때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영화관을 일찍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영화관과 같이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며, ‘중요한 부분’이 끝나면 편할 때 떠나도 되는 교회 문화를 인정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모습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예배가 끝나지 않았는데 일찍 떠나게 되면, 영적인 영양실조의 상태에 놓인다. 왜냐하면 예배의 정점인 축복받는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축도를 말하는 것인가? 목회자가 손을 들고 드리는 마감 ‘기도’ 말이다. 그것은 영화 끝에 올라오는 자막과 같은 것 아닌가?" 만일 이런 생각이 든다면, 아마도 우리가 축도의 특성과 목적을, 가장 좋게 말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이별 인사쯤으로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축도는 교회 예배의 가장 핵심 요소였다. 초대 교회에서 중세를 거치고, 청교도들을 거쳐 종교 개혁자들에 이르기까지, 목회자가 손을 들고 회중에게 축복을 선언하는 것이 예전적 전통이었다. 축도는 탄원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예배 의식의 양 끝을 세우는 전통이었다. 이 관행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공적 예배의 모범에 성문화되어, 목사는 “엄숙한 축복으로 회중을 해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관행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목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을 출범시킨 후에 아론과 그의 아들을 축복함으로 이 절차를 시작하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3-27).


이러한 선언으로, 새로 형성된 회중은 소유물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주님이 그들에게 그것을 약속하셨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초기의 사례에서 보면, 축복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며,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말씀이고, 신앙을 지탱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축복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좋은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통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기도나 찬가와는 다르다. 기도나 찬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반면,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도와 찬가가 북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축복 기도는 남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둘 다 크리스천의 경건 생활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교회의 예배에서는 구분되어야 한다. 존 오웬(John Owen)은 아론의 축복 기도에 대해 논하면서, “제사장에게 이르는 이 말은 제대로 된 기도는 아니었지만, 권위를 가진 축복 기도였고,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려 제정하신 하나의 표시였다”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축도할 때 눈을 뜨고 손을 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언을 받는 식의 자세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축복 기도를 선언하는 사람이 양손을 든 자세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론(레 9:22)과 그리스도(눅 24:50)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축복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맡겨진 사람에 의해 선언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사역은 주로 아론의 후손에게 주어졌다(대하 30:27; 히 5:1-5). 신약성경에서 이 책무는 장로로 임명받은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 기도를 선언하는 권위는 (올바른 상황과 올바른 형식으로) 목회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임명받은 장로들은 위임받은 권위로, 이미 사실인 것, 즉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언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 회중에게 이미 사실이라면, 그들은 왜 그 축복 기도를 받아야 하는가?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며, 기도의 형식을 담아 축복을 선언하는 세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에게 복을 내린다고 확증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으로 받아져야 한다. 주님은 축복의 선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축복의 말씀은 목회자들의 선언을 통해 우리 머리 위에 내려 주심으로 전달된다. 즉, 축복 기도는 하나님의 복 주심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달되는 방편이고 형식이다. 주님은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목회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 주심을 실질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아론의 축복에서 제사장은 “불분명한 속삭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 기도의 형태로 크게 소리를 내어 선언하도록 명함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했고, 백성들은 그것을 믿음으로 이해했다고 알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칼빈은 계속해서 축복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제사장들에게 두어, 그들이 그것을 그분의 선한 뜻과 그때부터 진행되는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매일 제시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 축복 기도는 믿음으로 이해되고 감사와 확증으로 받아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약속으로 보증된 곳을 기다리고 있다(요 14:3; 엡 1:14). 우리 지친 순례자들은 항해하는 중에 우리를 밀어 줄 바람이 불도록 정기적으로 이러한 선언이 필요하다. 아름답게도, 아론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며(계 21:3) 그분의 이름이 우리 위에 놓이는(계 14:1) 곳에서 완전해진 새 언약으로 절정에 이른다. 정기적인 선언을 통해 우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히 우리의 운명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는 그의 신부에게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우리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계 22:4).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Benediction of God

번역: 정은심


작가 Aaron L. Garriott

아론 게리엇은 Tabletalk Magazine의 프로덕션 메니저이다. 그는 플로리다주 올란도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근 예배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