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비판, 어떻게 대처할까?
by Guy M. Richard2019-10-24

리더십을 맡아 섬겨 본 자라면, 죽음과 세금만이 인생에서 불가피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어도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바로 ‘비판’이다. 리더십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리더십의 역할이 공적일수록, 비판도 잦아지고 불공평해지며 그만큼 더 불쾌해진다. 그러나 결국 전장에서 적군이 퍼붓는 공격을 감당하며 그 강도가 최고조에 이르더라도 진격을 해야 할 책임은 지휘자에게 있다.


이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답변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니다. 비판을 다 피하면서 주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그분을 신실하게 섬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비판에 대비할 수 있을까?’이다. 그래야만 비판이 찾아왔을 때,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또 어떻게 그 공격이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지를 알고 준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그 힌트를 다음 구절에서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전 7:21-22).


첫 번째로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듣는 비판 중에 어떤 내용은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거짓된 비난과 악의를 담고 있는 험담이 그런 종류에 속한다. 그런 비판은 한시도 마음에 담아 둬서는 안 된다.


이는 거짓된 비난에 아무 대꾸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사역의 진정성을 지키고 리더십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런 비난에 대응해야 할 때도 있다. 사도 바울도 가끔씩 그렇게 대응했다. 특히 고린도후서를 통해 엿볼 수 있듯이, 그동안 신실하게 수행했던 사역이 자칭 사도라고 높이는 사람들의 험담으로 위협을 받았을 때 그는 분명하게 대응했다(고후 11:5-6; 12:11). 그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자신의 사역을 변호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거짓된 비난이 우리에게 쏟아질 때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그런 비방을 굳이 마음에 담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런 비방을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넘어뜨리게 하고 내면에서부터 우리 마음을 집어삼키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우리는 그런 말을 무시하며 전혀 듣지도 않는 자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비판이 전적으로 거짓은 아니라는 데 있다. 적어도 일부분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비판을 대할 때조차,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비판도 그리 건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그런 비판은 그리스도인이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라기보다, 또 그리하여 당사자를 세워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단순히 그 사람을 공격하려는 마음에서 행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상대의 흠을 지적하려는 태도와 무례한 말투로 표현되곤 한다. 물론 그런 비판을 들으면서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한다), 그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표현되는 비판 정신과 거친 말투까지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찰스 스펄전은 자신의 강의안인 ‘목회자 후보생들에게’(Lectures to My Students)에서 전도서 7장 21-22절에 대한 매우 유익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 제목은 ‘감긴 눈과 닫힌 귀’(The Blind Eye and the Deaf Ear)이다. 거기서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사람들의 혀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의 귀를 닫고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짓된 비난과 해로운 비판이 주어질 때는 그 내용을 듣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런 말을 하는 자들에게는, 아니 최소한 그 파괴적인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감긴 눈’과 ‘닫힌 귀’로 대응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처를 아예 받지 않고자 사람들을 피해 홀로 고립된 상태에 처하거나 또는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잘못된 방법으로 그 비판에 대처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만두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역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비판에 담겨진 파괴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그 내용을 마음에 두지 않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스펄전이 말한 ‘감긴 눈’과 ‘닫힌 귀’를 갖추어 그런 비판에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전도서 7장 본문은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특히 22절은 우리 각자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별로 유익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태도로 타인을 비판하는 잘못을 범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우리가 비판을 받을 때, 우리 역시 그런 자세로 타인을 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갖지 않는다면, 비판을 받을 때 함께 비판하고 상처를 받은 대로 상처를 돌려주며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될 말까지 쏟아 놓으며 화를 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를 비판한 그 사람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까지 감수하게 된다. 심지어는 우리의 직장이나 리더십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훌륭한 리더라면, 작은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전쟁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이 본문은 모든 비판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비판이 얼마나 과장되고 가혹하게 들리든, 거기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된 비방이나 악의가 서린 험담은 예외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감긴 눈’과 ‘닫힌 귀’로 응수하며 무시해야 할 내용이 많은 비판에도 우리가 새겨들으며 마음에 담아야 할 교훈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스펄전은 그와 같은 비판을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지는 칭찬보다 ‘훨씬 더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무분별하게 내뱉는 칭찬은 우리를 자기만족에 빠뜨리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비판은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모두에게는 칭찬이 필요하다. 가령 우리의 리더십과 그 직분을 맡아 수고하는 우리의 노력이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이 직접 사용하시는 방편이 된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려 주며 격려하는 칭찬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과한 격려나 무분별한 칭찬은 오히려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너무 과한 비판도 좋지 않다. 그런 비판은 우리의 마음을 쇠약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에 대해 골몰하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격려와 비판 모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와 빈도가 알맞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께 간구하도록 하자. 비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려를 받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비판이 찾아올 때 그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간직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우리에게 비판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How to Handle Criticism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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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uy M. Richard

가이 리차드는 아틀란타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미시시피주 걸포트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12년간 담임목사로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