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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손 가정을 세워주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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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ames Coffield  /  작성일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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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Yannis A on Unsplash

주일 아침 10시 30분이다. 마기의 집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기는 교회에 가고는 싶다. 하지만 이런 전쟁이 벌어지는 날에는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다루는 일은 아침 시간에 더 힘들다. 그녀는 주일 아침 이른 시간에 있는 성인 모임에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아들을 보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가족을 가진 완벽한 외모의 여성이 그녀를 쳐다보는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이들도 있고, 귀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으며, 친절한 사람들도 있어 보인다. 때로 수치심이 밀려 올라올 때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차리겠나'라고 생각해 본다. 그녀의 남편은 몇 년 전에 그녀를 떠났다(장애인 가족의 경우 이혼율이 80퍼센트가 넘는다). 그녀는 필요시 빨리 자리를 뜰 수 있도록 보통 예배당 맨 뒷 줄에 앉는다.  

  

우리 공동체에는 마기의 가족과 같이 피곤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생애 과정 중 변화를 경험하고 있거나, 외상이 있거나, 비극적인 일을 겪었거나 혹은 현재 겪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교회가 그들을 원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며 소속감도 갖지 못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돌보는데 너무 힘들고 가족들도 엉망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환영받기에는 실패와 허물이 너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 곳이 없거나, 역기능적이거나, 그 외의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많은 교회가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의 독특한 상황마다 잘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현대 문화를 포스트모던, 포스트크리스천, 포스트패밀리라는 말로 묘사한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채워져야 할 필요가 매우 많이 있지만, 교회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교회가 취해야 할 첫 단계는 사고 방식의 전환이다. 잘 준비된 프로그램의 비전이나 중요성을 교회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시도하다가 결실을 온전히 맺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새로운 비전이나 사고 방식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교회는 건강한 자들이나 “의로운” 자들이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역기능 가정들을 위한 곳이다.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가 아니다. 대신에 우리는 “스스로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부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교회는 상한 자를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응답자의 88퍼센트가 그들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가족 의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그리스도를 형제로,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적 직함들로 미루어 볼 때, 교회는 발달 과정 중이거나 문제가 있거나 과도기적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한다고 볼 수 있다.


과도기적 변화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예측 가능한 변화, 불행한 변화, 비극적 변화가 그것이다. 어느 교회라도 예측 가능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가늠하고 실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동기, 청소년기, 대학 학업기, 결혼 준비기, 자녀 양육기 등에 대해서 말이다. 불행한 변화는 특정한 교회 안에서 나이, 사회경제적 상태, 문화적 규범, 지역적 편견에 따라 좀 더 명확하게 정의될 것이다. 여기에 복합 가족, 홀부모 자녀 양육, 중독, 장애 자녀, 장애 성인, 실직이나 경기 침체, 정신 질환 등과 같은 주제들이 포함될 수 있다. 비극적 변화는 교회 별로 좀 더 특수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과도기적 변화에는 허리케인, 경제적 침체, 자연 재해, 심각한 범죄 혹은 테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지역 교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교회가 섬기는 회중과 지역 공동체를 조사하여, 과도기적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훈과 복음의 능력을 어떻게 전하며, 그들을 구원으로 어떻게 이끌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초청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초청


사람들은 그들이 환영받고 있는지 여부를 스스로 인식한다. 삶이 깨지고 소외 당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주는 일은 목회자로부터 시작된다. 교회는 프로그램을 따르기보다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따를 것이다. 강단에서부터 시작하라. 설교자는 청중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투쟁하고 있는 그 영역에 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성도들은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자녀들의 학급이나 안전에 관련된 문제 등 어떤 문제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질문에 빠르고 유쾌하게 답변해 주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사역을 할 때 에너지의 70퍼센트를 그들이 그냥 환영받고 소속감을 느낄수 있도록 하는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교회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는 것뿐이더라도 말이다.

 

나는 최근에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동들의 부모를 위한 결혼 생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 교회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놀이 기구는 물론, 페이스 페인팅, 각종 활동과 음료, 그리고 일대일 돌봄을 제공해 주었다. 많은 부모들이 세미나 중에 눈물을 흘렸다. 가르침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서로 만난 것이 기뻐서도 아니었다. 교회가 그들을 환영하고 돌보려고 애쓰는 모습에 놀라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넘어서는 문제나 상황은 없다는 믿음으로 행해지는 일들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끄는 초청장이 된다. 드러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슬픔의 무게를 지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복음의 진리가 그들에게도 해당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고 지낸다.  

 

교회 공동체는 어떤 문제로 투쟁하는 것을 영적인 연약함의 표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가서 아무 문제도 없는 척한다. 알코올 중독과 싸우고 있는 한 남성이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는 가르침을 들으러 가고, 실제적인 도움과 공동체를 얻기 위해서는 알코올 중독자 회생 모임(Alcholics Anonymous)에 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위장하며 살라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교회는 상한 사람들이 가서 환영받는 곳이다.

 

정보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면하는 도전들 중의 하나는 수많은 자료들이 무분별하게 제공된다는 것이다. 모든 주제마다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자료가 손 닿는 곳에 있기 때문에, 교회는 필터 역할을 하여 성도들이 이를 분별해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모든 영역에서 성경적이고 도움이 되며 건전하고 적절한 정보를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과도기적 변화의 어려운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소그룹과 주일 학교, 서포트 그룹과 상담 사역 등 모든 영역에서 제공되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주제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각별한 투쟁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적 치유 자원들을 공급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과 신앙의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루는 특정한 과도기적 변화의 분야에 열정을 갖고있다. 그들의 열정은 개인적 경험이나 하나님의 촉구하심에 의해 생겼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주님의 인도를 신실하게 추구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특별히 선정된 자료들을 사용한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도 이들을 결코 대신하지 못한다. 한편, 통계 자료들은 특정 그룹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인지를 예측케 해준다. 예를 들면, 싱글맘 가족은 다른 유형의 가족들에 비하여 극도로 가난한 가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싱글맘을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압박과 염려가 그 가정 안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직접 관여하여 헌신하지 않는다면 어떤 훌륭한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가치가 없다.   


통합


공동체와 헌신은 통합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일차적 공동체는 당면 문제들을 다루는 특정한 소그룹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회원들에 의해 구성될 수 있지만, 그 회원들은 필수적으로 더 큰 교회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6장은 우리에게 “짐을 서로 지라”고 하고 몇 구절 뒤에 “각자 자기의 짐을 지라”고 권고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서, 교회는 유용한 정보와 참여를 제공해야하며, 그들이 마치 어떤 프로젝트의 대상인 것처럼 느끼지 않도록 교회에 접목시켜야 한다.


이러한 일은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훌륭한 리더십은 어떤 그룹에 그냥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그룹이 선교 사역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훌륭한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이 그들의 동료 원주민들에게 다가가도록 훈련시킴으로써 과도한 일에서 벗어나고 있다.   


통합을 이루는 면에서 헌신의 영역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교회는 단기적 위기 상황에는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죽음, 결혼식, 그리고 단기 입원 등 말이다. 하지만 장기간의 질병, 장기 특수 장애아, 만성적 갈등으로 깨진 가족들, 가난 등과 같은 장기전을 요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교회가 항상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엉망인 장소가 되도록 헌신하는 것이다. 잠언 14장 4절을 기억해 보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우리가 원하면, 교회를 깨끗하고 정리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추수할 곡식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우리가 실제로 복음적인 사역을 한다면 교회는 엉망이 되고 눈물, 땀 그리고 슬픔으로 얼룩질 것이다. 


마기와 그녀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더 반영하기 위하여, 교회는 마기를 더욱 더 필요로 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A Community for Broken Homes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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