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사랑하듯 자녀를 사랑하라
by Jen Wilkin2019-09-19

내게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준 자녀 양육 지침은 아이들이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아이들도 팔과 다리, 귀와 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간성을 가지고있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인간의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이상의 의미를 포함한다. 이것은 그들의 존재가 중요하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성인들과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성인과는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적 가치나 존엄성은 발달 속도나 정도에 따라 증가되거나 축소되지 않는다. “사람은 아무리 작아도 사람이다”라는 닥터 수스(Dr. Seuss)의 말은 유명하다.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내가 들어 본 말 중에서 가장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성경이 자녀 양육에 대한 주제에 비교적 침묵하고 있다는 진술이다.


겉보기에 이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양육에 관한 본문’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부모와 자녀, 권위와 훈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구절들을 보통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신명기 6장이나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다섯번째 계명을 떠올린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자녀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야 한다,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한다는 가르침들과 그 외의 성경 구절들을 피상적으로 언급한다. 혹은 양육을 평가해 보기 좋은 방법으로, 탕자의 예나 족장의 비애 이야기를 그저 던져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외에, 부모와 자녀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자녀 양육의 문제를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남겨두셨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들이 사람이라면,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이 말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모든 성경 말씀이 갑자기 우리가 양육하는 방법과 관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 희생과 노력으로, 경건한 지혜로, 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모든 명령은, 직장 동료들이나 교회의 사람들, 미용실에 있는 사람들이나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사람들, 혹은 노숙자 쉼터에 있는 사람들만 사랑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이는 내 집 지붕 밑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명령도 된다. 그들이 아무리 작을 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사람이라면 내 자녀들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자녀들보다 더 가깝고 우리의 희생적 사랑을 더 필요로하는 이웃은 없다. 


자녀들을 이웃으로 인식하게 되면, 갑자기, 상당히 많은 성경 말씀이 양육에 대해 전혀 침묵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녀들을 이웃으로 인식하는 것은 내가 그들을 훈육하는 방식과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해이야기하는 방식에 영향을 줬다. 그것은 친구나 동료에게는 결코 그리 대하지 않을 것 같은 방식으로 얼마나 빨리 내가 가장 가까운 이들을 대하는지 알아차리게 했다. 내 자녀를 무시하는 대신 긍휼의 대상으로 보게 했다. 생색내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을 더 잘 축하해 줄 수 있으며, 그들의 실패를 내가 형편없는 부모라는 명백한 증거로 보지 않으면서 더 잘 슬퍼할 수 있다. 자녀들을 이웃으로 인식하는 관점은, 내가 그들이 빨래를 만들어내거나, 음식을 먹어버리거나,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때를 쓴다고 짜증내기 보다는, 그들을 사람으로 여기며 기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들을 이웃으로 사랑하지 못한 날에는, 나는 성경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다시 기억하며 자녀를 그 방식으로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자녀 양육에 관한 구절이 “아닐 것 같은” 몇 개의 성경 구절들이 있다. 이 구절들은 내가 자녀를 이웃으로 사랑하지 못한 날에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말씀이다.  


자녀를 가혹하게 바로잡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자녀에게 잔소리하고 싶을 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자녀가 나의 자랑이 되게 하고 싶을 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자녀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질 때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7–40).

 

부모로서 그 공로를 인정받고 싶을 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자녀의 잘못을 용서하고 싶지 않을 때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내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았을 때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4-26).


마지막 성경 구절은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 있다. 


하나님은 아이들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녀는 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잘 돌보고 양육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이웃으로 소중히 여길 때, 훈육하면서 그들에게 비난이나 수치나 경멸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도, 우리의 말은 사랑과 존엄성 전하는 언어로 바꿔진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좌절감을 주는 내 아이를 고쳐주세요”에서 “당신이 나를 사랑하셨듯이, 당신이 우리 집에 보내주신 작은 이웃을 사랑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바뀌게 된다.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는 아이들의 가치와 존엄성을 잘 이해했다. 장로교 목사인 그는 TV에서 '작은 사람들'에게 이웃 사랑의 아름다움을 설교하며 일생을 보냈다. “아름다운 날이네요. [중략] 내 이웃이 되어 주시겠습니까?”라는 그의 메시지는 부모들에게도 좋은 것이다. 아이들은 사람이다. 자녀는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스런 이웃이다. 


부모들이여, 당신의 지붕을 공유하는 자녀를 이웃처럼 여기고 먼저 사랑하기 위해, “아름다운 날이네. 내 이웃이 되어 줄래?”라는 말을 사용해 보라. 그리고 용기를 내라. 성경은 당신을 돕는 말씀들로 넘쳐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Your Child Is Your Neighbor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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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n Wilkin

젠 윌킨은 작가, 강연자, 성경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None Like Him: 10 Ways God Is Different from Us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