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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차별 대우 해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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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Kent Butterfield  /  작성일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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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ris Barbalis on Unsplash

초대교회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곤 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 2:1-4).


그리고 이렇게 말씀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8-9).


차별 대우에 대한 초대교회의 해결책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부르신 열두 사도 중 네 명은 어부였고 한 명은 세리였으며, 나머지는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주님은 그처럼 ‘교육 받지 못한’ 제자들을 부르셔서 온 세상에 교회를 세울 촉매제와 같은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제자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령의 역사,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메시지로 이루어졌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는 아름다운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시작 과정에서 교회를 거의 분열시킬 뻔했던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공동체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바로 불공평하게 사람들을 섬기는 차별 대우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내용처럼 헬라파 과부가 교회에서 소외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 6:1).


당시 헬라파 성도들을 경시하는 태도가 의도적으로 발생하진 않았겠지만, 히브리파 과부들은 교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데 비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과부들은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차별 대우가 교회 안에서 발생하자, 결과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당시 교회가 취한 해결책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선택하여 그 소외된 과부들의 필요를 돌보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 일곱 사람에게는 오늘날의 집사와 같은 직분이 주어져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권속들을 돌보고 다음으로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손길이 미치도록 했다(갈 6:10).


모든 사람이 지닌 가치


교회는 모든 사람을 받아 주는 주님이 세우신 공동체이다. 거기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받는다(막 12:30). 바로 이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형제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흘러나오게 된다(요일 4:21).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신다. 은혜 언약 안에서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며, 그 사람의 가치를 속으로 가늠한다. 보통 재능이 많은 교사라든가 돈이 많은 교인 또는 아이들이나 지인들을 많이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젊은 가정이 교회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부류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해서 돌봐야 할 뿐 아니라 훈련도 많이 요구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즉각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교회 안에 계신 나이든 과부나 홀아비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들은 교회를 위해 가장 열심히 기도하거나 방문자들을 가장 따뜻하게 맞이하는 역할을 한다. 혹 70세가 넘도록 평생 주님을 따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온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 어떠한 복과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지를 강력하게 보여 주는 산 증인이 된다.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 가운데 신앙이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둔 경우에는 그와 같이 연로하지만 성숙한 신자의 모습을 보며 자라게 되는 것이다. 또 결혼하지 않은 지체들은 새로운 방문자의 친구가 되어 주거나 노인들을 섬기거나 혹은 시간을 내어 선교라든가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섬김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로 한 몸 이룬 지체


로마서 12장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손이 눈을 경멸하거나 귀가 발을 무시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 같이 모두가 다 소중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그가 무엇인가 탁월한 일을 하여 교회 성장에 유익을 주리라고 판단하면 편애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또는 성공한 사업가라든가 학력이나 배경이 좋은 사람을 선호하고 훌륭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천국에도 과연 그런 편애가 있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혹 21세기에 살던 성도가 고대 사회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가 온 성도를 만난다면, 그와의 사귐을 꺼리게 될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천국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잘못된 행동을 지금 교회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빚어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지위나 배경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우리의 소명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을 찾아다니셨다. 그분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를 대상으로 일하셨다. 그리고 그 모든 자들에 대해 깊은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다. 한 마디로, 사람들을 결코 차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기 때문이다(갈 2:6).


그 결과 우리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이처럼 그분은 자신의 참 백성인 우리 각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리스도가 필요해서 교회에 온 사람들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믿음의 가정에 속한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Favoritism in the Church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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