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율법은 모순되지 않는다
by Tim Keller2019-09-21

나는 칼럼니스트나 학자 또는 언론인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기독교인이 일관되지 않다고 비난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규범 중 일부만 취사선택하여 따른다.” 가장 흔히 듣는 비난은 이런 말이다. “기독교들은 구약성경의 많은 내용을 무시한다. 가령 날고기나 돼지고기 혹은 생선을 먹지 말라고 한다든가 안식일을 어긴 죄에 대해서는 처형하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두 가지 종류의 직물로 짠 옷을 입지 말라고 한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정죄한다. 그러니 자신들이 믿고 싶은 부분만 취사선택한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나는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성경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신앙이 모순을 드러낸다고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이 가진 상식을 먼저 확인해 보기를 (또는 신학적으로 훈련된 교사와 최소한 이야기라도 한번 나눠 보기를) 바라고 있다.


우선, 구약성경만 동성애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부터 생각해 보자. 사실 신약성경 역시 그 문제와 관련된 많은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심지어 이혼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는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결혼을 통해 의도하신 본래의 목적이 남자와 여자가 한 육체로 연합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밝히셨는데, 여기서 그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결혼이나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마 19:3-12).


그렇다면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은 구약에 언급된 내용을 일관성없이 따르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비난에 직면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터 제시해 보겠다.


일단 구약성경은 속죄를 위하여 성막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성전에서) 드려지는 다양한 희생 제사에 관해 수많은 본문을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제사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원리를 소개한다. 이와 관련하여 의식적인 정결을 위한 복잡한 규례도 함께 밝힌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특정 음식만 먹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으며 또 정해진 의복만 착용하고 다른 여러 가지 대상들은 만지지 않는 가운데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그분께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생생한 규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는, 인간은 영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정결해지는 절차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많은 저자들은 희생 제사와 성전 예배의 규례가 그 자체의 내용을 초월해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삼상 15:21-22; 시 50:12-15; 51:17; 호 6: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이분은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선언하셨을 뿐 아니라(막 7:19), 구약의 정결법을 뛰어넘어 나병환자나 죽은 사람의 몸까지도 만지셨다.


그 이유는 명확히 드러난다. 즉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갈라짐으로써 정결법을 포함한 모든 희생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수님이 몸소 죄에 대한 궁극적 희생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우리 각자를 정결하게 하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히브리서 전체는 구약의 의식법이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언제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히 10:19).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의식법을 계속해서 준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되지 않는 신앙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효력을 지닌 율법


이와 같이 구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해 신약성경은 또 다른 가이드를 제시해 준다. 곧 로마서 13장 8절 이하에서 바울은 구약의 도덕법이 여전히 우리에게 효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는 바뀌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도덕법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인자하심, 신실하심과 같이 그분 자신의 성품을 보여 주는 삶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가 가진 소유를 관대하게 나눌 뿐 아니라, 가정에도 충실하게 헌신해야 한다는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여전히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신약성경도 살인이나 간음을 계속 금하고 있으며, 구약성경이 제시하는 성윤리도 다시 명시하고 있다(마 5:27-30; 고전 6:9-20; 딤전 1:8-11). 이처럼 신약성경이 또 다시 요구하는 계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효력을 미치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래서 죄는 변함없이 죄이지만, 그 죄에 대한 형벌은 바뀌었음을 보여 준다. 구약성경에서 간음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범행은 이스라엘 국가의 재판을 거쳐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죄목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하나님 백성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집행되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하나님 백성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모임이며, 각 교회는 서로 다른 정부의 통치 아래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정부 기관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죄를 지으면 권면이나 충고를 통해 그 문제를 다루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멤버십에서 제외함으로써 그 문제를 처리한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발생했던 근친상간의 문제를 처리한 방법이 그와 같았다(고전 5장; 고후 2:7-11).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 사이에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은 어느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과 문화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전제를 받아들이면,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신 구원 사건의 우선적 의미를 인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성경의 다양한 부분들은 모순 없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식법은 그리스도로 인해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로 인해 더 이상 교회는 국가적 차원의 형벌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교회가 처한 장소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라고 가르치는 성경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 성경은 기껏해야 영감 어린 구절이나 지혜로운 말씀이 일부 수록된 문서일 뿐 그 대부분은 어리석고 잘못된 내용으로 가득한 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오직 두 가지 결론이 가능하다. 먼저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지금까지 설명한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접근은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와 같은 기독교의 기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즉 예수님을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다면, 성경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가이드를 제시해 줄 수 없는 것이 되고만다. 물론 이 경우에 기독교가 구약의 도덕 조항 중 일부만 준수하고 나머지는 따르지 않는 모순된 신앙이라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건 공정한 접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처럼 모순을 운운하는 비난에 대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되받아치는 것이다. “당신은 저한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부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까?” 이에 상대가 “왜 그렇게 묻죠?”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정말 예수님을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저는 음식이나 관습에 대한 어떤 정결법도 따를 수 없고 동물을 바치면서 희생 제사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가져다준 효력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구약 계명 중 일부는 준수하고 나머지는 따르지 않아야만 합니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Making Sense of Scripture’s Inconsistency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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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