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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를 세우는 권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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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Fred Greco  /  작성일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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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drew Seaman on Unsplash

권징이라는 단어는 많은 기독교인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권징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명령하는, 억압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폭군의 이미지를 풍긴다. 교회 내외에서 공개적으로 발생했던, 권위를 남용한 여러 사건들을 고려할 때, 권징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또 동시에 기독교인이 오늘날 누리는 자유라는 기준으로 바라볼 때, 권징은 더욱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각각의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과 신앙 생활에 대하여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는 게 맞다는 생각과도 조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난 오랜 교회 역사 속에서 권징이 참된 교회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여겨졌는지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권징의 진짜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바른 교회를 가르는 시금석


종교개혁 시절부터 신학자들은 참된 교회와 가짜 교회를 가르기 위해서 세 가지를 시금석으로 삼았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바른 선포, 올바른 성례 집행, 그리고 적절한 권징의 행사였다.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또 올바르게 성례를 집행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참된 교회에 반드시 권징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권징은 말씀 선포 및 성례와 동일하게 참된 교회를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교육되는 것만으로는 바른 교회가 되는 데에 부족하다고, 무엇보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성경은 반드시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롬 2:13; 약 1:22)? 성례에 참여할 사람을 교회가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성례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그러므로 권징은 하나님의 가족을 바로 지정함으로써 주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주님이 직접 만드신 방법이다. 


교회는 단지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해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구체화된 현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다. 위대한 삼위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이 심판의 보좌 앞에서 단지 죄가 없다고 선언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롬 5:1). 그는 구원받은 죄인들을 당신의 자녀로,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기를 기뻐하신다(요 1:12). 이런 가족의 개념으로 교회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권징이 가진 목적과 그 속에 숨은 축복까지 깨달을 수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식의 잘못을 바로잡고 격려하는 것을 소홀히 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하는 목사와 장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도 서로를 바로잡고 격려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권징과 제자도


교회 생활에 필요한 권징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우리는 주변에서 들은 이런저런 사건이 아니라 성경이 주는 렌즈를 통해서 권징을 바라보아야 한다. 권징이라는 단어는 재판, 판결 그리고 벌과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도록 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건 성경이 말하는 주된 권징의 사용 방법이 아니다. 성경적 권징은 그 어떤 단어보다도 ‘제자’라는, 우리와 친밀한 그 단어와 훨씬 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다(마 10:24).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명령을 잘 관찰하고 배우는 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제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마 28:19-20).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자는 주님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바로 이런 의미로 에베소서 6장 4절을 썼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신약에서 제자의 의미로 쓰인 그리스 단어는 넓은 의미로 교육 또는 훈육(특히 어린아이를 향한)에도 쓰인다. 누군가를 제자로 만드는 것은 그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훈련시키고(잠 22:6), 소중한 대상을 사랑으로(계 3:19) 세워 주는 것을 의미한다(히 12:5-11). 


성경적 권징은 이게 다가 아니다. 성경은 은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데에도 권징이 필요하다고 알려 준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권징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가르침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그분의 교회 안에 참 목자이신 주님의 지시를 받은 작은 목자들을 만들고, 그 작은 목자들을 통해 양 무리를 세우며 성장시키기로 하셨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서 그분의 백성을 권징하신다(엡 4:11-16).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곳도 아닌 교회에서 이뤄지는 권징은 결코 세상 법정과 같은 공식적인 현장에서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지도자가 적절한 가이드와 지시, 그리고 필요한 경우 성경에 근거한 훈계를 주는 것으로 권징은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바로 세워지기 위해 무엇보다 그분의 명령을 잘 알아야 한다. 바른 길을 걷기 위해서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을 알아야 한다. 정말로 현실적인 의미에서, 권징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가르침을 받고 또 필요한 경우에 제약까지 받는 소중한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이다. 


교회 권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참된 교회를 가르는 시금석이 권징이라면, 또 권징이 그분의 자녀를 사랑으로 훈육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면, 왜 보다 많은 교회에서 권징을 시행하지 않을까? 왜 권징이 그토록 사소하게 취급되는 걸까? 이는 권징이 종종 잘못된 형태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자녀를 신실하게 성경적으로 훈련하는 부모처럼, 교회 지도자도 그들이 가진 권위를 일관성 있게 또 사랑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구약성경은 요셉을 편애한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편애가 가진 위험을 잘 알려 준다. 또 엘리 선지자가 그의 아들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훈육의 부재가 주는 위험도 잘 보여 준다. 실로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훈련시키신다(히 12:6). 교회도 주님의 본을 받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권징은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이 말은 권징이 결코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을 때에 어쩔 수 없이 행사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권징은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시점에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권징은 책임, 성장, 용서 그리고 은혜의 모습으로 교회 전체에 고르게 스며든 하나의 문화이다. 모든 교회 멤버는 죄로 힘들어 하는 다른 지체를 도와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은 판단과 비난이 아닌 온유와 회복을 향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얼마든지 같은 죄에 빠질 수 있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갈 6:1). 마태복음 18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권징이 소송에 대한 대안이라는 게 아니다. 일단 내가 먼저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권면하는 작은 단계에서부터 필요하다면 교회에 문제를 알리는 큰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모습은, 성도가 인내를 가지고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지체를 대하는 사례이다. 


교회 지도자는 권징을 행할 권위가 결코 자신으로부터 오는 게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권위는 바로 그리스도가 허락하신 목자로서의 권위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엡 1:22-23; 골 1:18). 교회를 흠 없이 세우는 분은 그리스도이다(엡 5:27). 따라서 지도자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권위적으로 또는 독재자처럼 행동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벧전 5:3). 또한 권징을 행하면서 누군가를 편애하여 그 눈을 감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약 2:1). 권징은 결코 은밀한 처벌이 아니라, 죄인을 회복시키고 관계를 치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교인들이 바로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권징을 행사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권징의 대상이 되는 교인이 불필요한 노출이나 잠재적인 소문의 대상이 되어 명예를 손상당하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권징의 목표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더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 권징의 목표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교회 권징은 기도와 사려 깊은 배려 그리고 일관성이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권징은 교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목적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교회 권징에는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다. 첫 번째로, 권징은 죄인을 교회로 다시 불러들이고 궁극적으로는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권징이 사랑으로 행사될 때, 이는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바라보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결코 죄인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며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가 다시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로, 우리는 권징을 통해 복음이 살아 역사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거저 그리고 온전히 우리를 받아 주신다. 


두 번째로, 권징은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향한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다. 이는 위선자의 가면을 쓰자는 말이 아니라,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세상에 알리자는 것이다. 즉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용서받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자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무엇보다 권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기독교인은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분의 사랑과 거룩한 품성을 더 드러내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보여줄 수 있다(엡 3:10).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권징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넘어진 자를 사랑과 겸손으로 회복시키려고 할 때, 그 행동은 우주 속 모든 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할 뿐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벧전 2:12).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Church Discipline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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