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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품게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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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id Strain  /  작성일 20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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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성경의 위대한 진리에 관해 이미 살펴본 바가 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더 나아가 영성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내용을 몇 차례 확인했던 것이다(참고로 이에 관한 저자의 아티클은 신학 섹션과 영성 섹션에 각각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참된 기독교 영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그 모든 내용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큰 주제 속에 묶여 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 존재함으로써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이때 부여된 정체성이 우리 각자를 새로운 공동체 안에 두어 또다시 새로운 영성을 따라 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내용에 이어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 자신이나 교회 안에만 목적을 두고 있는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우리 각자를 넘어 타인에게로 마음이 향하도록 만들며,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사람들을 이끄는 선교 사역을 통해, 세상 끝까지 그 마음이 확장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땅끝에서부터 예배자를 불러 모으시는 삼위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파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예배를 지향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선교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 연합에서 비롯되는 예배의 목적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진리이다. 이 사실은 그 어떤 본문보다도 에베소서 1장 3-14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바울의 찬송은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성부 하나님의 목적에서 출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정점에 이른 구속의 역사를 거쳐, 마침내는 우리 각자가 복음을 믿게 되는 경험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전체 전망을 펼쳐 보인다. 이때 구원의 각 단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드러내는 국면으로 설명된다. 즉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속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같은 죄인을 성령의 사역으로 그 아들과 연합시키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란 다름 아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하게 하며(6, 14절),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영광에 대한 찬송이 되게 하려는 데 있다고 성경은 밝힌다(12절).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여 자신의 아들과 연합하게 하신 목적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찬송, 곧 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진리이다. 이는 영원히 찬송 받으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진리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강조한 이 진리를 로마서 11장 33-36절에서도 설명한다. 곧 1장에서 10장에 걸쳐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값없이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놀라운 복음을 전한 바울은 11장에 들어서며 하나님의 선택에 감추어진 큰 신비와 또한 말씀 전파를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그분의 광대한 계획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설명 끝에, 억제치 못한 그의 마음이 찬송으로 터져 나온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는가? 우리는 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 안에서 새로운 몸을 이루고 진정한 영성을 회복하여 마침내는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 하나님은 분명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신다. 창조 세계 전체에 자신의 탁월한 지혜와 자비 그리고 은혜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신다.


선교에 관해 생각할 때, 바로 이 목적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목적은 선교에 대한 우리의 실리적인 생각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 그 사역이 얼마나 대중적인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 아니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하는 문제를 넘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가?” 하는 질문이다. “과연 이 사역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그렇다면 이 사역을 수행하는 방식은 인간 중심적인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적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각 개인과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높이는 데 그 연합의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선교를 요구한다


이처럼 죄인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돌이켜 거룩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그분을 찬송하게 하는 데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요구하는 선교의 사명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만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향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에 있다면, 그 목적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물어야 한다. 즉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가? 나는 앞서 다른 아티클에서 영성에 관해 논의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 적이 있다(영성 섹션에 게재된 ‘참된 기독교 영성에 관하여’를 참고하라). 거기서 우리는 예배의 주제를 다루며 은혜의 방편을 통해 개인과 교회가 삼위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내용이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이다. 이제는 거기서 다루지 못한 또 다른 답변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 내용은 바로 선교와 관련되어 있다.


존 파이퍼가 선교에 관해 저술한 탁월한 책으로 인해 유명하게 된 문구가 있다. 바로 ‘열방을 향해 가라’(Let the Nations Be Glad)이다. 그 책에서 파이퍼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가 아닌 예배이다.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할 것이다. 그러나 전도를 영원히 하진 않을 것이다. 또 영광스러운 주님을 마주 대할 때 찬송을 멈출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때 이미 멈춰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날에는 누구도 그리스도에게 새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면,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은 서로를 알 듯 그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선교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아직 그분을 알지 못하여 예배하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향하는 목적이 예배에 있고 선교의 목적도 예배에 있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선교 사이에는 어떤 긴밀한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4절부터 6장 1절에 이르는 본문을 통해 그의 선교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한 교리를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우선 그는 5장 1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18-19절에서는 바로 그 연합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이 바울 자신의 사역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했는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5:20-6:1).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을 대신하여 일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그분을 대신하여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바로 그분이 우리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알리신다는 것이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주일 예배의 설교 시간에든, 차와 머핀을 즐기며 커피숍에 있는 시간에든,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이 비신자를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그 비신자에게 알리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선교 또는 전도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보이는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용하여 우리 각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분을 대신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세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에게는 담대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지혜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모든 말씀을 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일이 혹 두렵고 떨리더라도 말이다. 죽은 자를 일으키고, 못 듣는 자로 듣게 하며, 맹인이 눈을 열어 보게끔 만드는 구원의 능력은 우리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대사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맞서 싸우자. 그분이 우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둘째,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다. 전도는 예배를 위한 활동이며, 예배는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분을 세상에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분과 분리된 인생은 얼마나 엉성하기 그지없는지, 또 그분과 연합된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고 부요한지를 드러낸다.


셋째, 우리에게는 비전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제자들의 공동체이므로 건강한 교회라면 선교 사역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를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선교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사람들을 이끌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그들을 끌어안지도 않는다면, 더 이상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선교를 요구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우리 곁에만 두려 한다면, 우리를 자신에게로 부르신 주님의 뜻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지역과 세계 곳곳에 나아가 제자를 삼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교회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된 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그분을 모르는 이웃과 친구 또는 동료들을 위한 공동체로 우리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고립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면, 그분의 제자를 삼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Union with Christ and Mission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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