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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씨름하는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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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rk Meynell  /  작성일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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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내가 항우울제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렸을 때, 가깝게 지내는 교인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우리 교역자 중의 한 사람이 정신 건강이 좋지 못하여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나는 결코 그 사람이 당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항상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명백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는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목회라는 가면의 그림자에 숨어 때로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만 그 가면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또한 나는 목회자가 정신 건강 문제로 씨름하는 상황을 교회에 알리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목회자도 우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는 우울해지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긴다. 진정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가?


그렇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정신 질환을 막지는 못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윗왕과 그 외의 시편 기자들, 엘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바울의 영적 상태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성경의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존 칼빈(John Calvin), 그리고 스펄전(C. H. Spurgeon)과 루이스(C. S. Lewis)도 그들의 영적 상태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경험을 종종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많은 목회자들이 우울증을 경험한다. 그에 대한 증거와 증언들은 명백할 뿐만 아니라 넘쳐흐른다.   


목회자들도 성도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이와 유사한 정신 질환으로 씨름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 질환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25%에 달한다고 한다. 목회자는 이들과 달라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사실, 우울증을 겪는 목회자의 비율이 비목회자로서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비율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록 목회 사역은 보람과 기쁨을 안겨 주지만, 때때로 이는 외롭고, 스트레스가 되며, 또한 목회자를 비현실적인 기대 안에 갇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은 결코 끝이 없다. 특히 목회자들은 위기 중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돌본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도, 전능하지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부여받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공유 딜레마


공적 사역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민감한 약점에 대해서 지나치게 공유하는 것과 성스러운 완벽함의 가면을 쓰는 것 사이에서 그들 나름의 적절한 경계선을 찾아야만 한다. 공유 범위의 두 축에는 오류와 위험이 분명히 존재한다.


초보 목회자는 사적인 문제를 성도들과 지나치게 공유한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항상 자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지금 무엇과 씨름하고 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 필요도 없다. 목회자 및 그 가족들의 사생활은 보호되는 것이 좋으며, 이를 완전히 개방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최근 나는 장로들이 목회자 부부에게 말하기 힘든 마음 속의 고통을 자신들과 나누어도 된다고 확신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실제로 장로들에게 사적인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나 두 주 후, 그 목회자는 해고당했다.  


많은 목회자들은 아무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거나 혹은 아주 가까운 소수의 사람에게만 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우울증이나 다른 여러 어려움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문제를 만든다. 첫째, 성도들은 목회자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고상한 존재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성도들은 잠시 동안은 목회자를 인상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실망과 절망 속에 갇히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회자는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인간적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더이상 목회자의 말을 경청하지 않게 된다. 둘째, 성도들은 은폐된 사항을 추측할 수 있다. “그 목회자가 사실은 그렇게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성도들이 목회자는 위선적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 성도들은 더이상 목회자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마음을 여는 목회자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지혜롭게 마음을 여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과연 정신 건강에 대해 알리는 것도 좋은가? 우리는 (너무 자세하지 않게, 그리고 가까운 몇 명의 친구들과) 영적 싸움과 유혹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을 시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상황과 자신감에 기초하여 이러한 사안에 대해 마음을 열면, 이는 성도들에게 여러 이유로 큰 유익이 될 수 있다.


첫째, 개방성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내가 올소울즈교회(All Souls)에서 우울증에 대해 처음 설교했을 때, 성도들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로 아파하는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들은 여전히 목회자가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 그러한 바람을 드러냈다. 그 설교가 불러온 가장 의미 있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제 나도 스스로의 아픔을 시인할 수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즉 목회자의 개방성이 그들에게 나 역시 마음을 열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주었다. “목회자가 자신이 겪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네”라고 말이다. 교회 공동체는 상심한 상태의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공개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둘째, 개방성은 냉소적인 세상을 향한 증언에 필수적이다. 비록 이는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빙빙 돌려 말하거나 허세 부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인간의 연약함을 부인하듯 살아가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종교 기관을 향한 사람들의 의심을 확증할 뿐이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인 거룩한 성배, 즉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삶의 복잡성과 의문들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이다. 상처를 이기고 사역하는 목회자는 TV 진행자의 매끄러운 진행 능력보다 더 큰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울증을 겪는 목회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그들이 씨름하고 있는 것들을 성도들과 나누어 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할 때에, 당신의 진실성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hould Pastors Admit They Struggle with Depression?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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