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중 가장 작은 자
by Jerry Bridges2019-08-27

신약성경은 교리와 이야기를 통해서 약 스물여섯 가지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특성을 알려 준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 사랑 그리고 겸손, 이 세 가지는 그 어떤 특징보다 자주 언급된다. 공감, 친절, 온유함 그리고 인내 등등 그 외의 다른 모든 특징들은 사실상 사랑과 겸손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사도 바울을 바라보아도, 우리는 그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자. 그는 빌립보서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사도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견디어야 했던 엄청난 고난 속에서, 바울에게는 자신이 설교한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이 유명한 구절도 그가 로마에서 투옥되었을 때에 썼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를 쓰기 여러 해 전에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또한 투옥되었다(행 16:16-40).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런 심각한 상황은 당연히 엄청난 두려움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절).


그들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체적인 의미를 유추해 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겪을 만큼 자신들이 가치가 있는 도구로 사용된 것에 대하여 감사했고, 동시에 이런 힘든 상황조차도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사용되도록 기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


투옥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뻐한 바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기 7-8년 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 즉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마 10:29;눅 12:6). 그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존재의 중심에서부터 붙잡았다.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신뢰는 다름 아닌 그분의 선하심과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에 뿌리는 두고 있었다. 


또한 바울이 보여준 겸손의 근원은 바로 그가 가졌던 신학이다. 애초에 바울은 겸손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 아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처음 만나는 그는 오만하고 아집에 찬 바리새인이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감옥에 보내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행위를 살펴볼 때, 우리는 그의 타고난 강하고 거친 성품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엄청난 경험조차도 그의 기본 성품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뒤따르는 이야기에서 달라진 바울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메섹 회당에서 그분을 담대하게 전한다. 또한 몇 년이 지나고 고린도 교회가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겪을 때, 그는 이를 결단력 있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뿐만 아니라 바울은 거짓 복음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훼손하려는 그릇된 선지자들을 강하게 저주하기도 한다. 그는 진정 바리새인일 때부터 보인 기존의 그 강하고 거친 성격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도로서의 삶, 그의 새로운 삶 전체를 관통한 것은 바로 겸손이다. 


바울의 겸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그가 스스로를 평가한 기록이다. 서기 55년 경, 그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 이후 5년 정도가 지나고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엡 3:8)라고 표했했으며, 생을 마감할 때가 되어서는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불렀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간이 흐르며 이처럼 변화했다. 즉 그는 오만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던 바리새인에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고백하는 자로 바뀌었다. 진정한 겸손함을 갖춘 사람만이 스스로를 이러한 용어로 묘사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한때 그토록 교만하던 바리새인을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도로 바꾸었을까? 이는 바로 그가 이해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단지 자격없는 자에게 주는 혜택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을 자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격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자로 생각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한때 그토록 파괴하려고 했던 그 복음의 전달자가 되었다. 스스로를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라고 평가했고, 또 이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그는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엡 3:8). 그는 자기 자신을 은혜 입은 자의 표본으로 보았고, 바로 이런 은혜의 신학이 그가 가진 겸손의 근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울의 생애에서 사랑은 어떠한 모습일까? 한번 더 그의 강하고 거친 성격을 상기하면, 바울이야말로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했다. 바울은 과연 삶 속에서도 그런 사랑을 보여 주었을까? 그가 네 교회에 보낸 서신서를 살펴보면, 바울은 진정 삶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빌립보의 신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또 이렇게 썼다.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 우리는 바울 안에서 정말로 놀라운 패러독스, 즉 역설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그의 강한 성격은 사랑과 온유를 특징으로 하는 ‘부드러움’과 놀랍도록 조화를 이룬다.


물론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그나마 ‘괜찮은’ 교회였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 많았던 교회, 바울에게 그토록 고통을 주었던 고린도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그의 마음을 어떠한가? 바울이 이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정말로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 교회를 위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4). 갈라디아 교회에는 또 이렇게 썼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그들에게 그토록 엄격했던 것은 바로 그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그들의 영혼을 위한 그의 걱정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랑을 ‘엄격한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엄격한 사랑이야말로 사랑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다.


바울이 교회들을 향해 품은 사랑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의 사랑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자신은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동일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스도가 그를 사랑하셨기에 바울은 고린도와 갈라디아 교회를 사랑할 수 있었다. 바울의 신학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굳건하게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성품은 자신의 신학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바울도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Least of the Apostle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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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rry Bridges

제리 브리지스(1929-2016)는 복음 중심 작가이자 강연자였으며, 내비게이토 스태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