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무기는 문을 여는 것이다
by Rosaria Butterfield2019-09-05

좋은 의도를 가지고 또 성경적 진실성에 근거해서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하는 말은 모두 증오심의 표현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의 가장 좋은 무기는 문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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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이 위험한 시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관을 ‘상호 교차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건 진짜 당신이 누구인가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차별(victim-statuses)을 받는지에 의해 측정됨을 의미한다. 또 이는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종류의 불일치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만 지켜진다는 믿음을 뜻한다.


바로 이런 세계관이 그리스도인을 탈(포스트)-기독교 세상에 상륙시켰다. 탈-기독교 세상에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성취는 자치적이고 독립적이며 오로지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 개인이다. 이처럼 기독교 전통이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지워지게 된다면, 조만간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던 로마의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마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충분히 이와 같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조류에 밀려 후퇴하는 것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악에서 피할 때에, 그 마음이 두려움에 휩싸이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또 성경적 진실성에 근거해서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하는 말은 모두 증오심의 표현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때, 두려움에 떠는 것은 또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의 가장 좋은 무기는 문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문을 열 수 있을까? 특히 과거에 크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향해 어떻게 문을 열 수 있을까?


1. 듣는 법을 배워라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죄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진짜 구원은 그리스도인 이웃으로부터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지금의 세상 사람들이 지닌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먼저 말하지 말고 들어야한다. 그것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탈-기독교 공동체에서, 당신의 말이 가진 효과는 당신이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의 수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청중을 알아보고,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선의 영적 무기는 문을 열고, 테이블에 신선한 커피와 눈물이 쏟아질 때 필요한 크리넥스를 준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물은 반드시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영원을 기록하셨으며, 그 심겨진 영원의 일부는 존엄성에 대한 갈망이다. 주님이 없는 삶은 힘들다. 그런 삶은 딱딱한 가장자리와 가파른 경사면으로 가득하다. 그런 삶에는 희망이 없고, 그런 삶이 주는 고통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만 구속의 고통을 준다. 이웃 사람들이 가장 아파하는 곳이 어딘지 알 정도로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라. 예수님이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이웃에게 시간을 낸다는 것은 내가 즐길 오락 거리를 줄이고 대신 하루의 여유 시간을 준비하고 또 예산을 책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미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받지 못한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을 위해 과감하게 새로운 길에 도전하라. 


2. 당신의 마음과 집을 준비하라


탈-기독교 세계에서 호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이웃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그 이웃을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초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은 이 일을 성취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정은 교회와 세상을 이어 주는 다리이다.


첫 번째 도전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계급과 시간의 장벽은 이 중요한 기독교 사역을 이어 가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교도소, 난민, 위탁 양육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당신 주변에 있으며, 이들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안전한 가정은 기독교가 제시할 수 있는 위탁 보호에 대한 대안이며, 교회의 많은 가정이 이미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낯선 사람을 찾을 때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집을 성이나 요새 또는 박물관이 아닌, 병원과 대사관 혹은 인큐베이터로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도전은 상대와의 대화를 그리스도에 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매일 밤 드리는 가정 예배를 통해 대화의 주제를 오락 거리에서 영원함으로 바꾸는 어려운 과제를 자연스럽게 다루어 왔다. 그 방법이 궁금한가? 가장 중요한 건 매일 밤 예배를 거르지 않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이 짧게 성경 말씀을 전하고 나면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또 때로는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마감한다. 우리는 매일 밤 이와 같이 가정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그 시간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예배에 참여시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식사 후 접시는 알아서 싱크대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는 대신 성경과 커피잔이 놓였다. 


이렇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정 예배에 자연스럽게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오랜 시간 잘 준비해서 펼치는 전도 이벤트보다 훨씬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초대와 모임을 진행했다. 교회에 다니는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과 또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웃들이 일을 마치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돕는다. 이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종종 식탁은 엄청난 세탁물이 놓이는 장소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수학 수업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가 함께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많은 세탁물과 마치지 않은 수학 숙제를 처리할 때, 우리는 그 일을 훨씬 더 잘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웃들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실 마약 흡입 또는 외도와 같은 비밀스런 삶을 가진 사람은 쉽게 계획을 짜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점에 특히 더 민감해야 한다. 아무리 계획을 짜더라도 그런 사람들은 약속한 시간에 과연 그 정신이 멀쩡한 상태일지 혹은 몇 주 후에도 여전히 안전한 상태일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초청이 언제나 열려 있고 또한 무엇보다 규칙적이라면, 그런 사람들도 당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다. 믿는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모두 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물과 난장판 속에 살지만, 우리가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제 식탁에는 평화가 내려앉는다. 우리는 모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때로는 의자를 더 들고 와야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가진 것을 다 내어놓았다. 대화를 위해 전화기는 잠시 치웠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꺼내 놓았고, 우리가 가진 질문도 말했다. 믿지 않는 이웃이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말을 할지에 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함께 저녁을 먹고 성경을 펼쳤고, 동시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열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와 달라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대화를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대화가 더욱 깊어지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도록 기도했다.


3. 집 열쇠를 주어라


지금 우리는 삶을 파괴할 정도의 깊은 외로움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외로움을 결코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고아가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당신의 삶이 친밀함과 소속감을 가진 인생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성취, 소유, 자만심으로 가득한 허영과 같은 우상들을 허용하는 순간, 그 결과는 복음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우선순위를 그만 생물학적 피가 그리스도의 피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다고 말하는 거짓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건 마치 가장 취약한 형제 자매들을 달려오는 버스 밑으로 밀어 버리는 것과 같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과거에 누리던 삶(때로는 가족과의 삶)을 포기할 때 오는 것이지, 결코 기존의 삶 위에 추가되는 게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잃는 것이 곧 얻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마가복음 10:28-30의 내용이다.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자. 그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 이에 따라오는 상실감은 자연스럽게 슬픔과 괴로움, 몸의 기억과 야간 공포 등등, 복음을 전하는 삶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생애에서 백배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말한다. 


그 백배의 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과 나로부터 온다. 아니,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백배의 복은 따뜻한 포옹, 정기적 혹은 밤에 먹는 식사와 기도, 서로의 짐을 지는 것, 그리고 서로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복잡하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또한 이는 기혼이거나 싱글인 사람들, 젊거나 나이 든 사람들, 튼튼한 몸을 가졌거나 약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백배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속함은 영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육적이고 물질적인 측면도 포함한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약속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 하나님의 가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함께 식탁을 나눌 장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해야 현관문을 지나 식탁으로 갈 수 있을까? 당신, 그리스도인은 열쇠를 갖고 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에게, 복음은 현관 열쇠와 함께 온다. 


무엇이 당신을 멈추게 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족들이 모여 또는 독신자와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 생명을 주는 공동체, 시간을 들여서라도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건네는 그런 공동체로 보인다면, 아마 그들도 시편 시인의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


아마 구원받지 못한 이웃은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 생각할 것이다. 가장 은밀한 비밀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온 힘을 다 바쳐서라도 기꺼이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를 그러한 사람들로 바라볼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이 가진 악의 문제를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들로 우리를 볼 것이다. 우리가 삶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만이 인간을 치유하고 도우며 또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볼 것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내미는 손길로 인해 그들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환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된다. 당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제: The Best Weapon Is an Open Door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그리스도인은 열쇠를 갖고 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에게, 복음은 현관 열쇠와 함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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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osaria Butterfield

로자리아 버터필드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교수이다. 시러큐스대학에서 영어학 및 여성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레즈비언의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뜻밖의 회심(아바서원)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