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찾는지 가르쳐야 하는 이유
by Lucas O'Neill2019-08-20

나와 아내는 문득 어린 시절 즐겨 먹던 푸에르토리코 전통 음식이 그리웠다. 하지만 우리는 요리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이것 조금 넣고, 저것은 아주 조금만 넣고”라며 열심히 설명을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머니가 그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한번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재료가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문제는 간단했다. 우리는 그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요리법을 알지 못했고 또한 전수 받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그 음식을 종종 만들었지만 나와 아내 혹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알려 주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는 요리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 그냥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요리법을 전수해 주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요리해 주시지 않는 한 다시는 그 음식을 만들어 먹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전통적인 푸에르토리코 요리법을 잃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설교자들은 본문의 의미를 매우 잘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성도들에게 큰 유익이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성도들에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이는 그들에게 근사한 음식을 제공하면서도 정작 요리법은 가르치지 않는 모습과 같다. 본문을 잘 설명하고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우리는 본문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도출해 내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설교의 내용이 본문에 충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본문으로부터 어떻게 이끌어 내었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뿐 아니라 핵심을 도출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살펴 보자.


1. 성도들 스스로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치게 하기 위함이다  


오직 성경에 전념한다고 말할 때, 그러한 행위의 주체를 성직자에게 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는 성직자가 특별한 해석을 자로 기능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시 말해 오직 설교자만 해석의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믿는 자들의 제사장직을 인정하고, 성도가 성경을 해석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성도들이 설교자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함께 성경을 해석하고 또한 그 핵심을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한다. 물론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회중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설교자가 신실하고 깊이 있는 설교를 위해 들이는 노력을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딤전 5:17). 하지만 그 노력의 일부는 반드시 성도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가르칠 수 있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엡 4:12; 골 3:16).


2.성도들이 설교자를 신뢰하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 해석과 적용의 근거가 명백하게 본문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줄 때, 성도들은 설교자를 신뢰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리고 이를 이루고자 성경말씀을 이용하려고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우리가 권고하는 내용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설교 사역을 정직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다.    


성도들은 명백하게 성경에 근거한 해석을 하고 그에 따른 적용에 이르는 지도자를 따르고자 한다. 예민한 성도들은 엉성한 강해로 그릇된 결론을 끄집어내는 설교를 알아챌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거듭되면 강단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혹여 설교자가 본문의 진리와 동떨어진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모르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성경의 본문에 기대어 그것을 말한다고 가정할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설교를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만약 이러한 행위가 반복된다면 강단에 대한 신뢰는 반드시 떨어진다. 설교자들이여, 성경 강해는 견고하고 명료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도들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3.성도들이 설교자를 테스트하게 하기 위함이다


설교자가 가르친 내용에 대한 책임은 성도들이 아닌 설교자에게 있다. 우리는 그 책임이 설교자에게 있다는 것을 성도들이 알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신실한 강해와 그렇지 못한 강해를 분별할 수 없다면, 설교자의 결론이 바른 것인지 혹은 초점을 벗어난 것인지를 알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성경을 옳게 해석하여 잘 가르칠수록, 성도들은 설교자가 놓치고 있는 것을 더욱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평은 건강하고 경건하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이여, 설교하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성도들을 위해서 이러한 비평을 환영하라.   


4.성도들에게 성경말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다 


설교자의 리더십은 설교를 통해 전하는 말에 무게가 실릴 때에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가진 모든 권위는 진정한 권위를 지닌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은 설교자가 성경말씀에 밀접하게 서 있을 때에 보호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성경말씀과 거리가 먼 내용을 가르치는 습관이 있다면,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진지한 물음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이 나의 권고를 무게 있게 받아들일 만큼 나의 설교가 성경 중심적인가?”라고 말이다.

 

5.성도들을 변화하게 하기 위함이다


설교자의 핵심 과제는 가르치고 교정하는 것이다(딤후 3:16; 4:2). 이것은 성도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나 논증만으로는 어느 누구의 믿음도 변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셔야 가능하며, 성령은 우리를 세우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사용하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무엇이 아닌 성경말씀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성도들은 비로소 그들의 믿음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분별력을 얻게 된다.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또한 우리가 연구를 통해 발견한 수많은 세부 사항들을 다 나누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이해시킬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보다는, 우리는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하여 본문의 논리를 제대로 설명하고 이와 더불어 어떻게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요리법을 적어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쉽게도 전화기 너머로 그 요리법을 설명하는 일에도 서투르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분이 할 수 있는 차선의 방법을 취하셨다. 바로 비행기 표를 끊어서 우리를 보러 오신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푸에르토리코 전통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직접 알려 주셨다. 이제 나와 아내가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 방법을 전수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Preachers, Don’t Just Explain What the Text Means—Tell Us How You Got There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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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ucas O'Neill

루카스 오닐은 일리노이주 이타스카에 있는 Christian Fellowship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임상 부교수이다.그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석사학위(MDiv, ThM)와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DMin)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