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입을 주신 이유
by Jonathan Leeman2019-07-29

보통 사람은 하루 최소 칠천, 일주일에는 약 오만 개의 단어를 말하는데, 이는 짧은 책 한 권 분량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입이라 불리는 인쇄기로 일 년이면 오십이 권의 책을 출판하는 작가들인 셈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때로 가만히 우리가 이 세상으로 무슨 말들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가 있는 그 곳이 내 말들로 인해 더 좋은 곳이 되었는가, 아니면 더 안 좋은 곳이 되었는가? 말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을 치유하고 있는가(잠 12:18)? 우리 입은 여호와 경외함을 드러내는가, 아니면 미련한 것을 쏟아내는가(잠 15:2)? 다른 이들의 영을 새롭게 하는가, 아니면 상하게 하는가(잠 15:4)? 스스로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해 거의 점검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잠 18:21).


우리 입의 청지기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말(words)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늘 생각해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었던 다음 명령은 말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은혜를 끼치게 하라!” 저녁 식탁, 교실, 스마트폰, 사무실, 그리고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는 모든 곳에 적용되는 헌장이 이 말씀에 들어있다.


은혜를 말하라


은혜에 대해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을 생각해볼 때, 바울은 우리 입에 대해 가히 최고의 소명을 전해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은혜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속성이고, 바로 이 은혜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인침을 받고, 성화된다. 은혜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고(엡 1:6), 죽은 자들 가운데서 우리를 일으키셨으며(엡 2:5-6),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출하셨다(엡 2:8).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고, 넘쳐흐르며,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것이다(엡 1:7; 2:7).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말’이 ‘그것을’ 끼치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우리 영혼의 특색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말에 은혜의 향내를 섞어 다른 이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기도 하시고, 그 사람을 은혜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바울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받았듯이(엡 3:1-2, 7-8), ‘우리 각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셨다’(엡 4:7). 자신이 모세처럼 입이 뻣뻣하다고 느낄지라도(출 4:10),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늘의 속삭임이 우리 혀 위에 임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끼쳐야 할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짐


사실상 은혜를 끼친다는 것은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엡 4:29) 말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은혜로운 말은 고개 숙인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고, 비틀거리는 다리를 강하게 하며, 상한 팔에 붕대를 감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기까지 서로를 자라게 한다.


“은혜를 끼치라”는 말은 달리 말해서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시 8:3)을 닮으라는 부르심이다. 다른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삶을 살라. 당신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 사람을 보라.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그 ‘진리’를(엡 4:21) 그에게 지혜롭게 적용하라. 하나님께 받은 특정한 말씀을 상대방의 특정한 필요에 맞춰 전하라. 당신이 하는 말이 가볍지 않게 하라. 의미 있는 말을 하고, 가치 있는 말을 하라. 다른 이들이 거짓으로부터 보호받고 진리 안에 세워지고 은혜 안에 뿌리 내리며 그리스도께로 자라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게 하라.   


은혜를 끼치는 것은 설교나 성경 공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대화에 대한 것이다. 자녀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해 줄 때 은혜를 끼치라.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할 때, 친구들과 캠프파이어를 할 때, 밤에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 마트 계산대 앞에서 줄 서 있을 때, 당신이 오후에 보내는 서른 번째 이메일을 쓸 때, 은혜를 끼치라. 


은혜를 끼치는 말의 성격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은혜를 끼치는 말이 항상 듣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친 은혜, 부드러운 은혜


먼저, 은혜를 끼치는 말이 항상 듣기 좋은 것은 아니다. 흔한 십자수 베개나 연하장 등에 적혀있는 문구와는 달리, 은혜는 우리가 종종 생각하듯 폭신한 무언가가 아니다. 은혜가 항상 편하고 아늑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말들은 우리 기분을 좋게 해주지만 ‘은혜를 끼치는’ 말에는 더 높은 목표가 있다. 우리를 진실로 좋은 상태, 다시 말해 그리스도처럼 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끼치는 말은 때로 거칠게 들릴 수 있다.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라’고 명한 그 사도 역시 우리가 이전에는 죄 가운데 죽은 상태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상기시키고(엡 2:1),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하며(엡 6:10-11),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엡 5:6).


그 말씀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 1:14)하셨던 우리 구주 역시 그리 하셨다. 은혜는 때로 그의 입술에서 이슬처럼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때로는 선지자의 외침처럼 천둥으로 임하기도 했다. 그의 은혜는 때로 상한 갈대를 싸매셨지만,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기도 했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기도 하셨고, ‘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르라고(눅 9:23) 말씀하기도 하셨다. 


우리 역시 때로는 말하기 힘든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늘 좋은 말, 듣기 좋은 말,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말만 한다면 우리는 반쪽짜리 은혜만 끼치는 셈이다.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


은혜를 끼치는 말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곳에서는 거친 말을 하고 저곳에서는 부드러운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주어진 순간의 필요에 맞는 말을 생성해 준다. 은혜는 주어진 상황에서 ‘소용되는’(엡 4:29) 말을 찾는다. 이것은 그런 말들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은혜를 끼치는 말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저쪽’ 상황이 아닌 ‘이곳’ 상황에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 사람에게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약속,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예수 안에’ 있는 그 ‘진리’를(엡 4:21) 샅샅이 살펴 다양한 국면을 지닌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적절한 부분을 찾아내어 동일하게 다양한 국면을 지닌 우리의 경험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마음 속 광산에서 말을 캐내어 신중한 생각의 용광로에 통과시켜 신선하고도 신랄한 진리로 제련해낼 수 있어야 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내가 하는 말이 은혜를 끼치지 못한 때가 너무 많았다. 대화 도중 내 마음은 끊임없이 딴 생각을 했고, ‘점심으로 뭘 먹지?’ ‘오늘밤 뭘 할까?’ ‘저 사람 셔츠가 전혀 안 어울리는데’와 같이 아무 관련 없는 생각들로 마음이 산란해졌다.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로는 은혜를 끼칠 수 없다. 그 말을 전파해주는 공기만큼이나 가볍기 때문이다. 


우리 혀는 자동적으로 은혜를 끼치는 말을 만들어낼 수 없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은 온전한 집중, 지혜로운 분별,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감정적 투자가 있을 때에만 나오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보람은 엄청나다. 은혜를 끼치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생명 나무 과일처럼 떨어져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를 만족케 한다(잠 15:4, 18:21).


질문, 그리고 기도


어떻게 이런 말 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우리 마음에 은혜가 이미 살아 있을 때에만 그 은혜가 우리 입을 통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마 12:34). 그러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무너뜨리고, 세우고, 새롭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은혜를 잘 정리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간단한 첫 단계로, 다음번에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잠시 멈춰 다음 질문을 던지고 기도를 드려보라.


질문: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 이 상황에서 ‘소용되는’ 말이 무엇일까? 그 사람의 필요를 언제나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질문을 해봄으로 인해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된다. 


기도: 주님, 제 입에서 오염된 말이 나오지 않게 해 주소서. 제 입을 은혜로 채우소서.


이제 대화를 시작해보라. 정말 놀라운 사실은, 약하고 여전히 부족함 많은 당신에게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손을 거치면 형제와 자매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내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주의를 집중하여 경청하라.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지고, 마음 가동장치에 전원을 넣으라. 그리고 말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입을 열어 은혜를 끼치라.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y God Made Your Mouth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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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Leeman

조너선 리먼은 워싱턴 D.C 수루반에 위치한 Cheverly Baptist Church의 장로이며, 9Marks의 편집장이다. 대표 저서로 'How the Nations Rage: Rethinking Faith and Politics for a David Ag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