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으로 훈육하기
by Sara Wallace2019-07-05

지난 주에 나는 아들에게 벌을 주었다. 이내 울음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가 적어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속상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려나 하여 방에 들어가 말을 걸어보았지만, 아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벌을 받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여 동생을 다치게 한 행동을 뉘우치며 울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것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훈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히브리서 12장 11절은 모든 징계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인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벌 받는 것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것이 항상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 바울은 슬픔을 경건한 근심과 세상 근심으로 구분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경건한 근심은 생명을 주고, 세상 근심은 사망을 낳는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바른 근심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며, 아이의 근심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세상 근심


죄책감은 죄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 마음 안에는 모두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다(롬 2:15).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 하지만 죄책감이 든다고 하여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즉 죄책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슬픈 감정이다. 세상 근심으로 인한 슬픈 감정은 자기 연민, 분노 및 교만 등으로 표출되며 자기를 기만한다. 세상 근심이 자기를 기만하는 모양은 매우 미묘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난 어쩔수 없어”라고 변명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 사람 잘못이야”라며 남을 탓하게 부추기기도 한다. 또한 “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더 나쁜 누군가의 죄와 비교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쁜 일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난 늘 선한 사람이야”라며 죄와 협상하게 한다. 


세상 근심이 계속되면, 이러한 양상과 더불어 깊은 죄책감에 빠져들게 된다. 죄책감에 빠지는 모습은 자칫 회개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것은 스스로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고행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죄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면, 죄가 어떻게든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죄책감이 조금 경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슬픈데 내가 어떻게 나쁜 사람일 수 있겠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지 않는 한, 세상 근심으로 슬퍼하는 일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히브리서 12장에 의하면, 에서는 장자권을 팔아넘긴 후 자신의 잘못을 슬퍼했지만 그의 슬픔은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에서는 장자권을 잃은 그 결과를 바꾸고 싶었을 뿐 자기의 마음을 바꾸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눈물만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없다. 고통 자체가 우리를 정화시키지 않고, 고난 자체가 우리를 성인이 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의 슬픔을 생명을 낳는 애통으로 바꾸실 수 있다. 우리가 이 복음의 은혜를 알고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경건한 근심


우리가 어떤 근심으로 슬퍼하는지는 그 결과로 알 수 있다. 세상 근심은 마음을 경직되게 하지만, 경건한 근심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같이 감사를 낳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죄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죄사함을 선물로 받아 감사와 순종의 삶을 살게 된다." 경건한 죄책감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형벌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기 때문에 항상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로마서 7장 24절에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외치면서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의 죄책감은 바로 다음 절에서 감사로 바뀐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또한 경건한 근심은 자기 연민을 없앤다. 그것은 성찰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으로 바뀐다. 그것은 슬픔을 지속시키거나 숨기거나 거기에 빠져들게 하지 않고, 죄의 추악함을 알아차리고 해결 방안을 찾아내게 한다. 세상 근심은 우리 마음을 동요시키지만, 경건한 근심은 우리 마음을 자비의 하나님에게 돌리게 한다.

 

아마도 당신도 자녀들이 경건한 근심 보다는 세상 근심을 더 많이 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세상 근심을 사용하여 아이들을 진정한 회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녀들의 세상 근심을 복음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후회: 어떤 아이들은 때로 부모가 훈계나 벌을 주지 않아도 자신의 잘못을 쉽게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 자체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위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네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없앨 수는 없단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믿으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없어지게 되는거야”(요일 1:9).  


자기 연민: 자기 연민은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는 경우 생긴다. 아이들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대신 본인이 느끼는 불의와 불공평 때문에 슬퍼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그러한 좋지 않은 기분을 죄의 결과를 이해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를 깨뜨린단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다는 사실이야(엡 2:12). 하지만 하나님은 용서를 통해 너와 그분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신단다.”


분노: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일과 관계를 그르친 자기 자신에게 분노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이렇게 말해 보라. “나는 네가 이러한 죄의 결과로 인해 스스로에게 화가 나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사랑의 수단이란다(히 12:6). 그러한 감정은 우리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지. 죄는 하나님도 화나게 한단다. 우리는 그분의 분노를 받아 마땅하지.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노하심을 결코 경험하지 않게 된단다(롬 5:9).”  


숨기기: 슬프게도, 아이들은 그들의 죄를 종종 속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속임 역시 우리 아이들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정직하게 반응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경우도 역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때는 이렇게 말해보라. “하나님은 우리 죄에 대하여 이미 알고 계신단다. 하나님께 그것을 숨길 수는 없어. 그것을 숨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없애버릴 수도 없지. 하지만 그것을 숨기기보다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어(시 32:5).”        


참된 회개


경건한 근심은 표면적으로는 세상 근심과 비슷해 보이지만, 두 가지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과 변화되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것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서 자신들의 죄를 시인하는 모습일 수 있고, 혹은 꾸지람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사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는 그들이 죄악된 습관에서 돌이키고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하며 순종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참된 회개를 일으킬 수 있다(겔 36:26). 아이들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경건한 근심을 하든지 아니면 세상 근심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을 예수님께 향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만이 죄책감과 자기 연민을 느끼는 자들과, 분노하고 속이는 자들에게 소망이 된다. 아이들이 세상 근심에 빠져 있으면, 그들을 부드럽게 이해시키고 이렇게 말해보라. “세상 근심에 빠지는 것보다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더 낫단다. 자기 연민과 분노에 빠지기 보다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분께 의지하라. 그것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란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n Kids Express Worldly Grief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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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ra Wallace

세라 월레스는 The Master’s University를 졸업하고 .TGC 작가로 활동하며, 저서로는 'Created to Car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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