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교회, 진정한 정치의 시작
by Jonathan Leeman2019-07-12

그리스도인의 정치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왕이 오신다! 회개하라! 믿으면 은혜가 넘치시는 주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정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성령을 통해 새롭게 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조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그 마음으로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자 애를 쓴다. 


또 그리스도인의 정치는 놀랍게도 지역 교회 공동체의 삶과 가르침과 교제 안에서 드러나야 한다. 당신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상관없이, 지역 교회 안에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집단이기주의를 지양하며,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안에서 서로를 가르치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기도 하는 곳이 지역 교회이다. 또 구경꾼의 자리에 있는 열방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하며, 믿을 수 있는 것임을 발견하는 곳이 바로 지역 교회이다.


목사가 매주 하는 설교는 일종의 정치 연설과도 같다. 왜냐하면 회중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왕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마 28:20). 목사는 회중이 왕이 세운 법에 따라 살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우리는 왕이 내리는 심판을 왕의 규례를 통해 선포하고, 왕이 뜻하신 바를 우리의 기도 중에 받아들이며, 왕의 기쁨과 슬픔을 우리의 노래를 통해 표현한다.

 

교회 안에서 만나는 정책들


다양한 분야에 관련된 정책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 복지 정책부터 살펴보자. 정치인들이 논하는 복지 정책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겠지만,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복지 정책”을 강조한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교인 서약문을 통해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 걷고,”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으로 보살피고 돌아볼” 뿐 아니라 “교회 사역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정기적으로 헌금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도 참여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일반 재정을 위해 헌금하는 것 외에도, 구제를 위한 헌금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매년 드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을 돕는 방도이기도 하다. 우리 교우인 제인(Jane)이 노숙자 신세가 되었을 때 그녀가 안전한 집을 구할 수 있도록 도운 적이 있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제인은 우리의 도움을 거절하고 공원에서 숙식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교인인 루터(Luther)가 공원에 동행했고 바로 옆 벤치에서 밤을 보냈다. 그야말로 루터는 제인의 복지(welfare)에 대해 깊이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금 정책’에 관련된 것도 있다. 새 법안이 나오면 그것이 세금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해 미의회에서 자문하는 일을 하는 카를로스(Carlos)는 세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한 가정을 위해 여러 날에 걸쳐 귀한 저녁 시간을 들여 상담해 주었다. 감당이 안 되던 빚을 지고 있던 이 가정을 위해 카를로스는 이 가정의 채권자들 및 수금 대행 회사와 협의를 진행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카를로스는 아내와 함께 그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다양한 학과목 공부, 대입 시험 준비, 논술 준비 등을 도와주는 개인 교사 노릇도 해주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거창하게 미국 사회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교회 안의 인종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고민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패티(Patty)가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내게 고백하기를, 자신은 흑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 준 조언은 톰(Tom)과 로라(Laura) 부부와 저녁을 한 번 함께 해보라는 것이었다. “제게 방금 하신 이야기를 그 분들과 함께 그대로 나눠보세요”라고 말했다. 톰은 흑인이다. 


톰은 경건하고 성숙한 사람이다. 패티가 그런 말을 한다면 톰과 로라가 어떻게 반응할지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패티가 정말로 내가 조언한대로 했다. 그리고 정확히 내 예상대로 톰과 로라 부부는 은혜와 사랑으로 패티를 대했고 패티를 용납해주었다. 패티는 회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정치적인 주제는 끝도 없이 넘쳐난다. 난민 문제는 어떤가? 목회자 친구 중 하나가 내게 이르기를, 자기 교회 교인들이 이란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 미국으로 넘어온 이란 난민 한 명에게 차량을 마련해주었다고 했다. 집도 마련해 주었고, 그야말로 그를 제자로 삼은 것이다. 그는 지금 미국 시민권도 얻었고 미군에 들어갔다. 우리 교회 교인들 중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이들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 가정들을 입양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목회적이다


우리는 관점을 좀 더 넓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지 정책, 세금 정책, 인종간 갈등 문제 해결, 난민 문제, 증가하는 자살률 등에 대한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대책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의 시작과 끝이 거기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더욱 광범위해야 하고, 단순해서는 안 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더욱 인도적이야 한다. 다양한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역 교회 ‘안에서’ 살 때 우리의 정치적 본능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적 사고는 ‘목회적이어야’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 경찰이 폭력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소위 구조적인 모순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거대 담론 등 최근에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간 갈등에 불을 지피는 일련의 사건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내 개인적인 감정만 놓고 보면 소수 인종 그룹에 속한 내 친구들이나 우리 교인들 중 분명하게 좌파 노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만, 나의 일반적인 정치 성향은 우파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내 친구들과 성도들을 사랑한다. 그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내 형제요 자매들이고, 내가 아끼는 친구들이다. 나는 그들이 그런 견해를 갖게 된 데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내가 믿기로, 그들은 자신만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못 보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나뉘어 있고, 나는 정치적으로 무엇이 정답인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을 겪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에서 사역하며, 나는 겸손, 이해, 그리고 정의를 향한 갈망을 배워가고 있다. 또한 더욱 섬세한 태도로 살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말할 때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는 것을 배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정치인가도 배우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내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나의 정치적 사고가 계속 성장하여 내 기준으로 보기에 좌파, 그리고 우파인 형제자매들을 모두 아우르는 수준에 이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치가 단순하지 않고, 진실성 있고, 믿을 수 있고,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 않으며, 그야말로 실제적인 무언가가 되는 곳은 바로 지역 교회 안이다. 지역 교회 안에서 만나는 실제 상황들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공의라는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정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동료들을 향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가? 교회에 출석하라


내가 거주하는 도시인 워싱턴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정치를 통해 뜻을 실현해보기 위해 이사해온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여기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이익 단체들, 로비 조직들, 조찬 기도회 모임들까지 합하면 워싱턴은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정치 활동이 끊이지 않는 곳이고, 나는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도 지역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는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는 자기가 마루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놀기 때문에 자신이 자동차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어떤 정책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짜 자동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어라. 지역 교회에 출석하여 당신과는 사뭇 다른 그 사람, 당신보다 연봉이 훨씬 높은 사람, 혹은 낮은 사람, 아니면 심지어 당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까지도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 


진짜 정치는 당신의 정치적 견해가 아닌 당신이 내리는 매일 매일의 결정들로부터 시작된다. 진짜 정치는 당신이 공적인 무대에서 뭔가를 지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적으로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에서 시작된다. 진짜 정치는,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 될 수 없는 이유가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를 배워간다. 하나 됨을 향한 이 투쟁 안에서 우리는 공의롭고 정의로운 질서가 어렴풋이 드러내는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이는 열방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Church Life: Our True Political Witness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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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Leeman

조너선 리먼은 워싱턴 D.C 수루반에 위치한 Cheverly Baptist Church의 장로이며, 9Marks의 편집장이다. 대표 저서로 'How the Nations Rage: Rethinking Faith and Politics for a David Ag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