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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에 관한 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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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Kevin DeYoung  /  작성일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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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Pera Detlic from Pixabay

사회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상관관계가 원인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운전 교육을 받던 중에 나는 대부분의 교통 사고가 집에서 몇 마일 이내에서 일어난다는 놀라운 통계를 접한 적이 있다. 이 통계가 젊은 운전자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익숙한 곳에서 운전할 때 부주의하기 쉬우니까 더 조심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교훈은 상관관계(집에서 떨어진 거리와 연결된 사고 발생 횟수)를 원인(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운전할 때는 운전을 제대로 안 한다)과 동일시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은 설명은 이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집 근처에서 주로 운전을 하니까 당연히 집 근처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해서 하나가 반드시 다른 하나의 원인은 아니다. 또 동시에 그 두 가지 사이의 연결이 분명하거나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확실한 경계는 없다


데이비드 파울슨(David Powlison)은 기혼의 상태에서 레즈비언 환상으로 고생하는 아멜리아(Amelia)에 관한 글, ‘모호하게 치료된 영혼’(The Ambiguously Cured Soul)을 저술했다. 이 글은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아 ‘성경적 상담 학술지’(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2001년도 판에 게재되었다(참고로 저자는 2003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성경적 관점으로 본 상담과 사람’[Seeing with New Eyes]의 12번째 챕터에도 동일한 이야기를 실었다). 주인공인 아멜리아는 기독교 상담을 통해 자신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과거의 경험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즉 어린 그녀를 학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남성을 멀리하게 되었고, 또한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은 어머니로 인해 같은 여성이 주는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비록 이는 단편적으로 보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진단이지만, 파울슨은 이 상담에 한 가지 큰 오류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아멜리아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결과는 수도 없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 역시 파울슨과 같은 관점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남성이 주는 사랑을 너무 갈구한 나머지, 오히려 부도덕한 이성 관계를 갖는 경우도 있다. 자기를 학대하던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의 남성에게 이끌려 결혼하는 예도 있으며, 아예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부모처럼 살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경건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를 해석하는 데에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를 보면서, “그래, 나는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라는 결정론적 그릇된 망상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과거의 어떤 특정 경험이 인생에서 언제나 같은 결과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이처럼 카운슬링에서 배우는 진실은 비극의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개혁주의 개신교를 지지하는 우리로서는 포웨이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정통 장로교에 소속된, 우리와 같은 신학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사건은 우리 중에 행여 조금이나마 반유대주의 증오가 있는 건 아닌지, 또는 교회가 유대인을 향한 이런 살인적인 행동을 행여 조금이라도 충동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 용의자의 환경을 보면 그의 부모와 목사는 모든 면에서 그를 바르게 가르쳤고 결코 살인자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굳이 인과 관계를 찾는다면, 8chan과 같은 게시판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의 급진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이다. 용의자가 복음주의 언어를 훔쳤거나 또는 개혁 신학을 지지했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 전체가 그로 인해 욕을 먹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제자들이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려서라도 예수님의 명예를 지키려고 한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이다(눅 9:51-55).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했다는 사실이고, 우리들 또한 가르침을 왜곡해 열심을 폭력으로 변질시키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처럼 강하게 꾸짖어야 한다. 


정치 양극화 시대에 우리는 종종 비극 A가 “증오하는 문화”의 결과이거나 끔찍한 잔혹 행위 B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등의 비난을 접한다.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주장은 증명이 힘들 정도로 불투명하거나 손에 딱 잡힐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다. 같은 '문화'에 속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단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그렇다면, 도대체 문화가 가진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다시 말해서, 가족이나 종교 공동체 또는 보다 포괄적인 어떤 사회 요인이 폭력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비록 유일한 원인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작정 ‘문화’를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정교하게 검증된 자료와 충분한 근거를 토대로 과거를 분석하는 학자 중 일부가 현재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무작정 인과 관계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상황은 복잡하다


자, 이제 가장 논쟁적일 수도 있는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다. 한 나라의 인종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심각한 장애물 중 하나는 바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이 현상을 아주 단순한 인과 관계로만 설명한다는 것이다. 시험 점수에서부터 교육 수준에 이르기까지, 또 가계 소득 뿐 아니라 감옥에 가는 비율에 이르기까지, 인종 간의 웰빙 지수에 엄청난 불균형이 있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혹자는 이런 불균형의 원인을 단지 개인의 자질과 노력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이 모든 원인을 차별주의와 인종 우월주의 때문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의 쉬운 설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이 인종 차별의 유산이나 개인이 가진 책임이 오늘날 사람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데에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복잡하기에 역사도 복잡하다. 인간 또는 우리의 과거가 아주 단순하고도 통일된 이론으로 깨끗하게 이해되고 요약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확실한 사실은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모두는 다 예외 없이 유전자와 가족, 친구들과 학교, 동료와 교회, 책과 경험, 그리고 암묵적인 가정과 암시적인 규칙, 그리고 때로는 과분한 기회와 부당한 장애물 등등을 포함한 백만 가지 이상의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손에 쥐어진 모든 것들과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겸손해야 할 이유뿐 아니라 너무도 단순한 인과 관계 이론에 대해 신중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조각이 어떻게 맞춰졌는지를 완전히 아신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만물의 시작과 결과를 아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적이고 또 완전한 정의가 어떤 것인지 아신다. 이것은 지적 게으름에 대한 핑계가 아니다. 어떤 설명은 다른 것들 보다 낫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사학적으로는 마냥 화려해 보이지만 지적으로는 게으른 생각의 함정, 즉 현재의 인간과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단지 과거의 재료가 완벽하게 혼합된 결과로만 생각하는 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Cautious about Causation

번역: 무제





작가 Kevin DeYoung

캐빈 드영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마태에 위치한 Christ Covenant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미국 TGC의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University of Leicester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현재 샬롯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Just Do Something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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