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으로 초대하라
by Chad Ashby2019-06-14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이상한 무기로 전쟁을 이끄시곤 했다. 그분은 개구리, 옴, 종기를 가지고 이집트와 싸우셨고, 기드온의 진흙 냄비와 횃불로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셨다. 가장 이상한 것은, 나무 십자가를 사용하여 죄와 죽음을 물리쳤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탄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숟가락을 들라고 하시더라도, 이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형제자매여, 식탁으로의 초대는 전쟁이다.


저녁 식사, 식탁, 초대라는 단어는 아무런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어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어쩌면 아이의 웃음 소리, 마음 따뜻한 대화, 혹은 소소하게 음식을 곁들인 이웃과의 저녁 식사를 떠오르게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 되었든 아마도 연상되는 이미지는 포근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환대가 진정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식탁을 공유함으로써,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앞당길 수 있을까?


왕의 식탁으로


손님을 식탁에 초대하는 것은 정복자이자 최고 결정권자로서 왕이 가지는 특권이다. 그 예로, 다윗은 사울 왕의 손자 므비보셋을 왕족의 연회에 초대했다(삼상 9:10). 다니엘서를 보면 느부갓네살 왕 또한 유대를 정복하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환대했다(단 1:5). 이처럼 자신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은 왕이 베푸는 주권적 은혜와 자비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베푸는 환대도 바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예수님은 마가 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며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막 1:14-15).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그분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사람들과 식탁을 함께 하신다. 그 초대된 사람들을 보고 서기관들은 너무 놀라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


우리는 그렇게 왕의 아들과 딸로서 그분의 식탁으로 초대된다.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시 23:5). 전쟁 중임에도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것은, "너희는 감히 우리의 털끝도 건드릴 수 없어!"라고 선언하는 것보다 오히려 적을 더 조롱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친히 부르신 구세주의 환대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승리를 성취하셨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우리를 초대하셨다. 이는 어둠의 세력을 향한 확실한 승리의 신호임과 더불어 그들의 패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나의 식탁으로

  

구약 시대에는 저녁 식사 때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먹은 것을 먹지 않았고, 이방인과 함께 같은 식탁에 앉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이방인의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행 10:28). 이렇게 명확하게 갈라진 경계선은 모든 인류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범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은 매일의 저녁 식사에서 어김없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면서,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 식탁 싸움에 종지부를 찍으신 것이다. 왕이신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셨다.


그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 음식을 먹으라고 명령하심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5). 베드로는 주님의 꾸짖음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처음으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집에서 고넬료라는 이름의 로마 백부장과 그의 가족이 성도가 되는 것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의 피가 모든 사람을 깨끗이 씻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행 10:36)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예수님은 그날의 저녁 식탁으로 베드로를 초대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계획대로, 베드로는 그 고넬료의 집에서 한 주님, 한 믿음, 그리고 한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즉 이전에 서로 싫어하고 배척하던 사람들이 평화롭게 식사를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의 나눔임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갈릴리 어부가 로마 백부장의 집에 초대되는 것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를 구분하던 적대감의 벽이 허물어졌다(엡 2:14-16). 베드로와 고넬료는 같은 복음 안에서 서로를 환대하며 전 세계를 향해 그들이 섬기는 왕의 승리를 축하했다(행 10:48).


환대를 무기로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함께 하는 식사는 그분의 왕국을 앞당기기 위한 예수님의 계획이었다. 사도 행전 속에 묘사된 초대 교회의 모습에서 그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지난 수천 년 동안, 갈라진 식탁은 인류의 분열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 그 저녁 식탁에서 예수님의 평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왕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승리를 날마다 축하하고 있는가? 과연 당신의 식탁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화목한가? 함께 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식사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됨이 없었다면 결코 만나지 않았을, 보이지 않는 경계선 너머의 사람들과 식탁을 함께 하는가? 당신의 저녁 식사는 적대적인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평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환대를 베푸는 것은 싸움이다. 사탄은 주일이 오기 전까지, 매주 정확하게 여섯 번의 저녁 식사 시간을 통해 당신을 유혹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탁을 나눌 시간이 없다고, 일정도 바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또 피곤할 뿐만 아니라 돈도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다른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지 않을 이유는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대는 분명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 환대를 마치고 늦은 시간 주방을 둘러보니, 기름기 많은 냄비와 접시 더미가 싱크대에 가득하다. 그러나 기억하라. 바로 그것들이야말로 어둠의 유혹에 대항해서 훌륭하게 싸운 우리의 무기였다는 것을.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한 우리의 싸움에서 숟가락, 냄비, 그리고 접시를 가장 강력한 영적인 무기로 만들라.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Hospitality Is War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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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Chad Ashby

채드 에쉬비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에 위치한 College Street Baptist Church의 부목사이다. 그는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에서 석사학위(MDiv)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