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음'의 참 의미
by Paul Wells2019-06-05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복음서의 내용은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교회의 선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점점 커지는 세속주의의 위협 속에서 서구 기독교인들은 규모적으로 작은 교회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선교 정책도 소규모 노선을 따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이는 복음의 전파를 오히려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크고 작음을 논할 때 우리가 정말 세밀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작음'이다. 예수님에게서 참된 작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길을 따르기 위해 굳이 강하고 유명할 필요가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 


예수님이 전하신 생생한 가르침의 대부분은 주변의,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작음과 '작은 무리의 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때때로(종종 틀린 방법으로도) 인용되는 구절이 바로 누가복음 12장 32절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양 떼의 작음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신실한 사람들은 세상의 큰 무리들과 비교했을 때 수의 측면에서 소수이고, 또한 힘의 측면에서는 방어할 능력이 없는 작은 양의 무리와 같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분의 나라를 찾는 이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미 그 왕국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고 또 축복 속에 공유하고 있으며, 세상이 끝나는 날 충만함 속에서 그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구약과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무리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한 무리의 양 떼를 다스리는 한 명의 진정한 목자가 있다. 양 떼는 목자의 생명으로 구속되고 그와 하나되어,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받기로 약속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그분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언약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실한 종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런 관점으로 말씀을 고찰할 때, 큰 규모에 대한 현대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오직 작은 교회만을 본질적 교회로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로잡게 된다. 


작은 씨앗이 가진 놀라운 힘 


성경에 소수의 사람들, 개인 양육, 그리고 성장과 궁극적인 완성을 이야기하는 비유가 많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그것들은 마치 성장할 운명을 가진, 소그룹을 위한 맞춤식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겨자씨, 밀가루, 가라지, 누룩, 그물과 물고기,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마지막 때의 하인,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과 관련한 비유를 생각해보라. 특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에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비유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더 큰 의미를 지닌다(요 12:24). 


그런데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쉽지 않은 질문이 있다. 씨 뿌리는 자의 사명이 세상에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면, 뿌린 씨앗 중 열매를 맺지 못하는 4분의 3으로 인해 뿌린 자 행위는 결국 비생산적이고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이는 이야기의 논지에서 벗어난 지적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가르치는 핵심은, 비록 복음 전파가 종종 겉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성취가 없는 것 같을지라도(마 7:13; 22:14), 하나님은 땅에 뿌려진 씨앗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다. 즉 사탄의 저항, 완악한 마음, 세상을 향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와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다른 비유, 그리고 등경 위에 둔 등불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눅 8:16-18)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풀어놓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위치를 전복시키며,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실천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여기에서의 소유는 마음 속에 심겨진 말씀, 즉 열매 맺는 씨앗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의 방식 


교회에서의 생명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중략]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에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교회에 모인다. 모든 모임이 그렇겠지만, 특히 기독교 공동체의 생명력은 행동에 기반한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독립적인 지위, 역동적 리더십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는 적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복음과 타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이에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님은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미약한 존재를 통해 이 땅을 향한 그분의 방식을 드러낸다. 즉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는 작은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오직 우리의 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에 의해서 정의되며, 기독교 공동체는 날마다 거듭다는 삶의 실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영향력은 교회의 '큼' 혹은 '작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영향력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열매 맺는 하나님의 말씀과, 또한 거룩한 소수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Smallness and the Kingdom of God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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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Paul Wells

폴 웰즈는 프랑스 프로방스에 위치한 Faculté Jean Calvin in Aix-en의 부학장이다. 그는 La Revue Réformée의 에디터이며, Greenwich School of Theology의 디렉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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