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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속죄는 선교를 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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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reg Turner  /  작성일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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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od Long on Unsplash

혹시 이런 말을 들어 봤는가? “당신이 칼빈주의자, 즉 개혁주의 신앙을 따르는 자라면 아마도 전도와 선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교회사를 잠시만 들여다보면, 그런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도,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또는 로티 문(Lottie Moon)과 같이 칼빈주의자로서 선교에 헌신했던 인물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서 언급한 고정관념은 이미 널리 퍼져 대중화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절대 주권을 행사하시므로 우리는 굳이 지상 사명을 열심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휫필드나 캐리나 문처럼 전도나 선교에 헌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들이 믿는 ‘칼빈주의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코 ‘칼빈주의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흔히들 개혁신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런 통념은, 특별히 제한 속죄 교리에 초점을 두고 거론된다(참고로 제한 속죄 교리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선택하신 사람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적용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그 교리는 개혁주의 전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인냥 취급된다. 만일 회심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바로 당신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복음을 나눌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교회사라든가 역사 신학을 통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목표는 그런 작업으로 제한 속죄 교리를 변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 오웬(John Owen)이 자신의 권위 있는 논문인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이라는 글을 통해 그 교리에 대한 성경의 지침을 상세하게 설명한 바가 있다(이 작품은 제임스 패커[J. I. Packer]가 훌륭하게 요약적으로 소개하면서 관심 있는 현대 독자들이라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목표는, 제한 속죄라는 교리의 틀 안에서 복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복음 전도의 내용을 살펴보기만 하면,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이 바로 당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식으로 전도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 초대교회 사도들은, 전도할 때 제한 속죄 교리와 일치된 접근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따라서 오늘날도 그렇게 전도하는 일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제한 속죄는 선교를 권장한다


나는 이 글에서, 그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을 하려고 한다. 여기서 나의 목표는, 제한 속죄에 대한 믿음이 단순히 전도나 선교의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차원의 변호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 그 교리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이끌 뿐 아니라 강하게 권장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제한 속죄란, 구원 받기로 작정된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예수님이 단지 어떤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히려 그분의 죽음이란, 구원 받기로 작정된 사람을 실제로, 개별적으로, 틀림없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대속물로서 누군가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주권적으로 죽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부의 선택과 성자의 구속을 따라, 성령께서는 구원 받을 사람을 효과적으로 부르시는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거듭날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받는다.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계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을 정하실 때 그 구원이 성취되게 하는 수단도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수단에는 그분의 섭리에 따른 여러 정황들이 다 포함되는데, 예를 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살아가면서는 누구를 만나며, 또 어떤 글을 읽게 될지까지도 포함된다. 하나님은 이 모든 수단을 정하셔서 나로 하여금 복음을 듣도록 이끄신다. 그런데 그 모든 수단 중에서 다른 요소로 대체될 수 없는,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 있는데, 바로 복음 선포이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은 또한 그 복음을 다른 죄인들에게도 선포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포함으로써 구체화되는 외적 부르심(the outward call of the gospel message)을 성령의 내적 부르심(the inward call of the Holy Spirit)과 하나로 연결시키신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전도할 때 제한 속죄와 효과적 부르심(effectual calling)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참고로 효과적 부르심이란, 제한 속죄의 대상으로 택함 받은 자에게 복음이 선포될 때, 그 외적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성령의 내적 부르심을 가리킨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리적 죽음을 통해 구속하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일까? 요한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언급된다.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여기서 두 장을 더 넘기게 되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가 등장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이 무리가 바로 예수님이 피로 사신 자들이다. 즉 개별적으로 확실하게 구속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을 이루는 범위는 전 세계에 미칠 만큼 광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의 아들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와 민족에서 죄인들을 불러 개별적으로 구속하시기 때문에 전도의 열매가 땅 끝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이 두 가지 사실은, 전도와 선교를 하도록 이끄는 최고의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에게는 땅 끝까지 전달되어야 할,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야 할 영광스러운 소식이 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육체를 입으셨다. 성육신하신 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살다가 대속물로 죽으셨다. 그리하여 성취된 구원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죄인들에게 구속의 효력을 가져온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시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셨으며, 모든 민족에게 가서 회개와 죄 사함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신다. 그 복음의 선포에 따라 회개하며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


구원 받기로 작정된 자는 끝까지 완고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전도는 우리 자신의 실력과 말주변에 따라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열매는 오직 자신의 주권에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분은 구원을 단지 제공하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그분이 일하시면, 전도를 하기에 너무 어려운 곳도, 너무 완강해서 다가갈 수 없는 사람도 없다. 많은 선교사들이 겉으로 보기에 그토록 완고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선교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 그들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개별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를 가졌으며, 또한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선교에 가장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하심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미치는 범위가 전 세계에 미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신뢰하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품으신 계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제한 속죄를 믿는다고 하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정말로 그 교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불러 자기 백성을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효력으로 지금도 그 뜻이 성취되고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열방에 선포하며 자신의 놀라운 역사를 모든 민족 가운데 전하게 하기 위해, 나와 당신의 구원을 처음부터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혹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제한 속죄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Believe in Particular Redemption? Then Evangelize and Send Missionaries with Abandon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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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reg Turner

그렉 터너는 중앙아시아에서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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